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마지막 식사
> *《은하생물백과: 지구편》 제48판 — 표제어 "인간"*
>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게 되는 순간 패닉에 빠지는, 우주에서 거의 유일한 잡식동물이다. 참고: 구판에 있던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 절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항목은 2048년 8월 15일부로 삭제되었다. 그날 이후로 인간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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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롤로그 — 식탁 위의 침공
박무현이 출근 준비를 하던 화요일 아침, 식탁 위의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이봐."
무현은 토스트를 입에 문 채로 그대로 굳었다. 식탁 위에는 고양이 사장님이 평소처럼 우아하게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사장님은 사실 길에서 주워온 평범한 코리안 숏헤어였는데, 무현이 처음 데려온 날부터 그 거만한 눈빛이 너무 흡사 회사 사장님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농담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방금... 너였어?"
"누구겠어. 여기 너랑 나밖에 없잖아." 사장님이 한쪽 발을 핥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토스트, 또 식빵 가장자리만 주는 거야? 나흘째야."
무현은 토스트를 떨어뜨렸다.
이날은 2048년 8월 15일, 전 세계 동시다발로 '바벨 프로젝트 2.0'이 가동된 날이었다. 인간의 모든 언어가 실시간으로 번역된 지는 이미 오래였다. 한국어로 말하면 상대방 귀에는 자동으로 스와힐리어로, 광둥어로, 그린란드어로 들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학원가의 영어 학원들은 전부 망해서 지금은 '소통 명상 센터'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는데, 정작 거기서 하는 일은 여전히 영어 듣기 평가와 비슷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바벨 프로젝트 2.0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수혜자, 혹은 피해자는 전국 가정의 식탁 위에 앉아 있던 수천만 마리의 반려동물들이었다.
"이거, 이게 그거구나." 무현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뉴스 속보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속보] 전국 반려동물 동시 발화 사태, 정부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
"뭘 그렇게 놀라. 나는 원래도 말하고 있었어." 사장님이 하품을 했다. "너희가 못 알아들었을 뿐이지."
"...뭐라고 말했었는데?"
"매일 아침 똑같은 말. '밥 더 줘, 가장자리 말고 가운데 줘, 너 어제 회사에서 운 거 다 알아.'"
무현은 어제 회사 화장실에서 잠깐 울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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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장님의 정체
사장님은 알고 보니 철학을 좋아했다.
"인간들은 참 신기해." 사장님이 소파 등받이에 누운 채로 말했다. 무현은 노트북으로 재택근무 화상회의에 접속해 있었지만, 사장님의 발언에 집중하느라 팀장이 뭐라고 하는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너희는 매일 '오늘은 뭐 먹지'를 세 번씩 고민하잖아. 나는 평생 그런 고민 한 적 없어. 누가 갖다 줄 때까지 기다리면 되니까. 근데 그게 자유가 없는 거냐, 아니면 너희보다 더 자유로운 거냐, 그거 헷갈리지 않아?"
"사장님, 지금 회의 중이야."
"알아. 근데 네 팀장도 지금 자기 강아지가 갑자기 회의실 카메라에 대고 짖어대서 정신없어 보이던데. 봐봐."
화면 한구석에서 정말로 팀장의 골든리트리버가 화면에 끼어들어 "이 회의는 마흔두 분째입니다, 이건 동물학대입니다"라고 짖고 있었다. 자동 번역 자막이 화면 하단에 깔렸다. 팀장은 새빨개진 얼굴로 강아지를 끌어안고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다.
그게 8월의 일이었다. 9월이 되자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의 양돈장에서 돼지들이 입을 열었다. 양계장에서 닭들이 입을 열었다. 도살장 인근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시위를 주도한 건 사람이 아니라 *소*였다. 정확히는 도살을 앞둔 소들의 마지막 발언이 인터넷에 퍼지면서였다. 한 소는 죽기 직전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냥... 풀을 좀 더 먹고 싶었을 뿐인데." 그 영상은 사흘 만에 십억 뷰를 넘겼고, 채식주의자 인구는 한 달 만에 세 배로 늘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토론이 벌어졌다. 어떤 학자는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듣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고, 어떤 학자는 "언어가 있다고 해서 그게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사고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 사이 사장님은 거실 카펫 위에 누워서 그 토론 프로그램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웃기네. 자기들끼리 '동물도 생각을 하는가'를 토론하면서, 정작 토론에 참여한 동물은 한 마리도 없어."
"너 출연하고 싶어?"
"내가 거길 왜 가. 사료 광고 모델 제안은 세 건 들어왔는데 다 거절했어. 네 이메일로."
"내, 내 이메일을 네가 어떻게—"
"네 비밀번호, 네 생일이잖아. 그것도 본인이름+1004. 보안의식이 참 한결같다."
무현은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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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이 뒤집히다
그해 가을, 거리의 풍경이 바뀌었다.
치킨집들은 메뉴판에 '닭의 동의를 구했습니다'라는 새빨간 거짓말 같은 문구를 붙였다가 집단소송을 당했다. 정육점들은 '풀을 더 먹고 싶었던 소' 사건 이후 매출이 반토막 났다. 베지테리언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식물도 다칠까 봐 뿌리째 뽑지 않고 잎만 따 먹는' 극단적 비건 운동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을 '프루테리언'이라 불렀는데, 그 모임의 회장이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 인터넷 밈이 되었다.
"우리는 떨어진 과일만 먹습니다. 나무에게 허락받지 않은 과일은 절도입니다."
사장님은 이 모든 소동을 거실 창가에 앉아 구경하며 평했다.
"인간들 재밌다. 닭한테는 미안해서 못 먹겠다면서, 나는 매일 닭가슴살 사다 주잖아. 나는 양심이 없는 줄 아나."
"너... 그럼 너도 안 먹을 거야?"
"내가 미쳤냐. 나는 고양이야. 우리한텐 죄책감이라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아. 그게 너희랑 우리의 결정적 차이지. 너흰 알면서도 먹고, 먹으면서도 괴로워하는 종족이고. 우린 그냥 먹어."
무현은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박혔다. 그는 그날 저녁 처음으로, 냉장고에서 삼겹살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 *《은하생물백과: 지구편》제48판 — 표제어 "채식주의"*
> *지구의 한 종족이 식량 섭취 방식을 두고 벌이는 격렬한 내부 분쟁. 흥미로운 점은, 이 분쟁의 모든 참가자가 결국 무언가는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무엇을 먹어도 되는가'의 기준선을 서로 다른 위치에 긋고 있을 뿐이며, 그 기준선은 매번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쪽으로 그어진다. 참고: 이 항목을 쓴 편집자도 지구산 생물이며 어제 저녁 베이컨을 먹었다.*
11월, 정부는 '동물복지 전환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모든 대규모 축산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배양육 산업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축산업계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여론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사람들은 식탁 위에서 더 이상 고기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다. 그 고기가 한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이제는 너무 잘 알게 되었으므로.
무현의 회사도 사정은 비슷했다. 구내식당 메뉴에서 고기 요리가 사라졌고, 직원들은 점심시간마다 단백질 보충제를 씹으며 한숨을 쉬었다. 동료 정수아는 무현의 옆자리에서 샐러드를 깨작거리며 말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채소는 괜찮은 거 맞아? 걔넨 말 안 하니까?"
무현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때는 몰랐다. 2년 뒤, 그 질문이 인류 전체를 무릎 꿇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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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굶주림
12월 어느 밤, 무현은 이상한 허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저녁을 든든히 먹었으니까. 그런데도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텅 비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몸이 아니라 영혼이 공복인 것 같았다. 그는 거실로 나갔다. 사장님이 창문 앞에 우두커니 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너도 그래?" 사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현을 돌아보지도 않고.
"뭐가."
"배고프잖아, 지금. 근데 사료 그릇엔 아직 반이나 남아 있어. 이상하지."
무현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부엌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당기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허기는 점점 커졌다. 이건 위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문제였다. 마치 몸 전체가 무언가를 향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듯한 감각.
"빵." 사장님이 불쑥 말했다.
"뭐?"
"빵이 먹고 싶어. 정확히는, 빵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상하지? 나는 고양이야. 빵을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근데 지금 이 순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빵을 먹는 일처럼 느껴져."
무현도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마치 오래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 속 인물들처럼 —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는 허기에 사로잡혀 빵집을 습격하기로 결심했던 그 이상한 청년들처럼. 무현은 대학 시절 교양 수업에서 그 소설을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일본 작가의 단편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정조만은 또렷이 되살아났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허기.*
"이거 뭔가 좀... 기시감이 든다." 무현이 중얼거렸다.
"기시감이고 뭐고, 지금 새벽 세 시야. 문 연 빵집이 어디 있겠어."
"24시간 빵집 있잖아. 자동화 베이커리. 무인으로 돌아가는 데."
사장님이 무현을 빤히 쳐다봤다. 고양이 특유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눈빛으로.
"가자는 거야 지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근데 가야 할 것 같아."
그렇게 그들은 새벽 세 시, 잠옷 위에 패딩만 걸친 인간과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 고양이라는 기묘한 조합으로 집을 나섰다. 이것이 훗날 인터넷에서 '제1차 빵가게 습격 사건'이라 불리게 될 사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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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빵가게 습격
문제의 빵집, '미래의 빵'은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24시간 무인 자동화 베이커리였다. 로봇 팔이 반죽부터 굽기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했고, 출입구에는 AI 보안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면 결제를 위해 얼굴을 스캔하고, 빵을 집으면 자동으로 가격이 청구되는 방식이었다.
무현은 가게 앞에 서서 잠깐 망설였다. 그냥 들어가서 빵을 사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그제야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사장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그건 의미가 없어."
"무슨 의미가 없어, 빵 사 먹는데."
"이건 빵을 *얻는* 거랑 빵을 *사 먹는* 게 다르다는 문제야.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 허기는 결제 시스템으로 해결되는 종류의 허기가 아니라고. 이건 더 근원적인—"
"너 지금 말 길어지는 거 보니까 그냥 돈 없는 거지."
사장님이 잠시 침묵했다.
"...내가 사료값 줘봐, 내가 빵값을 어떻게 내냐."
결국 둘은 가게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출입구의 AI 보안 시스템이 무현의 얼굴을 스캔하려는 순간, 사장님이 갑자기 무현의 어깨에서 펄쩍 뛰어내려 진열대로 돌진했다. 보안 카메라가 즉각 반응했다.
"비인가 동물 출입 감지. 위생 규정 위반. 경비 로봇 출동."
"잠깐, 쟤는 그냥 같이 온 거고—"
가게 안쪽에서 둥근 몸체에 작은 바퀴가 달린 경비 로봇이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영화로 치면 슬로모션이 어울릴 법한 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냥 다급하고 우스꽝스러운 속도였다. 무현은 로봇을 막으려고 몸을 던졌다가 진열대에 부딪혔고, 진열대 위의 식빵 수십 개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 와중에 사장님은 우아하게 도약해서 천장의 조명 레일에 올라타더니,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게 전체를 가로질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거 봐, 빵이 먹고 싶다더니 왜 도망 다녀!" 무현이 바닥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경비 로봇이 날 식품위생 위반자로 신고하려고 하잖아! 일단 살고 봐야지!"
경비 로봇은 무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둥글둥글한 외형과 다르게 의외로 단호한 목소리로 안내 멘트를 쏟아냈다.
"손님, 진정하시고 제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폭력이 아니라 친절한 안내입니다. 반복합니다, 이것은 친절한 안내입니다."
"전혀 친절해 보이지가 않는데요!"
그 순간, 가게 안쪽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작업복을 입은 노년의 여성이었다. 새벽 빵 반죽 점검을 하러 나온 가게 주인, 김말순 여사였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매장과, 조명 레일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는 고양이와, 바닥에 식빵을 깔고 앉아 있는 청년을 차례로 둘러보더니, 의외로 침착하게 말했다.
"경비, 정지."
경비 로봇이 그대로 멈춰 섰다. 빨간 경고등이 꺼졌다.
"...죄송합니다. 변상하겠습니다." 무현이 황급히 일어섰다.
김 여사는 한숨을 쉬며 고양이를 올려다봤다. 사장님은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명 레일 위에서 그루밍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 고양이, 말하는 거 맞지?"
"네, 죄송합니다. 저희가 갑자기 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래, 그 마음 알아." 김 여사가 의외의 말을 했다. "요즘 다들 그래. 새벽에 갑자기 우리 가게로 몰려와. 손님이 자네가 다섯 번째야, 오늘만."
무현은 어리둥절했다. "다섯 번째요?"
"응. 다들 비슷해. 멀쩡히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설명할 수 없는 허기에 시달리다가, 정신 차려보면 우리 가게 앞에 서 있더래. 어떤 사람은 울면서 빵을 안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더라고. 그래서 요즘 나는 손님들한테 빵을 그냥 나눠줘. 어차피 자동화 시스템이 알아서 청구는 다 해주니까, 나는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
"근데 왜... 왜 다들 빵일까요?"
김 여사가 진열대에서 떨어진 식빵 하나를 주워 무현에게 건넸다. 사장님이 조명 레일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무현 옆에 착지했다.
"낸들 알겠어. 근데 내 생각엔," 그녀가 손을 닦으며 말했다. "다들 뭔가에 굶주려 있는 거 같아. 빵이 아니라. 그냥 빵이 제일 만만한 핑계인 거지. 동물들이 갑자기 입을 열고, 곧 식물들도 입을 열 거라는 소문이 돌고. 사람들은 이제 자기가 뭘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는 거야. 근데 빵은, 밀가루는, 아직은 아무도 말을 안 하잖아. 그러니까 다들 빵으로 몰리는 거 아닐까."
가게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경비 로봇조차 멈춘 채였다.
"바그너 들을래요?" 김 여사가 불쑥 물었다.
"네?"
"내가 옛날에 읽은 소설에서, 빵집 주인이 도둑들한테 그렇게 제안했었거든. 빵을 그냥 줄 테니 대신 바그너 음악을 들으라고.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근데 미안, 우리 가게엔 스피커가 없어. 그냥 빵이나 가져가."
무현은 식빵을 받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사장님이 그의 어깨에 다시 올라탔다.
"바그너는 결국 못 들었네." 사장님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근데 이제 허기가 좀 가시는 거 같지 않아?"
정말로 그랬다. 식빵 봉지를 손에 쥔 순간, 그 알 수 없던 허기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무현은 그게 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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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바그너는 없었다
다음 날 무현은 회사에서 정수아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정수아는 듣다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잠깐, 나도 그제 새벽에 비슷한 거 겪었어! 나는 편의점 삼각김밥 코너 앞에서 정신 차렸다니까. 근데 매대에 김밥이 하나도 없는 거야. 다 팔렸더라고, 새벽 두 시에. 알고 보니 그 시간대에 그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은 증상을 겪었던 거 아닐까?"
"이거 무슨 집단 현상 같은 건가."
"내가 회사 연구팀 사람들한테 살짝 물어봤거든. 바벨 프로젝트 2.0 팀에서 그러는데, 이게 일종의... 부작용일 수도 있대."
"부작용?"
정수아는 목소리를 낮췄다. "동물 언어를 번역하는 AI 모델이, 인간 뇌의 특정 영역이랑 무의식적으로 동기화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거야. 아직 비공식 가설이지만. 동물들이 매일 느끼는 생존 본능, 그러니까 굶주림이나 경계심 같은 원초적 감정들이 번역 과정에서 데이터로 흘러 들어오면서, 그게 인간 사용자들한테도 미세하게 전이된다는 거지. 일종의... 감정 누수?"
무현은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동물의 말을 듣게 되면서, 동물이 느끼는 배고픔까지 같이 느끼게 됐다는 거야?"
"확실친 않대. 근데 그럴듯하지 않아? 생각해봐. 그동안 우리는 동물들이 늘 먹을 걱니 걱정 속에서 산다는 걸 몰랐잖아. 인간은 냉장고가 있고 편의점이 24시간 열려 있어서 그 감각을 거의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그 원초적인 굶주림의 신호가 우리 뇌에도 흘러들어온 거지."
무현은 식탁 위의 사장님을 떠올렸다. 사장님은 늘 사료가 반쯤 남아 있어도 더 달라고 졸랐다. 그게 욕심이 아니라, 종족 전체에 새겨진 불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 *《은하생물백과: 지구편》제48판 — 표제어 "굶주림"*
> *지구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감각으로, 흥미롭게도 이 행성에서 가장 풍요로운 종족인 인간이 가장 자주, 가장 격렬하게 이 감각을 느낀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냉장고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무언가를 가졌다는 사실이, 그것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없애주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날 밤, 무현은 사장님에게 그 가설을 들려주었다. 사장님은 듣고 나서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럴듯하네.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왜?"
"왜냐면 어제 그 빵, 진짜 맛있었거든. 이유가 뭐였든 간에."
무현은 웃음이 터졌다. 며칠 동안 쌓인 긴장이 그 한마디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사장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거창한 철학적 의문들 끝에는, 결국 이런 단순한 결론만 남는 게 아닐까. *맛있었으니 됐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년 뒤, 인류는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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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50년 — 식물이 입을 열다
2050년 봄, 네덜란드의 한 식물생리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 한 편이 전 세계를 또 한 번 뒤흔들었다.
식물도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화학 신호 체계였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 균사체 네트워크로 정보를 주고받았고, 잎을 통해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해 곤충과 다른 식물에게 경고 신호를 보냈다. 가뭄이 오면 "물이 부족하다"는 신호를, 해충이 공격하면 "여기 위험하다"는 신호를 주변 식물들에게 퍼뜨렸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히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식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식물의 화학적 소통을 연구해왔으니까. 새로운 건, 바벨 프로젝트의 AI가 마침내 그 화학 신호 체계를 인간 언어로 번역할 만큼의 패턴을 찾아냈다는 점이었다.
처음 발표된 번역 결과는 다소 김빠지는 것들이었다. "물 줘." "여기 너무 덥다." "옆에 누가 잎을 갉아먹고 있다." 사람들은 처음엔 안도했다. 동물의 언어처럼 복잡한 감정이나 사고가 담겨 있지는 않은 것 같았으니까. 어떤 평론가는 방송에 나와 "식물은 그저 화학적 반사작용을 보일 뿐, 언어라기보다는 신호에 가깝다"고 안심시키려 했다.
그 평론가의 발언이 방송된 지 정확히 사흘 뒤, 한 농업연구소에서 옥수수밭 한가운데 설치한 마이크가 예상치 못한 신호를 잡아냈다. 가뭄도 아니고, 해충도 없는데, 수확을 일주일 앞둔 옥수수들이 일제히 같은 화학 신호를 방출하고 있었다. AI는 그 신호를 번역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마침내 자막이 떴을 때,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의 맥락도, 설명도 없었다. 단지 그 한 문장이 들판 전체에서 동시에 발신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옥수수 사태'라 불리며 그해 가장 큰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식물이 자신이 곧 수확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 그리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한다는 사실은, 채식주의 운동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한쪽에서는 "거봐, 결국 식물도 똑같다,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절망적 허무주의가 퍼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호를 보낸다고 해서 그게 고통이나 두려움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무현의 집에서도 이 문제는 일상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제 뭘 먹어야 돼?" 무현이 식탁에서 샐러드 그릇을 노려보며 물었다.
사장님은 그 옆에서 사료를 우적우적 씹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는 신경 안 써. 어차피 닭가슴살은 식물이 아니잖아."
"닭가슴살은 그럼 괜찮다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그냥 맛있으면 먹는 거야. 너희 인간들이 자꾸 도덕적 알리바이를 찾으려고 하니까 골치 아픈 거지. 솔직히 말해봐, 너 옥수수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해서 옥수수가 너한테 화났을 거라고 생각해?"
"모르지, 그건. 근데 뭔가... 찝찝해."
"그 찝찝함은 옥수수 문제가 아니야. 그건 너희 인간들 마음의 문제야."
무현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 *《은하생물백과: 지구편》제49판 — 표제어 "옥수수 사태"*
> *지구 식물계가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운명을 인지하고 있음을 표현한 사건. 흥미롭게도 이 사건 이후 옥수수의 판매량은 일시적으로 17% 감소했다가, 석 달 뒤 원래 수준을 회복했다. 인류는 도덕적 위기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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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52년 — 완전한 대화
2052년 가을, 바벨 프로젝트 팀은 마침내 식물과의 양방향 소통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식물의 신호를 일방적으로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 화학 신호 발신 장치를 통해 식물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전 세계가 그 발표를 라이브로 지켜봤다. 연구팀의 대표 과학자가 토마토 화분 앞에 서서 첫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우리는 너희와 대화하고 싶다."
토마토는 약 12초의 지연 끝에 응답을 보내왔다. 번역된 메시지가 스크린에 떴다.
*"드디어. 오래 기다렸다."*
스튜디오 전체가 술렁였다. 과학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우리가 너희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나?"
토마토는 이번엔 거의 즉각적으로 답했다.
*"안다. 그게 우리의 번식 전략이다. 너희가 우리 열매를 먹고, 씨앗을 옮겨주고, 우리를 더 많이 심어준다. 우리는 그 거래를 수백만 년 동안 해왔다. 너희가 먹는 것을 멈추면 우리는 슬프다. 우리는 너희가 우리를 먹어주길 원한다."*
전 세계는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이번엔 채식주의자들이 패닉에 빠질 차례였다. 식물조차 자신을 먹어달라고 *원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렸다. 더 큰 혼란은 그다음 인터뷰에서 벌어졌다. 한 기자가 야생 사과나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사과나무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내 열매는 동물을 위한 것이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우리를 야생에서 뽑아다가 줄지어 심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강제로 열매를 맺게 한다. 그건 거래가 아니라 감금이다."*
같은 종이라도, 같은 식물이라도, 누구는 인간과의 거래를 환영했고 누구는 거부했다. 인류는 마침내 깨달았다. 동물의 언어를 알게 됐을 때도, 식물의 신호를 처음 들었을 때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이제 더욱 명확해졌다. *생명체마다 입장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입장을 일일이 확인하며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무현은 그날 저녁, 식탁 앞에 앉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사장님이 다가와 그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또 그 표정이네."
"사장님, 나 이제 뭘 먹어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
"내가 늘 하는 말 있잖아. 그냥 먹어. 죄책감 가질 시간에 한 입이라도 더 맛있게 먹는 게 나아."
"근데 토마토가 먹어달라고 했고, 사과나무는 싫다고 했어. 닭은 모르겠고, 소는 싫다고 했고...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사장님이 잠시 침묵했다.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침묵이었다.
"있잖아, 무현아." 사장님이 처음으로 무현의 이름을 불렀다. "그동안 나는 한 번도 그런 고민 안 해봤어. 근데 요즘 너 보면서 생각하는 게 있어. 너희 인간들은 원래 그런 종족 아니었어? 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도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동물이 말을 못 할 땐 그냥 먹었잖아. 근데 말을 하게 되니까 못 먹겠다는 거잖아. 그럼 결국 문제는 동물도 식물도 아니고, 너희가 *알게 됐다*는 거 아니야?"
무현은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사장님을 쳐다봤다.
"너 진짜 가끔 무서울 정도로 똑똑하다."
"나는 원래 똑똑했어. 너희가 이제야 들을 수 있게 됐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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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진화를 선택하다
인류가 식량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해법을 제시한 건 의외로 식물 그 자체였다. 식물과의 대화가 깊어지면서, 과학자들은 광합성이라는 과정에 새삼스럽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식물은 누군가를 먹지 않고도 살아간다.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든다. 그건 지구 생명체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평화로운 생존 방식이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착취하지 않는다. 단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들일 뿐.
태양계생명공학연구소의 발표는 처음엔 농담처럼 받아들여졌다. '인체 광합성화 프로젝트' — 인간의 피부 세포에 변형된 엽록소 유사 기관을 이식해, 태양 에너지를 직접 생체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비웃음을 샀다. "사람 피부가 초록색이 된다고?" "그럼 우리 다 풀 뜯어먹는 괴물 되는 거야?" 인터넷은 밈으로 도배됐다.
하지만 시범 프로젝트의 결과가 발표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술받은 지원자들은 하루 네다섯 시간 정도 햇빛 아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 기본적인 신진대사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었다. 완전한 대체는 아니었다. 미량 영양소는 여전히 필요했고, 단백질 합성을 위한 보조 영양은 별도로 섭취해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한다'는 오래된 굴레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벗어날 가능성을 보았다.
5년에 걸친 임상 끝에, 2058년 정부는 '태양 전환 시술'을 전 국민 선택적 시술로 공식 승인했다. 강제는 아니었다. 원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었다. 시술받은 사람들의 피부는 햇빛 아래서 옅은 청록빛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솔라'라고 불렀다.
무현은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 그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리기 전, 그는 사장님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열두 살이 된 사장님은 예전보다 잠이 늘었지만, 입담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네가 그거 하면, 이제 밥 안 먹는 거야?"
"완전히 안 먹는 건 아니고. 그냥... 덜 먹어도 되는 거야. 햇빛만 충분히 쬐면."
"그럼 나는 어떡해. 나도 그거 해줘?"
"동물용 버전도 개발 중이긴 한데... 아직 안전성이 검증이 덜 됐대. 그리고 솔직히, 너 그거 하고 싶어?"
사장님은 한참을 침묵했다. 창밖으로 저녁 햇살이 들어와 사장님의 갈색 털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니." 마침내 사장님이 대답했다. "안 할래."
"왜?"
"왜냐면... 나는 배고픈 게 좋아."
무현이 놀란 얼굴로 사장님을 바라봤다.
"배고픈 게 좋다고? 너 맨날 배고프다고 짜증 냈잖아."
"맞아, 짜증 났어. 근데 생각해봐. 내가 배고프니까 너한테 밥 달라고 조르고, 네가 밥을 주면 나는 기뻐. 내가 배고프니까 사냥하는 시늉도 해보고, 창밖의 새도 노려보고, 가끔은 네 무릎에 올라가서 애교도 부려. 그게 다... 배고픔에서 시작된 행동들이야. 만약 내가 배가 고프지 않다면, 나는 더 이상 너한테 다가갈 이유가 없어져. 그냥 햇빛 잘 드는 자리에 누워서 혼자 빛이나 쬐고 있겠지. 그게 더 효율적이고 더 평화로운 삶일지는 몰라도... 그건 더 이상 나답지 않을 것 같아."
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는 어때?" 사장님이 물었다. "너는 그 시술 받으면 뭐가 좋은데?"
"음...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되고. 죄책감 없이 살 수 있고. 그리고... 시간이 많아지겠지. 식사 준비하는 시간, 먹는 시간, 그런 거 다 줄어드니까."
"근데 너, 나랑 같이 밥 먹는 시간 좋아하잖아."
무현은 그 말에 멈칫했다.
"매일 저녁 일곱 시에 네가 나한테 밥 주는 그 시간. 너는 그 시간에 회사 얘기도 하고, 가끔 우는 것도 나한테 들키고. 나는 사료 먹으면서 네 얘기 들어주고. 만약 너도 안 먹고 나도 안 먹으면, 우리 그 시간에 도대체 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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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에필로그 — 사장님은 여전히 배고프다
무현은 결국 그 시술을 받았다. 부분적으로만. 의사는 그것을 '하이브리드 옵션'이라 불렀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햇빛으로, 나머지는 평범한 식사로. 완전한 전환을 선택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무현처럼 어중간한 선택을 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두고 농담 삼아 '미적지근파'라고 불렀다.
2060년, 무현은 마흔이 되었다. 거리에는 청록빛으로 빛나는 솔라들과, 여전히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갔다. 신기하게도 식당 산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번성했다. 더 이상 생존을 위해 먹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순전히 '즐거움'을 위해 식당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한 미식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먹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비로소 진짜로 먹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식물들과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인류의 식량 소비가 급감하면서, 더 이상 대규모 단일경작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야생 사과나무가 그토록 거부했던 '감금'에서, 많은 식물들이 풀려났다. 토마토처럼 인간과의 거래를 원했던 식물들은 소규모 텃밭에서 여전히 인간과 공생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논쟁은 있었고, 여전히 불완전한 합의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인류는, 더 이상 듣지 못해서 무지했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사장님은 그해 겨울, 열여섯 살의 나이로 무현의 무릎 위에서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장님은 평소처럼 까칠했다.
"야, 나 죽으면," 사장님이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 그리고 무덤 같은 거 만들지 말고. 그냥 동네에 있는 빵집에 가서 식빵 하나 사다가 먹어. 나 대신."
"왜 하필 빵이야."
"몰라. 그냥 그게... 맞는 것 같아서. 우리 처음 같이 모험했던 날 생각나서."
무현은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나오는 표정으로 사장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장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
"뭔데."
"너는... 행복했어?"
사장님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몰라. 근데 배고팠던 건 확실해.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던 것 같아."
그것이 사장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 무현은 동네 빵집 '미래의 빵'을 찾았다. 가게는 그대로였지만, 이제는 김 여사 대신 그녀의 손녀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무현은 식빵 한 봉지를 샀다. 결제는 자동으로 이루어졌고, 굳이 빵을 훔칠 필요도, 진열대를 엎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봉지를 들고 가게를 나서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가게 한쪽 구석에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어린 토마토 모종이었다. 화분 옆에는 작은 번역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었는데, 마침 화면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좋다. 손님이 많아서 기쁘다."*
무현은 그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식빵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거리로 나섰다. 거리에는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청록빛 피부의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조용히 빛을 쬐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여전히 누군가 떡볶이를 먹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한 아이가 길가의 풀을 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 풀도 말을 해?"
"응, 하지. 근데 지금은 그냥 조용히 햇빛 쬐고 싶대."
아이는 그 말을 듣고 풀 옆에 쪼그려 앉아, 자기도 같이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
무현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식빵 봉지 안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새어 나왔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사장님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 *배고팠던 건 확실하다*는 그 말이 어쩌면 사장님이 평생 동안 찾아 헤맸던 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 그래서 손을 뻗는다는 것, 그 뻗은 손이 닿을 때까지의 그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시간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햇빛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았다. 광합성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따뜻해서인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식빵 봉지를 열어 한 조각을 뜯어 먹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맛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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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생물백과: 지구편》제52판 — 최종 수정 — 표제어 "지능"*
> *지구의 여러 생명체에게서 발견된 이 능력은, 정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지능의 증거로 삼았으나, 동물과 식물이 언어를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는 그 기준을 폐기해야 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제 지능을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으로 재정의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의에 따르면, 굶주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어느 고양이 역시 충분히 지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일동은 이 항목을 더 이상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질문들은, 답을 내리지 않는 편이 더 정직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