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러브버그 여왕

요긴소프트 2026. 6. 24. 21:15
728x90
반응형

### — 혹은, 11.7초와 만년 사이의 어딘가에 관한 보고서

---

# 1장. 11.7초

> **《은하생물 및 감정 백과사전》 제7판, '사랑(Love)' 항목, p.2,847**
>
> *사랑(愛, Love): 두 개체 이상이 자발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기로 합의하는 비효율적 행동 양식. 지구 종 한정으로 광범위하게 관찰되며, 평균 지속 시간은 종(種)에 따라 수백만 년(일부 단세포 생물 — 이 경우 '사랑'의 정의 자체에 대한 논란 있음)에서 11.7초(2031년, 지구 Homo sapiens, 한국 서울 지역 기준)까지 다양하다. 주목할 점은 지속 시간이 가장 짧은 종이 이 감정에 가장 많은 언어적 자원을 투입한다는 사실이다. 은하계 감정 효율 지수: 최하위권 (하위 0.003%). 편집자 주: 이 수치는 최신판 기준이며, 매년 갱신 중.*

---

2031년 9월 17일 화요일, 오전 9시 22분.

한도윤은 오늘 벌써 세 번 사랑에 빠지고 세 번 이별했다.

첫 번째는 오전 7시 41분에 시작되었다. 앱 '스파크(Spark)'가 그의 생체리듬 데이터와 수면 패턴을 분석해 "오늘의 최적 매칭 상대"로 추천한 박지연(28세, UX 디자이너, 취향 일치도 94.7%)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고, 박지연은 47초 만에 "저도 어제부터 당신 프로필 계속 봤어요"라고 답했다. 도윤은 "저도요"라고 답했다. 거짓말이었지만 어차피 알고리즘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알고리즘의 거짓말이지 그의 거짓말은 아니었다.

두 번째 매칭은 8시 03분. 세 번째는 8시 51분.

이별은 각각 7시 58분, 8시 39분, 9시 17분에 완료되었다.

이별 방식은 통일되어 있었다. 스파크의 '스마트 이별' 기능 — 상대방의 심리 프로파일을 분석해 가장 충격이 적은 문구를 AI가 생성해 주는 서비스. 도윤은 이 기능을 개발한 회사의 카피라이터였으므로 자기가 쓴 카피로 세 사람에게 이별을 고한 셈이었는데, 그 사실이 그에게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 그를 업계 최고의 카피라이터로 만든 비결이었다.

*"당신과의 시간은 완벽했습니다. 다음 만남도 완벽하길 바랍니다."*

완벽했다. 도윤은 캔맥주를 따며 네 번째 카피 초안을 펼쳤다.

---

그가 사는 마포구 합정동 오피스텔은 12층이었다. 창문이 넓었다. 이 도시의 조망을 팔아 분양한 건물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래야 했다. 창밖으로는 한강이 보였고, 한강 너머 여의도의 빌딩들이 보였고, 그 빌딩들 사이로 오늘도 드론 배송 편대가 날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그것을 드론이라고 생각했다.

오전 9시 22분, 네 번째 카피 초안의 세 번째 줄을 고치던 중이었다. *"당신의 다음 사랑까지, 15초."* — 아니, 15초는 너무 구체적이다. 숫자가 들어가면 반박이 가능해진다. *"당신의 다음 사랑은, 바로 지금."* — 이게 낫다. 독자가 '바로 지금'이 언제인지 물어볼 틈을 주지 않는다.

카피라이터의 가장 큰 재능은 질문할 틈을 없애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창밖을 무심코 바라봤을 때, 도윤은 드론 편대가 이상하게 조밀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드론치고는 너무 불규칙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그리고 드론치고는 너무 붉다는 것을.

검붉다, 정확히는.

검붉은 점들의 구름이 창밖 허공에 떠 있었다. 그 구름은 단일한 방향 없이 소용돌이치며 이동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 창문에 달라붙은 한 마리가 보여서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 각각의 점들은 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쌍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교미 중인 채로 날아다니는 벌레들.

"...뭐야."

도윤은 캔맥주를 들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에 붙은 한 쌍의 벌레를 눈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길이 약 1.5센티미터. 더듬이 짧음. 날개 검붉음. 몸통이 합쳐진 채로 날개를 퍼덕이는 두 개체.

*교미 중에 날 수 있는 곤충이 있나?*

있다, 라고 나중에 그는 알게 된다. 세상에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만 있을 뿐이다.

---

12층 아래, 편의점 사장이 비명을 질렀다.

도윤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비명에 반응하는 신체 반사가 도시 생활 10년으로 완전히 거세된 상태였으므로,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뉴스 앱을 열었다.

알림 47개가 쌓여 있었다. 스파크 매칭 알림 12개, 배달 앱 알림 8개, 그리고 뉴스 속보 27개.

**[속보] 서울 전역 정체불명 곤충 대량 출몰 — 당국 원인 파악 중**
**[속보] 마포·용산·강남구 일대 붉은 곤충 떼 목격 신고 폭주**
**[속보] 질병관리청 "즉시 실내 대피 권고"**
**[속보] 전문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종류... 추가 분석 필요"**
**[속보] 러브버그(Love Bug)? 소셜미디어서 곤충 이름 급부상**

러브버그.

도윤은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봤다. 마케터적 감각이 즉각 반응했다. 좋은 이름이었다. 공포스러운 것에 귀여운 이름을 붙이면 공포가 반으로 준다. 남은 반은 매혹으로 채워진다.

그는 속보를 닫고 스파크를 열어 다섯 번째 매칭 상대 프로필을 스와이프했다.

이송희, 29세, 그래픽 디자이너, 취향 일치도 91.3%. 프로필 사진은 제주도 여행 사진. 배경이 아름다웠다.

*좋아요.*

---

창틈으로 그것이 들어온 건 그로부터 정확히 3분 후였다.

교미 상태의 러브버그 한 쌍이 창틈의 미세한 틈새를 통과해 실내로 진입했다.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진세화 박사과정생이 "곤충의 교미 자세는 생각보다 유연합니다"라고 학술적으로 설명해 주게 되지만, 지금 이 순간 도윤에게는 그저 기묘한 광경이었다.

벌레 두 마리가 한 덩어리인 채로 그의 오피스텔 실내를 날아다니더니, 캔맥주 위에 착지했다.

도윤은 벌레를 내려다봤다. 벌레 — 두 마리가 한 덩어리인 — 는 더듬이를 까닥거렸다.

"야. 눈치 없냐."

그가 캔을 기울이자 벌레는 날아올랐다. 그는 손등으로 공중의 벌레를 쳐냈고, 벌레는 창가 쪽으로 날아가 유리창에 부딪혔다가 다시 실내로 방향을 틀었다. 도윤은 회사 로고가 박힌 A4 봉투를 들어 벌레를 향해 휘저었다.

이 과정에서 봉투 속 계약서 일부가 바닥에 흩어졌다.
이 과정에서 책상 위 커피잔이 기울었다.
이 과정에서 커피잔이 키보드 위에 엎어졌다.

"아, 진짜!"

그가 키보드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러브버그는 유유히 환풍구 쪽으로 날아 사라졌다. 교미 상태를 한 번도 해제하지 않은 채로.

---

뉴스는 빠르게 업데이트되었다.

오전 10시를 넘기자 헬기가 뜨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방역 헬기 두 대가 낮은 고도로 선회하며 약품을 분사했다. 도시 전체가 흐릿한 안개에 덮이는 것 같았다. 방역 차량들이 골목을 누비며 확성기로 방송했다.

*"시민 여러분, 잠시 실내에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방역 당국이 정체불명 곤충 출몰 사태를 조사 중입니다. 해당 곤충에 접촉하지 마시고, 접촉 시 즉시 119에 신고하여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

도윤의 스파크 앱이 울렸다. 이송희 씨가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도 반갑습니다. 혹시 지금 밖에 계세요? 저 러브버그 때문에 출근을 못하고 있어요 ㅠㅠ"*

도윤은 답장을 쳤다. *"저는 재택이라 괜찮아요. 빨리 해결되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이런 거 보면 세상이 너무 불안정한 것 같아서ㅜ 당신 프로필 사진 너무 자연스러운 게 매력적이에요. 원래 사진 잘 찍으세요?"*

*"아뇨, 그냥 그때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은 기분이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네요. 희귀한 능력이에요."*

도윤은 이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리즘이 설계한 대화의 흐름은 예측 가능했다. 상대가 칭찬하면 겸손하게 수용하고, 관심사를 물으면 공통점을 찾고, 감정의 온도를 천천히 높인 뒤 적절한 시점에 '만남 제안'으로 전환. 그는 이 플로우차트를 작성한 사람이었다.

---

그가 커피메이커를 켜려고 주방으로 이동했을 때, 복도 쪽에서 소리가 났다.

복도 너머에서 무언가 웅웅거렸다.

도윤은 커피를 포기하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깐 망설였다. 방역 당국이 실내 대기를 권고했다. 하지만 웅웅거림이 커졌다. 무언가가 문에 달라붙는 소리가 났다.

그는 문을 열었다.

복도가 붉었다.

아니, 정확히는 — 복도 끝 비상구 쪽에서 러브버그 떼가 몰려오고 있었는데, 그 밀도가 공기 자체를 붉게 물들이는 수준이었다. 윙윙, 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소리. 수천 개의 날개짓이 만드는 저주파 진동이 벽을 타고 전해졌다.

도윤은 문을 도로 닫으려 했다.

그 찰나에 복도 반대편 끝, 비상계단 쪽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방역복도 입지 않았다. 헬멧도 쓰지 않았다. 평범한 회색 재킷에 클립보드를 든 누군가가 러브버그 떼가 몰려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뭔가를 적고 있었다. 벌레들이 그 사람 주변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혹은 그 사람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 우회했다.

그 사람이 도윤 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 — 나중에 M이라고만 알려지게 되는 — 은 클립보드에 무언가를 체크했다. 볼펜 딸깍 소리가 벌레 소리를 뚫고 들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도윤에게가 아니라, 클립보드에게 말하듯이.

*"11.7초. 예상보다 빠르네요."*

도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러브버그 한 마리가 문틈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교미 상태인 채로.

그는 캔맥주로 그것을 짓눌렀다.

러브버그는 짓눌렸다.

그 두 개체가 죽는 순간에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윤은 나중에야 기억했다.

---

스파크 앱에서 알림이 왔다.

이송희 씨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있잖아요, 솔직히 말할게요. 저 오늘 러브버그 얘기 나오는 뉴스 보다가 무서워서 대화 시작한 거거든요. 누군가랑 연결되고 싶었나봐요. 근데 당신이랑 대화하니까 조금 안심이 돼요."*

도윤은 이 메시지를 읽었다.

'스마트 이별' 기능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는 창밖을 봤다. 헬기가 계속 선회했다. 도시 전체가 붉은 안개 속에 있었다. 복도에서 러브버그 떼의 진동이 느껴졌다.

*11.7초. 예상보다 빠르네요.*

그 목소리가 귓속에 남았다.

도윤은 이송희 씨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스파크 앱을 닫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 화면을 든 채로 멍하니, 복도에서 들려오는 날개짓 소리를 들었다.

11.7초.

그 숫자가 자신이 오늘 만들었던 카피에 있었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알아챘다.

*"당신의 다음 사랑까지, 바로 지금."*

바로 지금이 11.7초라는 것을, 카피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카피라이터의 가장 큰 재능은 질문할 틈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도윤은 처음으로 — 자신이 평생 질문할 틈을 없애왔다는 것을 — 질문하고 있었다.

---
---

# 2장. 페로몬 A형과 B형 사이

> **가상의 홍콩 영화 《사랑은 곤충처럼 (愛情如蟲)》(1994) 中**
>
> *"나는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사랑이 뭔지 알았다고 생각했어. 알고 보니 내가 안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 모양의 습관이었지. 습관은 끊을 수 있어. 근데 사랑은? 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묶이는 것 같더라고. 마치 — 뭐랄까, 날개를 붙인 채로 태어난 거 같은 느낌? 떼어내면 날 수가 없어."*

---

러브버그가 도시에 출몰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 3시, 진세화는 유튜브 라이브를 시작했다.

정확히는,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유튜브 라이브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세화는 현장 조사 중에 표본을 채집하며 본인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녹화했는데 — 나중에 분석용으로 쓰려고 — 녹화 버튼 옆의 라이브 버튼을 잘못 눌렀고, 그 상태로 2시간 47분간 진행한 혼잣말 형식의 학술 설명이 최종적으로 조회수 340만을 기록하게 된다.

세화는 이 사실을 라이브 종료 후 17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

그 라이브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제가 채집한 표본은 총 43쌍, 86개체입니다. 모두 교미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분리 시도 시 — 잠깐 — 이렇게 하면 —"*

유리 막대로 두 개체를 분리하려는 10초 간의 사투.

*"분리되지 않습니다. 물리적 강제력을 가해도 — 봐요, 안 떨어지죠 — 개체가 죽을 때까지 교미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기존에 알려진 어떤 곤충 종에서도 관찰된 바 없는 특성입니다. 일반적으로 곤충의 교미 시간은 수 분에서 수 시간이지만, 이 종은 —"*

유리 막대가 표본 케이스에 부딪히는 소리.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 종은 교미 상태가 영구적으로 보입니다. 개체 수명 자체가 교미 상태로 설계된 것 같고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개체들이 인간에게 접촉할 경우 피부를 통해 페로몬 물질을 주입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팔에 한 마리를 — 잠깐, 그건 나중에 말하고."*

댓글창이 폭발했다. *잠깐 어제 팔에 뭐가요?* *박사님 먼저 그거 말해요* *아 진짜 궁금한데ㅠ*

세화는 댓글을 보고 있지 않았다.

*"페로몬은 현재 두 종류로 분류됩니다. 편의상 A형과 B형으로 부르겠습니다. A형 페로몬은 주입 당시 눈에 보이는 첫 번째 인물에 대한 강력한 애착 반응을 유발합니다. 옥시토신, 도파민, 세로토닌 계열이 동시에 폭발적으로 분비되며, 이 반응은 — 현재 제 분석으로는 — 영구적입니다."*

영구적.

댓글이 0.3초 멈췄다가 폭발했다. *진짜요?* *영구적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요?* *그럼 지금 물린 사람들 어떻게 됨?* *ㅋㅋㅋ진짜임?*

*"네. 사망 시까지입니다."*

*"B형 페로몬은 좀 더 복잡합니다. B형에 동시에 노출된 두 사람이 서로에게 A형 반응을 일으키도록 — 뭐랄까, 동기화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벌레에 접촉하거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연속으로 접촉할 경우 B형 반응이 유발됩니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A형 반응이 활성화됩니다."*

*"정리하면 — 물리면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게 됩니다. B형이면 그 한 사람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게 됩니다."*

잠깐의 침묵. 세화가 노트에 뭔가를 적는 소리.

*"이상입니다."*

---

이 라이브가 알려지기 전까지, 한도윤은 사흘을 그럭저럭 버텼다.

스파크 매칭은 계속했다. 러브버그 사태로 외출이 제한되자 오히려 앱 사용자가 폭증했다. 집에서 할 게 없는 사람들이 연결을 원했다. 도윤은 하루 평균 매칭 횟수가 세 배로 늘었고, 이별 횟수도 세 배로 늘었다. 그는 '스마트 이별' 기능 개선안을 재택으로 작업하며 캔맥주를 소비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이송희 씨에게는 결국 답장을 보냈다. *"저도 안심이 돼요."* 그리고 이틀 뒤 스마트 이별을 보냈다. 이송희 씨는 *"그럼 빠이 :)"*라고 답했다. 완벽한 이별이었다.

---

세화의 라이브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도윤이 러브버그 관련 뉴스를 스크롤하다가 관련 영상 목록에 떠 있었다. 썸네일이 이상했다. 여자가 유리 막대로 뭔가를 쑤시고 있는 사진.

*[라이브 클립] 서울대 박사과정생, 러브버그 정체 최초 분석 — 물리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다?*

도윤은 영상을 틀었다.

영구적입니다, 라는 말에 그의 손이 멈췄다.

사망 시까지입니다, 라는 말에 그는 캔맥주를 내려놨다.

이 소설에서 도윤이 자발적으로 캔맥주를 내려놓은 것은 이 장면이 처음이다.

*"해독제는 개발 중입니다."*

라이브 영상 끝부분에서 세화가 말했다. 누군가 댓글로 물었고 — 세화는 댓글을 보지 않으면서도 같은 타이밍에 그 말을 했는데, 이것은 우연이라기보다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으며 세화 역시 그렇게 이해했다.

*"해독제 완성 시점은 아직 미정입니다. 협조해 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도윤은 영상을 일시정지했다. 화면에 세화의 얼굴이 정지되어 있었다. 실험복. 안경. 포니테일. 손에 들린 유리 막대.

그는 댓글을 찾았다. *서울대 생태학과 진세화 박사과정이라고 함. 학교 홈페이지에 연락처 있음.*

---

서울대 생태학과 404호 실험실로 찾아간 것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교내는 방역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러브버그 밀도가 도심보다 낮아서 — 학교 주변이 어째서인지 상대적으로 안전지대가 되어 있었다 — 이동이 가능했다. 도윤은 긴 소매 상의를 세 겹 껴입고, 캔맥주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지하철 대신 도보로 30분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다.

캔맥주를 무기로 가지고 온 것은 사흘 전 복도에서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404호 문에 '출입금지 — 실험 중'이라고 씌어 있었다.

도윤은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다시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목소리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무서웠다.

---

문을 여는 순간, 도윤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물건이 동시에 움직였다.

우선, 도윤이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 진동이 문 옆 선반으로 전달되었다.
선반 위에 줄지어 있던 유리 표본 케이스 중 하나가 흔들렸다.
그 케이스가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케이스 안에 러브버그 표본이 들어 있었다.
케이스가 선반 끝에서 떨어졌다.
안에서 그것을 잡으려던 진세화가 책상 모서리에 정면으로 허벅지를 부딪혔다.
세화가 "윽"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케이스는 바닥에 떨어졌지만 깨지지 않았다.
케이스 안에서 러브버그 한 쌍이 뚜껑의 충격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한 러브버그는 즉시 실내를 날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1.8초 안에 일어났다.

"...들어오지 않아도 됐는데요."

세화가 바닥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허벅지를 손으로 누르면서.

"저기, 저는 도움을 —"

"알아요. 댓글 보고 오셨죠."

"댓글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영상에서."

"그 댓글을 나중에 봤습니다. 서울대 생태학과 404호로 찾아오는 사람은 두 부류입니다. 기자이거나, 해독제 원하는 사람이거나."

"해독제가 필요한 게 맞아요."

세화는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시선이 캔맥주 두 개에서 멈췄다.

"물렸습니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예방적 목적으로."

"뭐, 그렇죠."

"해독제는 아직 없습니다."

도윤이 실내로 한 발짝 들어섰다. 탈출한 러브버그가 그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캔맥주로 그것을 쳐냈다. 벌레는 방향을 틀어 세화 쪽으로 날아갔다. 세화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공중에서 그것을 잡으려 했다.

잡지 못했다. 벌레는 책상 위 현미경 쪽으로 갔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쪽으로 움직였다. 도윤이 캔맥주로, 세화가 핀셋으로.

"제가 잡을게요."

"조심해요. 물리면 —"

"압니다. 제 연구 주제입니다."

세화가 핀셋을 들고 현미경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도윤은 그 뒤에서 캔맥주를 들고 대기했다. 벌레가 현미경 렌즈 위에 착지했다. 세화가 핀셋을 뻗었다.

벌레가 날아올랐다.

세화가 몸을 뒤로 젖혔다.

도윤이 캔을 휘둘렀다.

캔이 세화의 안경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안경이 날아갔다. 세화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 정확히는 의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위치에 앉으려 했는데 의자가 30센티미터 비껴 있어서 그냥 바닥에 앉은 것이었다.

벌레는 유유히 환풍구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안경은요?"

"보조가 있습니다."

"어디에요?"

"모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안경을 찾았다. 책상 아래에서 발견했다. 렌즈 한쪽에 금이 가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고입니다. 제가 먼저 닫아뒀어야 했어요."

세화는 금 간 안경을 쓰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노트를 폈다.

"해독제가 없는 건 사실인데, 해독 가능한 물질의 방향성은 잡혀 있습니다. 문제는 실험 대상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도윤이 말했다. "저한테 물리면 됩니까?"

"물리기 전에 해독제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순서가 중요해요."

"언제 완성돼요?"

"모릅니다."

"...일은 잘하시는 거 맞죠?"

세화가 안경 너머로 그를 봤다. 금 간 쪽이 그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지금 실험실에 방역 등록이 되어 있어서 외부보다 러브버그 밀도가 낮습니다. 여기서 작업을 도우시겠습니까? 물리지 않으려면 사람이 두 명 있는 게 낫거든요."

도윤은 실험실을 둘러봤다. 표본 케이스 40개. 현미경 두 대. 엎어진 의자 하나. 바닥에 흩어진 유리 막대들. 벽에 붙은 수십 장의 메모들.

그리고 창밖으로, 러브버그 떼가 날고 있었다.

"캔맥주 들어와도 됩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럼 할게요."

---

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의도치 않게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도윤은 세화가 스파크 헤비유저라는 것을 알았다. 실험 중간에 세화의 폰이 진동했는데 — 알림음이 꺼져 있었지만 진동은 켜져 있었는데 — 화면이 켜지며 '스파크 — 새 매칭 3건'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스파크 쓰세요?"

세화가 폰을 뒤집었다. "연구입니다."

"무슨 연구요?"

"현대 인간의 애착 형성 패턴 연구. 러브버그 페로몬과 비교 분석을 위한 대조군으로."

"그래서 실제로 만나기도 해요?"

세화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일주일에 두세 명 정도."

도윤이 캔맥주를 들다가 멈췄다. "그거 연구 아닌데요."

"연구입니다."

"그냥 앱하는 거잖아요."

"..."

"저도 써요."

세화가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안경 너머로 그를 봤다. 금 간 렌즈 쪽이 여전히 그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당신도요?"

"저 스파크 카피라이터예요."

잠깐의 침묵.

세화가 현미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면 둘 다 연구 목적인 셈이네요."

"그렇게 됩니까."

"그렇게 됩니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 한동안 말없이 각자의 일을 했다. 도윤은 세화가 하라는 대로 페로몬 추출 과정을 보조했고, 세화는 노트에 수식을 채워나갔다.

창밖의 러브버그 떼는 어두워진 후에도 날고 있었다. 밤에는 더 잘 보였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붉은 점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저거 왜 밤에도 날아요?"

"교미 상태이기 때문에 쉬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도윤이 창밖을 봤다. "사랑하면 안 쉬어도 됩니까."

"생물학적으로는, 특정 호르몬 분비 상태에서 수면 필요량이 감소합니다."

"그렇군요."

"인간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초기 연애 단계에서 수면이 줄어드는 현상."

"알아요."

"경험한 적 있어요?"

도윤이 세화를 봤다. 세화는 노트를 보고 있었다.

"아마 없을 거예요. 기억이 없어요."

"11.7초이면 기억이 없을 만하죠."

도윤은 그 말에 뭔가를 대꾸하려 했다가 하지 않았다.

캔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의 러브버그들이 날았다.

---
---

# 3장.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 15가지

> **《은하생물 및 감정 백과사전》 제7판, '자유의지(Free Will)' 항목, p.4,103 — 각주 3번**
>
> *자유의지와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는 은하계 내에서도 수천 년에 걸친 논쟁이 있어 왔다. 일부 학파는 사랑이 자유의지의 가장 순수한 발현이라 주장하고, 반대 학파는 사랑이 자유의지의 가장 완전한 포기라 주장한다. 다만 두 학파 모두 동의하는 한 가지: 강제된 사랑을 받는 쪽이 더 불행한가, 강제로 사랑하는 쪽이 더 불행한가에 대해 아직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 통제군과 비교해 둘 다 꽤 불행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둘 다 실험 중단을 원하지 않았다. 편집자 주: 이 각주는 다음 판에서 삭제될 예정이었으나, 삭제 담당자가 당해 연도 러브버그 사태로 인해 업무 복귀를 못하고 있어 남게 되었다.*

---

러브버그 사태 2주차.

서울시는 '러브버그 피해 현황 통계'를 발표했다. 확진자 — 즉 페로몬 주입이 확인된 인원 — 14,337명. 이 중 A형 단독 피해자 9,201명, B형 동기화 피해자 2,568쌍(5,136명). 나머지는 분류 불명.

이 통계 자체보다 흥미로운 것은 SNS 반응이었다.

러브버그 피해자들 중 일부가 본인 계정에 현황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제 러브버그한테 물렸는데 그 순간에 제 앞을 지나가던 분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 연락처를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어서 — 검정 패딩에 이어폰 끼고 계셨는데 혹시 보시면 연락 주세요. 저 평생 당신만 생각해야 하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남친이랑 같이 물렸는데 우리 B형이래요. 사실 어제 헤어지려고 했는데 이제 어떡하죠...?"*

*"솔직히 나 러브버그 부러움. 평생 한 사람 사랑한다는 게 고통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냥 꿈같은 얘기임. 15초 연애 하다 지쳐서 이제 아무것도 못 느끼겠음."*

해시태그가 갈렸다.

**#러브버그피해자** — 강제 주입에 대한 동의 없음, 법적 배상 요구, 해독제 촉구.
**#러브버그부러워** — 영원한 사랑에 대한 로망, 일부 자발적 피노출 시도.

이 두 해시태그가 동시에 트렌딩 1, 2위를 차지한 날, 도윤은 세화의 실험실에서 그 뉴스를 봤다.

"이거 봐요."

도윤이 폰을 내밀었다. 세화는 현미경에서 눈을 들어 폰을 봤다. 두 개의 해시태그를 번갈아 봤다.

"흥미롭네요."

"흥미롭다고요? 둘 다 이해가 돼요?"

"네."

도윤이 폰을 도로 집었다. "저는 둘 다 이해가 안 돼요."

"피해자 쪽이요, 부러운 쪽이요?"

"둘 다요."

세화가 노트를 폈다. "피해자 쪽은 이해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동의 없는 신체 개입이니까."

"그건 알겠어요. 근데 그 감정이 진짜가 되어버리면 — 물리고 나서 진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버리면 — 그 사람이 정말 피해를 입은 건지 모르겠어요."

"페로몬이 만든 감정이니까요."

"그런데 페로몬 없이 만든 감정은 뭔데요?"

세화가 노트에서 눈을 들었다.

"도파민입니다. 세로토닌. 옥시토신. 아드레날린. 다 화학물질이에요."

"그럼 러브버그가 특별히 나쁜 건 아닌 거잖아요?"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했다는 차이가 있죠."

"사람들이 스파크 쓸 때도 알고리즘이 감정을 설계하는데요."

긴 침묵.

세화가 현미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비교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달라요?"

"..."

"어떻게 달라요? 진짜로."

세화가 현미경 렌즈를 조정했다. 조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는데도 조정했다.

"알고리즘은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선택은 인간이 합니다."

"선택지가 알고리즘이 설계한 것들이면, 선택도 알고리즘의 설계 안에 있는 거 아닌가요?"

세화가 현미경 렌즈 조정을 멈췄다.

"...그 카피라이터들, 이런 것도 생각하면서 카피 쓰나요?"

"생각하지 않으면서 써야 좋은 카피가 나와요."

"그렇군요."

"근데 요즘 자꾸 생각이 돼서."

세화가 그를 봤다.

"여기 온 이후로요?"

도윤이 잠깐 멈췄다. "글쎄요."

---

2주차 후반, 러브버그의 이동 경로에 패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작위적으로 보이던 벌레 떼가 실제로는 일정한 집중 지점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반경 12킬로미터를 두고 점점 안쪽으로 수렴하는 나선형 움직임.

그 나선의 중심은 서울 어딘가였다.

세화의 실험실 창밖으로도, 벌레들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조밀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날 오후, 사건이 터졌다.

---

벽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작았다. 건물이 오래된 탓이라고 생각했다. 도윤이 페로몬 추출 보조 작업을 하는 동안 세화는 해독제 관련 계산을 노트에 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배달 앱으로 시킨 샌드위치를 먹으며 묵묵히 각자의 일을 했다.

소리가 커졌다.

벽이 진동했다. 표본 케이스들이 선반 위에서 덜컥거렸다.

"저거 뭐예요?"

"건물 외벽에 —"

세화가 말을 마치기 전에, 벽의 오래된 균열 사이로 러브버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마리였다.

그 다음 순간 수십 마리가 쏟아졌다.

"테이블 위로!"

세화가 먼저 책상 위로 올라갔다. 도윤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책상 위에 올라서자 러브버그들이 바닥을 덮기 시작했다. 교미 상태인 벌레 쌍들이 뒤엉켜 바닥이 붉게 물드는 광경.

"해독제 어디 있어요?!"

"아직 완성 안 됐습니다!"

"그럼 지금 어떡해요?!"

"일단 물리면 안 됩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두 사람이 책상 위에 서서 발밑으로 러브버그들이 흐르는 것을 봤다. 벌레들은 주로 바닥을 따라 이동했지만 일부는 날아올라 책상 높이까지 왔다.

도윤이 캔맥주로 날아오는 벌레들을 쳐냈다.

"이거 효과 있어요?"

"접촉 전에 방향을 틀면 됩니다. 죽일 필요는 없어요."

"죽이면 안 됩니까?"

"연구 대상이거든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연구 대상은 항상 중요합니다."

도윤이 캔을 또 휘둘렀다. 세화는 핀셋을 들고 날아오는 벌레를 정밀하게 쳐냈다. 두 사람이 좁은 책상 위에서 어깨를 붙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벌레를 막았다.

"야! 해독제 아직도 멀었어요?!"

"현재 임상 1단계입니다."

"임상이라고요?! 지금 흰쥐가 어딨어요?!"

"당신이 있잖아요."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세화가 핀셋으로 벌레를 쳐내면서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쪽을 봤다.

"...농담이에요?"

"아뇨."

"저한테 먼저 써볼 생각이에요?"

"동의가 있다면요."

"동의 안 합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러브버그 한 마리가 도윤의 팔 쪽으로 날아들었다. 세화의 손이 0.3초 안에 그것을 잡아 핀셋으로 탁 쳐냈다. 핀셋이 도윤의 팔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 접촉이 0.3초였다.

도윤은 팔을 봤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세화의 손이 그의 팔을 스친 것이었지, 러브버그가 착지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0.3초가.

"괜찮습니까?"

세화가 물었다.

도윤은 팔을 봤다. 세화의 손을 봤다. 세화가 다시 정면을 보며 날아오는 벌레를 쳐냈다.

"...네."

그는 다시 캔맥주를 들었다.

벌레들이 바닥에서 파도쳤다. 바닥에 깔린 붉은 물결이 서서히 균열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나자 러브버그 떼가 빠져나가며 바닥이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책상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벌레들이 다 나갔는지 확인하는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도윤은 세화의 손을 보지 않으려고 캔맥주를 봤다.

*0.3초면 충분합니다.*

세화의 라이브에서 했던 말이었다. 페로몬 주입에 걸리는 시간.

도윤은 그 0.3초가 의미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안다면 — 무엇을 알아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 내려가도 될 것 같아요."

세화가 말했다.

"네."

둘이 책상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러브버그 몇 마리가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은 떠났다.

세화가 노트를 들어 아까 하던 수식을 계속 적기 시작했다.

도윤은 그것을 보다가 말했다.

"그 수식, 해독제 맞아요?"

"네."

"언제 완성돼요?"

세화가 펜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도윤은 그 말이 수식 얘기인지 다른 얘기인지 물으려다 하지 않았다.

캔맥주를 따며 창밖을 봤다.

러브버그들이 나선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점점 더 좁아지는 나선.

---
---

# 4장. M의 클립보드

> **가상의 홍콩 영화 《사랑은 곤충처럼 (愛情如蟲)》(1994) 中 — 이 대사가 실제로는 《서유기 2 — 선리기연》의 그 유명한 독백을 오마주한 것임이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다**
>
> *"만약 내가 영원히 그 사람만 사랑하게 된다면, 그게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르겠어. 다만 확실한 건 — 그 선택이 내가 한 게 아니라는 것.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그래도 불러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

러브버그 사태 18일차. 방역 당국의 드론 추적 분석 결과가 흘러나왔다.

벌레 떼의 나선 이동은 단순한 집단 습성이 아니었다. 페로몬 신호를 역추적한 결과, 모든 러브버그 개체가 참조하고 있는 단일 신호원이 존재했다. 그 신호원은 이동하고 있었다 —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마치 도시 전체를 조율하듯.

신호원의 마지막 확인 위치: 서울대학교 근처, 관악산 자락.

"저기 아닌가요?"

세화가 노트에서 눈을 들지 않고 말했다.

도윤이 창밖을 봤다. 관악산 방향. 나선의 수렴점.

"어디서 그걸 알았어요?"

"이틀 전부터 신호 분포도를 직접 계산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왜 이제 말해요?"

"계산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도윤이 코트를 집었다.

"가봐야죠."

세화가 노트를 덮었다. "저도요."

---

관악산 초입, 낙성대 공원 근처.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M은 공원 벤치에 앉아 클립보드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주변으로 러브버그들이 날고 있었다. 그러나 M 반경 1미터 안으로는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벌레들이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M은 두 사람을 보고 시선을 들었다가 다시 클립보드로 내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오셨네요."

"당신 누구예요?"

도윤이 물었다. 세화는 러브버그 무리가 M을 피하는 패턴을 관찰하며 노트를 꺼냈다.

M이 클립보드에 체크 표시를 했다.

"M이라고 합니다."

"그게 이름이에요?"

"충분한 이름입니다. 지구에서 쓰기에는."

도윤이 세화를 봤다. 세화는 노트를 적으며 말했다. "그냥 듣죠."

M이 벤치 옆 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두 사람이 앉았다. M은 클립보드를 무릎 위에 놓고 그들을 봤다.

"설명을 먼저 드리는 게 맞겠죠."

"부탁드립니다."

"러브버그는 지구 고유 종이 아닙니다."

침묵.

세화가 펜을 멈췄다. "외래종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DNA 분석 결과가 지구 어떤 종과도 매칭이 안 됐거든요."

"외래보다 조금 더 멀리서 왔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외계에서요?"

M이 특별한 표정을 짓지 않고 대답했다. "은하계 문명 연합의 감정 교정 생물입니다."

또 침묵.

M이 클립보드를 들었다.

"은하계 문명 연합은 구성 행성의 감정 지수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합니다. 이성적 존재가 감정 능력을 상실하면 문명이 붕괴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반복적으로 관찰됐거든요. 감정이 의사결정, 협력, 장기 계획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

M이 클립보드의 수치를 확인했다.

"최근 500년간 감정 지속 시간 지수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사랑 감정의 평균 지속 시간이 현재 11.7초. 은하계 하한선인 30초를 이미 2019년에 하회했고요. 적색 경보 등급을 받은 지 7년 됩니다."

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동의도 없이 벌레를 풀었다고요?"

"동의를 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지구 감정 붕괴까지 2.3년 남았거든요."

"감정 붕괴가 정확히 뭔데요."

M이 클립보드를 내렸다.

"아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사랑뿐 아니라 슬픔, 기쁨, 분노, 공포 — 모든 감정의 지속 시간이 임계치 이하로 떨어지면 뇌의 감정 회로가 사실상 비활성화됩니다. 개체로서는 살아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기능하지 않는 상태."

"징후가 이미 나타나 있었습니다. 11.7초짜리 연애가 그것입니다."

도윤이 아무 말도 못했다.

세화가 노트를 적다가 멈췄다.

"그러면 러브버그 페로몬이 그 교정제인 거군요."

"감정의 인위적 연장. 단기 솔루션입니다. 은하계에서 유사한 사례에 적용해 성공한 케이스가 14건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케이스는요?"

M이 클립보드를 봤다. "3건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개체들이 강제된 감정에 저항하다가 — 감정 자체를 거부하게 됩니다. 교정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붕괴합니다."

침묵이 길었다.

세화가 말했다. "해독제를 만들면 어떻게 됩니까?"

M이 클립보드를 봤다. 체크리스트를 훑는 것 같았다.

"지구는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11.7초로요."

"11.7초로."

도윤이 벤치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고 허공을 봤다.

나선형으로 날고 있는 러브버그 떼가 보였다. 수천 쌍의 벌레들이 교미 상태로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당신은 뭐가 더 나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생각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나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이 지구 기준과 달라서."

"그럼 지구 기준으로."

M이 잠깐 멈췄다.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들한테 온 겁니다."

"우리한테요?"

"이 결정은 지구인이 해야 합니다. 저는 실행만 합니다."

도윤이 세화를 봤다.

세화가 도윤을 봤다.

두 사람이 동시에 M을 봤다.

"잠깐, 그럼 해독제를 만들지 말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더 정확히는 — 지구 전체가 결정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결정할 시간이 없으니 여기 있는 분들이 결정을 내리는 게 실용적입니다."

"그게 무슨 논리예요."

"은하계 표준 프로세스입니다."

"이게 표준이에요?!"

M이 클립보드에 체크를 했다. 이 항목에 대한 항의가 정해진 회차만큼 발생했다는 체크인 것 같았다.

"참고 사항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M이 도윤을 봤다.

"당신 팔에 0.3초 접촉이 있었습니다. 페로몬 주입은 0.3초면 충분합니다."

도윤이 팔을 봤다. 팔을 봤다가 세화를 봤다.

세화가 핀셋으로 러브버그를 쳐냈던 그 순간. 세화의 손이 그의 팔을 스친 그 0.3초.

세화가 말했다. "저도 0.3초였습니다. 그 순간에."

두 사람이 마주봤다.

M이 클립보드에 뭔가를 적었다.

"B형 반응이 됩니다. 두 분이 동시에 노출됐으니."

"그럼 우리 둘 다 서로를 —"

"서로를 영원히 사랑하게 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것인지, 아직 발현 전인지는 — 검사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검사하면 알 수 있어요?"

"알 수 있습니다."

도윤이 세화를 봤다.

세화가 노트를 내려다봤다. 수식이 가득 찬 페이지. 해독제 계산.

도윤이 물었다. "세화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

"해독제 만들 거예요? 아니면 안 만들 거예요?"

세화가 한참 노트를 봤다.

"두 가지가 같은 질문입니까?"

"뭐가요?"

"해독제를 만드냐 마냐의 문제와,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냐의 문제가 — 같은 질문입니까."

도윤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모르겠어요."

"저도 모릅니다."

M이 클립보드에 체크했다. 또 한 항목.

"결정이 나오면 연락 주세요."

M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재킷을 여미고 클립보드를 겨드랑이에 끼었다.

"어떻게 연락해요?"

"저한테 말하면 들립니다."

"어디에 있든요?"

"예."

M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러브버그 떼가 M을 중심으로 열렸다가 M이 지나가면 다시 닫혔다. 마치 그 존재를 중심으로 공기 자체가 다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M이 멀어지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참고로 — 11.7초가 문제인 게 아닙니다. 느끼는 능력을 잃는 게 문제입니다. 짧아도 진짜로 느끼면 괜찮아요. 아무것도 안 느끼는 게 붕괴입니다."

M은 그 말을 클립보드에 보며 했다. 체크리스트의 마지막 항목인 것처럼.

그리고 사라졌다.

---

두 사람이 벤치에 남았다.

러브버그 떼가 그들 주변을 날았다. 그러나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이미 페로몬이 투여된 존재들에게 다시 투여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도윤이 팔을 봤다.

세화도 자기 팔을 봤다.

"느껴져요?"

세화가 물었다.

"뭐가요?"

"페로몬 효과가. 지금 나를 보면서 뭔가 이전과 다른 게."

도윤이 세화를 봤다. 금 간 안경. 포니테일. 실험복. 손에 여전히 핀셋.

"모르겠어요. 이전과 비교할 기준이 없어요."

"비교 기준이 없는 이유가 뭡니까."

"만난 지 2주밖에 안 됐으니까요."

"2주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함께 있었는데."

"그렇죠."

"이전이라는 게 사실 없는 거죠."

"없죠."

"그러면 지금 느끼는 게 페로몬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는 건데."

"없는 거죠."

"..."

"..."

도윤이 캔맥주를 따며 말했다.

"세화씨."

"네."

"해독제 완성하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원래."

세화가 잠깐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접종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요?"

"..."

세화가 핀셋을 쥐었다 폈다 했다.

"모르겠습니다."

도윤이 캔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저도요."

---
---

# 5장. 만년, 혹은 11.7초

> **다시, 《은하생물 및 감정 백과사전》 제7판, '사랑(Love)' 항목, p.2,847 — 이번엔 각주 끝까지**
>
> *사랑(愛, Love): 두 개체 이상이 자발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기로 합의하는 비효율적 행동 양식...(본문 생략)...*
>
> *각주 47: 단, 이 항목에 대한 편집자 주를 덧붙인다. 지구 종의 사랑이 '비효율적'이라는 평가에 일부 필진이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효율성과 무관하게 — 지속 시간이 짧은 사랑과 강제된 사랑 중 어느 것이 '더 사랑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에 대해, 은하계 감정철학 분과는 아직 미결 처리 중이다. 7판 발행 기준, 답 없음. 추후 개정판에서도 답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그 질문을 덜 중요하게 만드는지, 더 중요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 합의가 없다.*

---

진세화가 해독제를 완성한 것은 러브버그 사태 23일차 오전이었다.

발표 방식은 유튜브 라이브였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안녕하세요. 진세화입니다. 러브버그 페로몬 해독 물질을 완성했습니다. 현재 질병관리청과 협력해 대량 생산 및 배포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댓글이 폭발했다. *진짜요?* *해독제 어디서 맞을 수 있어요?* *저 아직 물 안 맞았는데 예방적으로도 됩니까?* *물린 사람들은 해독하면 감정이 없어져요?*

마지막 댓글에 세화가 잠깐 멈췄다.

*"해독하면 페로몬 효과가 제거됩니다. 자연 상태로 돌아갑니다."*

*자연 상태가 뭐냐는* 댓글이 17개 올라왔다.

---

실험실에서 세화가 라이브를 하는 동안, 도윤은 그 옆에서 캔맥주를 들고 서 있었다. 화면에 잡히지 않는 각도에서.

라이브가 끝나고 세화가 폰을 내렸다.

두 사람이 해독제 바이알을 사이에 두고 마주봤다.

투명한 액체였다. 5밀리리터 분량. 근육주사.

"맞을 거예요?"

세화가 물었다.

"세화씨는요?"

"저한테 먼저 물었습니다."

도윤이 바이알을 봤다. 바이알을 보다가 세화를 봤다.

"이거 맞으면 — 지금 느끼는 게 없어져요?"

"페로몬 기반 감정은 제거됩니다."

"지금 느끼는 게 페로몬 기반인지 아직 모르는 거죠?"

"모릅니다."

"그러면 맞고 나서도 뭔가 느끼면, 그건 페로몬이 아닌 거네요."

"논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도윤이 한참 바이알을 봤다.

"저는 안 맞을게요."

세화가 말했다. "이유가 뭡니까."

"모르겠어요. 그냥 — 지금 확인하고 싶지 않아요."

"확인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알 수 있는데."

"알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 지금 이 상태가 싫지 않아서요."

침묵.

세화가 바이알을 집었다.

그리고 자기 팔을 내밀었다.

"저도 안 맞겠습니다."

도윤이 세화를 봤다.

"이유요?"

"저도 0.3초였습니다. 그 순간에." 세화가 팔을 내리며 말했다. "그게 페로몬인지 아닌지 저는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만 확인 방법이 — 해독제가 아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어떻게 확인해요?"

"통제군이 필요합니다."

"통제군이요."

"페로몬이 없는 상태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오는지 관찰해야 하니까요."

"그게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세화가 생각했다.

"모릅니다."

"짧게 잡으면요?"

"...11.7초보다는 길 것 같습니다."

도윤이 웃었다. 이 소설 전체에서 도윤이 처음으로 웃은 장면이었다. 소리가 없는 웃음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해요."

---

M에게 결정을 전달한 것은 세화였다.

실험실 창가에서 말했다. 클립보드는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M이 들린다고 했으므로 그냥 말했다.

"해독제는 배포합니다. 원하는 사람에게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부터 러브버그 떼가 서울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3일에 걸쳐, 나선의 역순으로, 벌레들이 도시 밖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 도윤은 창밖을 봤고, 하늘에 러브버그가 한 마리도 없었다.

---

사회는 소란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해독제 배포 센터 앞에 줄이 생겼다. 긴 줄이었다. 기다리면서 사람들이 대화했고, 그 대화에서 몇 명은 해독제를 맞을 마음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아직 대기 중이라고도 했다.

A형 단독 피해자들의 상황은 복잡했다. 물린 순간의 '첫 번째 인물'이 모르는 사람인 경우, 사랑하는 대상을 아예 찾지 못하는 경우, 찾았으나 상대가 해독제를 맞고 이미 다른 사람과 함께인 경우. 뉴스는 이 이야기들을 연달아 보도했다.

SNS의 해시태그는 계속 갈렸다.

**#러브버그이후**에는 두 종류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독제 맞았는데 그 사람이 여전히 좋아요. 이게 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해독제 맞았는데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벌레가 만들어준 게 더 진짜 같았어요."*

*"해독제 안 맞기로 했어요. 물린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랑 지금도 같이 있어요. 어떻게 됐든 간에 — 지금 행복해요."*

*"해독제 맞았는데 여전히 모르겠어요. 사랑이 뭔지."*

도윤은 이 게시물들을 스크롤하다가 스파크를 켰다.

그리고 스파크를 껐다.

---

그는 새 카피 초안을 펼쳤다.

'스파크' 신규 캠페인. 브리핑 요청서에는 "러브버그 사태 이후 감소한 사용자 수 회복을 위한 감성 캠페인"이라고 씌어 있었다.

도윤은 한참 빈 파일을 봤다.

*당신의 다음 사랑까지, 15초.*

그 카피를 썼던 날이 생각났다. 9월 17일 오전. 러브버그가 처음 보인 날. 창밖에 붉은 점들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그는 그 카피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타이핑했다.

*당신의 다음 사랑까지, ___.*

빈칸.

숫자를 넣으려다 멈췄다. 11.7초. 만년. 0.3초. 23일. 그 어떤 숫자도 들어가지 않았다.

빈칸으로 남겼다.

옆에서 세화가 말했다.

"카피 완성됐어요?"

세화는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해독제 배포 관련 후속 연구 계획인 것 같았다.

도윤이 화면을 봤다.

"모르겠어요."

"빈칸인데요."

"빈칸이 카피입니다."

세화가 잠깐 화면을 봤다.

"좋은 카피네요."

"질문할 틈을 안 없애줘요?"

"빈칸이 질문이잖아요."

도윤이 화면을 봤다.

*당신의 다음 사랑까지, ___.*

"그렇네요."

창밖은 조용했다. 러브버그는 없었다.

도윤은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페로몬인지. 도파민인지. 옥시토신인지. 혹은 그 어떤 화학물질의 이름도 아닌, 다른 무엇인지.

하지만 M의 말이 생각났다.

*짧아도 진짜로 느끼면 괜찮아요. 아무것도 안 느끼는 게 붕괴입니다.*

그는 지금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

서울 어딘가에서, M은 클립보드에 마지막 체크를 했다.

결과란에 무엇을 적었는지는 알 수 없다.

M이 읽는 언어로 쓰여 있었으므로.

---

러브버그 사태 이후, 스파크의 월간 사용자 수는 34% 감소했다.

그 34%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일부는 해독제를 맞고도 이전의 상대와 연락을 이어갔다.
일부는 물리지도 않았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기로 했다.
일부는 혼자 있기로 했다. 혼자가 더 진짜인 것 같아서.

그리고 일부는 —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언어가 없었거나, 아니면 설명하지 않는 것이 더 정확했거나.

---

《은하생물 및 감정 백과사전》 제7판의 '사랑' 항목은 다음 개정에서 수정될 예정이다.

수정 예정 내용: 지구 Homo sapiens의 사랑 평균 지속 시간.

담당 편집자가 최신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그러나 그 숫자가 늘어났는지 줄어들었는지, 혹은 측정 불가 판정을 받았는지는 —

아직 알 수 없다.

---

**— 끝 —**

---

*"전 과거에 사랑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습니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 《서유기 2 — 선리기연 (大話西遊之仙履奇緣)》 (1995)*

*이 대사가 가상의 홍콩 영화 《사랑은 곤충처럼》의 저 대사에서 왔는지, 아니면 반대인지는 —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

> **작가 노트**
>
> 러브버그(*Plecia nearctica*)는 실제로 존재하는 곤충이다. 미국 남동부에 서식하며, 교미 상태로 날아다니는 특성 때문에 '러브버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소설의 러브버그는 그 이름과 형태만 빌렸을 뿐, 나머지는 전부 허구다.
>
> 11.7초는 허구의 수치다. 실제 사랑의 평균 지속 시간은 아직 측정된 바 없다. 측정할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측정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중간에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어서라는 설이 있다. 이 설도 허구다.
>
> 페로몬과 도파민과 옥시토신은 실제로 존재한다. 사랑이 화학물질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실제로 미결 상태다. 이 소설이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아마 없을 것이다.
>
> M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의 의도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