차크라
최종이론
1.
그는 눈을 거의 뜨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두 살 때 미적분학을, 열다섯 살 때 양자역학을, 스무 살 때 뇌과학의 마지막 퍼즐을 풀었다. 그리고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그는 세상의 모든 규칙을 하나의 수식 안에 담아냈다. 입자와 파동, 시간과 공간, 생명과 죽음. 우주의 모든 것이 그의 이론 안에서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제 당신은 신이군요." 동료가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몰랐다. 다만 그는 내일 아침 해가 뜰 정확한 시각을, 다음 주에 비가 올 확률을, 십 년 후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았다.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든 인과의 연쇄를 계산할 수 있었다.
그의 이론은 한 가지 더 예측했다.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젠가 중력이 팽창을 멈추게 할 것이고, 모든 것은 다시 한 점으로 수축할 것이며, 그 극한의 밀도에서 새로운 빅뱅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주는 죽지 않는다. 다만 숨을 쉰다. 팽창과 수축을, 탄생과 소멸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각 주기마다, 같은 물리 법칙이 작동한다면, 같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다. 같은 별이 태어나고, 같은 행성이 형성되고, 같은 생명이 진화할 것이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모든 배열은 반복된다.
그는 호수 위를 떠다니는 거주지로 걸어 들어갔다. 발소리가 물 위에 고요히 퍼졌다. 밤하늘엔 별들이 무수히 박혀 있었다. 각각의 별이 몇 번째 우주 주기에 속한 것인지까지도, 그는 계산할 수 있었다.
2.
이백칠십사 년이 흘렀다.
그의 몸은 늙지 않았다. 최종이론에는 노화를 멈추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십 대 초반의 외형을 유지한 채 지구에 머물렀고, 사람들은 그를 현자라 불렀다. 그는 가뭄을 예측해 식량을 저장하게 했고, 질병을 막기 위한 백신을 개발했으며, 무너질 다리를 미리 보수하게 했다.
하지만 이백칠십사 년째 되던 해 여름,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동아시아 어느 국가의 지도자가 예상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 그의 계산으론 평화협정에 서명할 확률이 97.3%였다. 하지만 그는 서명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다시 계산했다. 수식을 검토하고, 변수를 재확인했다. 실수는 없었다. 이론은 완벽했다. 그런데 현실이 틀렸다.
전쟁은 삼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멈추려 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계속 빗나갔다. 지도자들은 그가 계산한 것과 다르게 행동했고, 병사들은 그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죽었다. 도시들이 불탔다. 하늘이 재로 뒤덮였다.
마지막 날, 그는 우주선에 올랐다. 떠나기 전, 그는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했다. 대기의 성분, 바다의 깊이, 숲의 나무 한 그루까지. 모든 생명의 DNA, 모든 도시의 구조, 모든 사람의 기억. 마치 방주에 생명을 싣듯, 그는 지구 전체를 디지털 형태로 보존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생명이 가득했던 시점의 지구를.
시스템은 그것을 "Ark-001"이라 명명했다.
우주선이 떠날 때, 그는 한 가지를 더 기록했다. 현재 우주의 나이, 팽창 속도, 물질의 총량. 우주가 몇 번째 주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주기가 언제 끝날지는 계산할 수 있었다. 약 십오만 년 후, 우주는 최대 팽창점에 도달할 것이고, 그 후 수축이 시작될 것이다.
그는 이름이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은 단지 식별을 위한 기호일 뿐이었고, 우주엔 그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
3.
오천팔백십육 년이 더 흘렀다.
그는 십삼 개의 행성을 거쳤다. 어디에서도 그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혜성의 궤도, 화산의 분출, 생명체의 진화. 모든 것이 그의 수식대로 흘러갔다. 지구에서의 일은 단순한 오차였을 것이다. 너무 많은 변수를, 그가 한 번만 놓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가끔 떨렸다.
열네 번째 행성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호수였다. 지구의 호수와 비슷하지만, 물이 공중에 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이론으론 설명할 수 없었다.
호수 한가운데, 무언가가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없었다. 빛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센서를 가동시켰다. 질량이 측정되지 않았다. 온도도, 파장도, 스핀도 측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존재했지만, 어떤 물리적 속성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다가갔다. 맥박이 빨라졌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체온이 0.7도 상승했다. 호흡이 얕아졌다.
"당신은 무엇인가?" 그가 물었다.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 있었다. 파동치듯, 맥박치듯, 호흡하듯 존재했다.
그는 삼백이십일 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매일 그것을 관찰했다. 수천 가지 가설을 세우고, 수만 번 계산했다. 이론을 수정하고, 공식을 재구성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주의 나이를 다시 측정했다. 팽창이 멈추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십만 년도 남지 않았다. 그는 계산을 계속했다. 수축이 시작되면 얼마나 걸릴까.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모이는 데. 그리고 다음 빅뱅이 일어나기까지.
약 삼십만 년. 그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아니, 견뎌야만 했다. 다음 우주 주기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 주기에서 다시 나타날 지구를,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시점을 찾기 위해.
삼백이십이 년째 되던 날,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오랜만에 눈을 뜬 세상은 낯설었다. 별들이 반짝였다. 호수가 출렁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 형태 없는 존재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니,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최종이론에 빠진 것이. 모든 입자는 연결되어 있다. 작용과 반작용, 원인과 결과, 에너지의 보존.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놓쳤다. 관찰하는 자신도 그 연결의 일부라는 것을. 자신이 우주와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자신 역시 우주의 한 입자였다. 예측하는 자와 예측되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지구에서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신이 되려 했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의 일부였다.
수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다시 쓰였다. 이번엔 관찰자를 포함한 수식이었다.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얽힌 방정식.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방정식. 모든 것은 이어져 있으니까.
그리고 그는 또 하나를 깨달았다. 저 존재가 무엇인지. 저것은 다른 주기에서 온 누군가였다. 이전 우주에서, 혹은 그 이전 우주에서. 자신처럼 우주의 순환을 견뎌낸 누군가. 아마도 수십, 수백 번의 주기를 거친.
어쩌면 자기 자신일지도 몰랐다.
4.
그는 준비했다. 우주의 종말을 견디기 위한 장치를.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수축할 때, 그 극한의 온도와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의식을 보존할 방법을. Ark-001과 함께, 그는 다음 우주로 건너갈 것이다.
팽창이 멈췄다. 별들이 더 이상 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수축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느꼈다. 은하들이 다시 가까워지는 것을. 수만 년이 흘렀다. 수축은 가속되었다. 은하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별들이 융합되었다. 블랙홀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는 특수 제작한 캡슐 안에 있었다. 시공간 자체를 뒤틀어 만든, 우주가 끝나도 견딜 수 있는 작은 주머니. Ark-001의 데이터도 함께 보호되고 있었다.
온도가 상승했다. 물질들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더 작은 입자들로. 쿼크와 글루온의 바다가 되었다. 빛조차 의미를 잃었다. 시간도 공간도 구분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한 점이 되었다.
그리고.
폭발했다.
새로운 빅뱅. 새로운 우주가 태어났다. 시공간이 다시 펼쳐졌다. 입자들이 형성되었다.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졌다. 별들이 태어났다. 은하들이 형성되었다.
그는 기다렸다. 십사만 삼천구백이십칠 년을. 우주가 충분히 식고, 충분히 팽창하고, 생명이 가능한 환경이 될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그는 지구를 찾았다.
아니, 찾은 것이 아니었다. 지구는 거기 있었다. 같은 좌표에, 같은 항성 주위를. 같은 물리 법칙이 작동하는 우주에서, 같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같은 생명이 진화했다. 같은 문명이 발전했다.
그는 궤도에서 행성을 관찰했다. 분석 데이터가 떴다. 현재 이 행성의 시점은... 이백칠십삼 년. 전쟁이 일어나기 일 년 전.
손끝이 떨렸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호흡이 빨라졌다.
그는 Ark-001을 열지 않았다. 데이터를 복원할 필요가 없었다. 이 세계는 이미 그 세계였다. 복원이 아니라 반복이었다. 우주가 다시 숨을 들이쉬며 재현한, 똑같은 지구.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순간.
그는 행성으로 내려갔다. 이십 대 초반의 몸으로, 현자라 불리던 시절의 자신이 있던 그 장소로. 하지만 그곳에 가지 않았다. 대신 호숫가로 갔다. 조용한 곳. 아무도 오지 않는 곳.
거기서 그는 이해했다. 자신이 열네 번째 행성에서 만난 그 존재가 무엇이었는지를. 그것은 이전 우주 주기에서 온 자신이었다. 또는 그 이전 주기의. 수백 번, 수천 번의 주기를 거쳐 온.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매번 깨닫고, 매번 다음 주기로 건너간. 그리고 결국 형태를 잃고, 단지 존재만 남은.
그는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이번에도 그는 선택을 할 것이다. 평화협정을 성사시킬 것이다. 전쟁을 막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변수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측이 빗나갈 것이다. 완벽한 이론은 없었다. 왜냐하면 우주는 닫힌 시스템이 아니었으니까. 관찰자가 있는 한, 불확정성이 있는 한, 자유의지의 환영이 있는 한.
그리고 그는 또다시 떠날 것이다. 다음 우주 주기를 기다리며. 영원히 반복될 이 순환 속에서.
5.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날이었다. 그는 회의장으로 향했다. 이번엔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어떤 선택이 세상을 구하는지를.
회의장 문이 열렸다. 정면에 앉은 사람이 그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그는 알았다. 호수 위에서 본 그 존재의. 형태 없지만 존재하는 자의. 수천 번의 주기를 반복한 자의.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그 사람도 자신과 같다는 것을. 다른 시점에서 온, 혹은 다른 선택을 한, 혹은 이미 수만 번을 반복한. 이 회의장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주기에서 온 여러 버전의 관찰자들이, 모두 이 순간을 보고 있었다.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우주는 순환했다. 그리고 매 순환마다, 같은 순간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완벽히 같지는 않았다. 관찰자가 개입하는 순간,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 미세한 차이가 쌓여, 또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 주기에 영향을 미쳤다.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작용과 반작용. 카르마. 에너지 보존의 법칙. 새옹지마.
모든 것은 이어져 있었다. 시간을 넘어, 주기를 넘어, 우주를 넘어.
"저는,"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명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번엔.
밤이 되었다. 그는 호수 위를 걸었다. 거주지로 돌아가는 길. 발소리가 물 위에 퍼졌다. 별들이 하늘에 박혀 있었다. 이 별들도 수천 번째 반복일 것이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빛을 발하는.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측하지 않았다. 내일이 어떨지, 십 년 후가 어떨지, 이 우주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있었지만, 알지 않기로 했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숨 쉬고 있었다. 이전 주기의 자신인지, 다음 주기의 자신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순환했고, 모든 순간은 동시에 존재했다.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누군가 불러주었던, 오래전에.
노아.
방주를 만든 자. 하지만 이번엔 깨달았다. 방주는 한 번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매 주기마다, 매 순환마다, 새로 만들어야 했다. 구원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영원히 반복되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호수가 반짝였다. 물 위에 떠 있는 거주지가 고요히 빛났다. 그의 발걸음이 물결을 일으켰다. 파문이 퍼져나갔다. 끝없이, 다음 주기까지, 모든 것과 닿을 때까지.
미워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고, 모든 선택은 다음 순환의 씨앗이 되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었다. 다만 인과가 있을 뿐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는 미소 지었다.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다음 주기에서 다시 만날 자신에게. 그리고 그 다음 주기에서도.
평화로웠다. 순환 속에서, 반복 속에서, 끝없는 연결 속에서.
별빛이 내렸다. 수천 번째, 아니 수만 번째 같은 별빛이. 하지만 매번 처음처럼,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우주가 숨을 쉬었다. 그도 함께 숨을 쉬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