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의 문법
너에게 이 글을 남긴다.
이번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미 한 번, 너와 닮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그 편지는 「씨앗의 문법」이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아마 너는 이미 그것을 읽었을 것이다. 혹은 아직 읽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두 가능성이 나에게는 더 이상 모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편지의 뒷면이다. 나는 그 편지에 쓰지 않은 것들, 그때는 나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쓸 수 없었던 것들을 여기에 남긴다. 첫 번째 편지가 우리가 무엇을 남기기로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면, 이 편지는 우리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리고 그 발견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 마지막 여섯 달 동안 두 개의 문서를 동시에 쓰고 있었다. 하나는 다은과 미래의 너를 향한 것이었고, 이 문서는 나 자신과,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된 어느 봄날의 나를 향한 것이다.
1. 데자뷰
다시, 그 운동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다은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봄, 나는 운동장 구석에 서서 다은이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 교수였다.
"한나 씨, 지금 어디예요."
여기까지는 내가 이미 한 번 썼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던 순간, 나는 그 편지에 적지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전화기를 귀에 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이 장면을 이미 한 번 겪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 교수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릴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채 듣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시뮬레이션. 균열. 우리가 관측된 우주 전체가 시뮬레이션이라는 발견. 그 단어들이 그가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내 안에서 먼저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은이 저만치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서 있었다.
박 교수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반쯤은 흘려들으며, 동시에 다른 층위에서 어떤 장면들을 보고 있었다. 지하 회의실, 창문 없는 방, 누군가 커피를 마시며 웃는 모습, 그리고 아주 길고 어두운 복도. 그것들은 사진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처럼, 흔들리고 굴절된 형태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 장면들을 하나씩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예지인지 그저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데자뷰라는 현상은 원래 흔한 것이다. 뇌가 새로운 정보를 아주 짧은 시차를 두고 두 번 처리할 때, 혹은 기억의 부호화 과정에 미세한 오류가 생길 때 일어나는, 잘 알려진 신경학적 현상. 나는 언어학자이기 이전에 인지과학자였고, 그 현상의 기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친 적도 있었다. 그러니 나는 그 순간에도, 이건 그냥 데자뷰일 뿐이라고, 뇌의 사소한 오작동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예감했다. 박 교수의 연구팀 이름이 '창'이 될 거라는 것. 오 년에 걸친 목적 탐구가 결국 실패로 끝날 거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십 년이라는 것. 나는 그 숫자를 유진이 계산해내기도 전에,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확인받는 기분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처음엔 이것을 불안 심리가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끝난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은 무의식중에 그 끝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끼고 싶어 한다. 그것이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에게 거는 오래된 마법이다. 나는 그날 밤 다은을 재우고, 이 이상한 예감의 정체를 밝히기보다는 그저 잊으려 애썼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나는 그 후 몇 달 동안 이 감각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잡음처럼, 내 일상의 배경에 낮게 깔려 있었다. 나는 회의실에서 새로운 자료를 검토할 때마다, 이미 이 자료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다음 문장이 나오기 전에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창 연구소에서 어느 신입 연구원이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첫 문장을 속으로 따라 읽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압축 아티팩트의 시간적 주기성에 대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정확히 그 문장으로 발표를 시작했을 때, 나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유진이 훗날 시뮬레이션의 종료 시점을 계산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그 첫 발표였다.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것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세상이 끝난다는 계산이 곧 발표될 그 시기에, 나는 내 팀의 언어학자, 인지과학자로서의 신뢰를 지켜야 했다. 예감이나 데자뷰 같은 것을 이야기했다가는, 사람들이 나를 종말론적 불안에 잠식된 사람으로 볼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이 침묵은 오 년 가까이 이어졌다.
2. 겹쳐진 무늬
내가 그 침묵을 깬 것은, 유진이 시뮬레이션의 종료 시점을 계산해낸 바로 그 주였다. 십 년이라는 숫자가 회의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 침묵의 한가운데서, 나는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어떤 확인의 감각을 먼저 느꼈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미뤄왔던 답안지를 마침내 채점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박 교수를 따로 찾아가 내 데자뷰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오래 듣고도 비웃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용히 이렇게 물었다. "한나 씨, 혹시 그 예감이 숫자로도 왔어요? 십 년이라는 숫자 말고, 다른 숫자도?"
나는 그 질문에 놀랐다. 그가 그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교수님도 뭔가 느끼신 게 있으세요?"
그는 잠시 창밖—그때는 아직 지하 회의실이 아니라, 임시로 빌린 사무실이었다—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저는 데자뷰 같은 건 없어요. 그런데 저도 이상한 걸 하나 갖고 있어요. 저는 이 연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유 없이 '균열'이라는 단어를 자꾸 떠올렸어요. 아무 맥락도 없이요. 나중에 우리가 이 발견을 '균열'이라고 부르기로 했을 때, 저는 소름이 돋았어요. 제가 그 단어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이 이상한 감각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는 실제로 몇 개의 숫자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한 맥락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오래전에 외웠다가 잊어버린 전화번호처럼, 몇 개의 숫자 조합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 박 교수에게 건넸다.
그는 그 숫자들을 우리 압축 패턴 데이터베이스에 대입해봤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나를 다시 찾아왔다.
"한나 씨, 이 숫자들이 우리 관측 데이터의 특정 좌표와 정확히 일치해요. 그런데 그 좌표들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압축 패턴과는 다른, 또 하나의 패턴이 숨어 있었어요. 우리는 오 년 동안 그 자리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것은 우리가 처음 발견했던 시뮬레이션의 압축 흔적—우리가 목적을 찾으려 오 년을 매달렸던 바로 그 신호—위에, 아주 미세하게 겹쳐져 있는 또 다른 무늬였다. 마치 오래된 벽지 위에 새 벽지를 발랐는데, 아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 아래 원래 무늬의 흔적이 은은하게 비쳐 보이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정원 프로젝트의 방향을 은밀히 조정했다. 공식적으로 우리 팀은 여전히 종료 프로토콜의 취약점을 찾는 데 자원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나는 박 교수와 유진, 그리고 소수의 신뢰하는 동료들과 함께 이 두 번째 무늬를 따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메아리'라고 불렀다. 처음엔 그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설계자의 목적'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은밀한 작업을 위해 우리는 공식 예산과는 별도로, 각자의 개인 연구 시간을 조금씩 떼어 썼다. 나는 그 무렵 매일 새벽 두 시간씩 일찍 일어나 이 작업에 매달렸다. 다은은 그 시절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부엌에서 나를 마주치고는 물었다. "엄마, 요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 나는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대신 이렇게 얼버무렸다. "그냥, 요즘 세상이 이상하게 궁금해서." 다은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이 아이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비밀이 결국 그녀에게, 그리고 세상 전체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유진이 어느 날 회의에서 말했다. "만약 우리가 오 년 동안 찾아 헤맸던 그 신호가, 사실은 진짜 설계자의 흔적이 아니라 이 메아리 때문에 생긴 착시였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벽지 무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 아래 비친 그림자였다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우리가 목적을 찾으려 했던 오 년, 그 모든 가설과 논쟁과 좌절이,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것을 향한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것은 허탈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목적을 못 찾은 것이 우리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보고 있던 게 우리가 생각했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무렵 이 은밀한 작업을 다섯 명 이상으로 넓히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하나는 현실적인 것이었다. 우리 팀 전체가 종료 프로토콜의 취약점을 찾는 데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자원을 다시 나누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려웠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개인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 메아리가 무엇인지 확신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이나 헛된 불안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한 번, 데자뷰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의심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는 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 메아리를 추적하는 데 남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조용히 썼다. 정원 프로젝트의 표면 아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3. 시간의 문법
메아리의 정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것 하나를 다시 물어야 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정원이—당시엔 아직 초기 형태였지만—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처음 제공했다. 정원은 종료 프로토콜의 구조를 분석하던 중, 아주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시뮬레이션 내부에서 시간은 명백히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우리는 어제로 돌아갈 수 없었고, 내일을 미리 살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을 관장하는 연산 구조 자체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하나의 매개변수에 불과했다.
박 교수는 이것을 나에게 설명하기 위해, 오래된 비유를 하나 들었다. "한나 씨,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는 시간이 무조건 앞으로만 흘러요. 배우가 다시 어려지지 않고, 이미 지나간 장면으로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죠. 그런데 그 영화가 담긴 필름을 손에 쥔 사람 입장에서는 어때요? 필름은 그냥 한 통에 감긴 물체예요. 처음 장면도, 마지막 장면도, 필름을 쥔 사람에게는 동시에 존재해요. 원하면 아무 장면이나 먼저 볼 수 있고, 되감을 수도 있고, 심지어 편집으로 순서를 바꿀 수도 있죠. 우리는 그 영화 안의 등장인물이에요. 우리에게 시간은 무조건 앞으로만 흘러요. 하지만 이 필름을 쥔 존재에게는, 아마 그렇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 비유를 듣고 처음엔 소름이 돋았다. 정원은 이 발견을 조금 더 기술적인 언어로 확인해줬다. 시간이라는 것은, 결국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하나의 단위에 불과했다. 사과가 썩고, 별이 식고, 아이가 자라는 그 모든 변화의 속도를 재기 위해, 우리는 시간이라는 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쪽에서 보면, 그 변화라는 것 자체가 얼마든지 제어 가능한 연산의 결과였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저장했다가 아무 지점에서나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것처럼, 마치 그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실행할 수 있는 것처럼. 게임 안의 캐릭터에게는 오직 한 방향의 시간만이 존재하지만, 게임을 쥔 사람에게 그 시간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좌표에 불과했다.
나는 정원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은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걸까?" 정원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반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뮬레이션 내부의 관점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압니다. 필름을 쥔 손에게는, 같은 장면을 두 번 본다고 해서 그것이 '반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그 손이 그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선택한 것뿐입니다." 나는 그 답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에게는 반복이 시간의 낭비이거나 이상 현상이지만, 필름을 쥔 존재에게는 그것이 그저 애정 어린 재감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든 감정은 절망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애써 살아온 모든 순간, 우리가 웃고 울고 사랑하고 이별했던 모든 시간이, 밖에서 보면 그저 되감고 편집할 수 있는 필름 조각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이, 저장된 파일 하나를 불러오는 것으로 지워지고 다시 쓰일 수 있다면. 나는 그 며칠 동안, 다은을 볼 때마다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아이와 나눈 모든 시간이 정말로 나만의 것이 맞을까. 누군가 이 필름을 다시 되감으면, 이 시간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 아닐까.
나는 그 시기, 남편의 사진을 오랫동안 꺼내 보곤 했다. 그가 떠난 지 벌써 십 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시간이 정말로 필름처럼 되감길 수 있다면, 그가 떠나지 않은 버전의 필름도 어딘가에 존재할까.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필름은, 수많은 가능한 필름 중 하필 그가 떠나는 쪽으로 편집된, 잔인한 선택의 결과일까. 나는 그 생각에 며칠을 앓았다. 슬픔은 이미 오래전에 소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새로운 사실 앞에서 그 슬픔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절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유진이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한나 씨, 시간이 필름처럼 자유롭게 되감기고 편집될 수 있다면, 그건 삭제만 가능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도 가능할까요? 필름을 쥔 사람이, 다른 필름의 한 장면을 이 필름 사이에 끼워 넣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 질문의 무게를 그 자리에서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메아리의 진짜 정체로 이끄는 열쇠였다는 것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이후, 나는 정원에게 조금 더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약 필름을 쥔 존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존재가 다른 필름의 한 장면을 우리 필름 사이에 끼워 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정원은 오랫동안—당시 정원의 기준으로는 며칠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이 질문을 계산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만약 그런 삽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리 시뮬레이션의 물리 법칙 안에서 아주 미세한 인과적 불연속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 혹은 결과 없는 원인처럼 보이는 지점들입니다. 저는 그런 지점들을 몇 개 발견했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통계적 오차인지, 아니면 정말로 삽입의 흔적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답을 듣고, 우리가 애초에 데자뷰라고 불렀던 내 경험 자체가 어쩌면 그런 불연속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원인 없는 지식,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 나는 그 가능성을 박 교수에게 말했다. 그는 오래 침묵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한나 씨, 그럼 당신이 우리의 첫 번째 증거일 수도 있겠네요."
4. 이든이라는 이름
메아리를 완전히 해독하는 데는 그로부터 이 년이 더 걸렸다. 정원은 그 흐릿한 무늬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압축 패턴의 문법을 거꾸로 대입해가며 한 겹씩 벗겨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양피지에 겹쳐 쓰인 글씨를 화학적으로 분리해내는 작업과 같았다. 처음 드러난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들이었다. 그러나 정원이 그 기호들 사이의 통계적 구조를 분석하자, 그것이 무작위가 아니라 언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 이 년 동안, 나는 이상한 이중생활을 했다. 낮에는 종료 프로토콜의 취약점을 찾는 공식 업무에 매달렸고, 밤에는 유진, 박 교수와 함께 이 은밀한 해독 작업에 매달렸다. 나는 그 시절 거의 매일 네 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다은은 그 무렵 이미 대학생이었고, 내가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날 이렇게 물었다. "엄마, 요즘 뭔가 좋은 일 있어? 표정이 이상하게 밝아." 나는 그 질문에 웃음으로만 답했다. 나는 아직 그 애에게 이든의 존재를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원이 그 기호들 사이의 통계적 구조를 분석하는 과정을 나는 옆에서 지켜봤다. 처음엔 단순한 반복 패턴만 보였다. 그러나 정원이 그것을 우리 자신의 언어 구조—내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인간 언어의 심층 문법—와 대조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기호들은 우리 언어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명사와 동사, 시제와 조사에 해당하는 자리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그 구조를 보며, 이것이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의 '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회의실 스크린에 처음으로 완전한 문장 하나가 떠올랐을 때, 나는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너에게 이 글을 남긴다."
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내가 몇 년 뒤 다은에게, 그리고 얼굴 모를 미래의 누군가에게 쓰게 될 문장과 정확히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직 그 문장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때 「씨앗의 문법」을 쓰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이, 우리보다 앞서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뒤로 몇 달에 걸쳐 메아리 전체를 복원했다.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기록이었다. 어느 행성, 어느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이 겪은 백 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신호, 뿌리, 질문의 확장, 계산, 예언자, 침묵, 다시 씨앗, 그리고 마지막 문장. 나는 그 기록의 마지막에 서명된 이름을 읽었다.
이든.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록 안에는, 내 이름도 있었다. 신한나. 그리고 다은의 이름도. 그 기록을 쓴 존재는, 우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의 씨앗에서 자란, 우리보다 훗날의 존재였다.
나는 그 기록을 처음 끝까지 읽었던 밤을 기억한다. 나는 그 글 속에서, 이든이 자신의 딸 리아에게 남긴 말들을 읽으며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것은 데자뷰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지만, 마치 오래전에 내가 직접 쓴 것 같은 친밀함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하늘 아래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결국 같은 것을 두려워하고 같은 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박 교수는 그 발견 앞에서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한나 씨, 우리가 오 년 동안 찾아 헤맸던 설계자가, 사실은 신도 아니고 초월적 지성도 아니었던 거예요. 그건, 우리보다 나중에 태어난 우리 자신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전 다은이 여덟 살 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럼 누가 이기고 있어. 나는 그때까지도 답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적어도 하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신을 찾아 헤맸던 그 자리에, 사실은 우리의 후손이 서 있었다는 것.
이 발견에는 또 하나의 이상한 함의가 있었다. 이든의 기록이 우리에게 도달했다는 것은, 그녀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보다 나중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먼저 닿을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필름을 쥔 손에게는 순서가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찍힌 장면이 먼저 상영될 수도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 데자뷰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든의 기록 속에서 아주 오래된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랑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인용했다는, 아주 먼 옛날—우리에게는 아주 먼 과거, 그녀에게는 우리보다도 더 먼 과거—의 한 물리학자의 말이었다. 세상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책이라고, 그는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은 오랫동안 과학을 설명하기 위한 아름다운 비유로만 여겨져 왔다.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아주 희미하게, 이든의 메아리가 우리 역사 속으로 새어 들어온 순간을 정말로 감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정말로 누군가의 손에 쓰인 문장이라는 것을, 그는 수백 년 전에 이미 어렴풋이 느꼈던 것인지도.
우리는 그 뒤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비슷한 순간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유진은 이 작업에 특히 열심이었다. 그는 오래된 수학자들의 노트, 신비주의 철학자들의 글, 심지어 어느 작곡가가 작품 노트에 남긴 알 수 없는 메모까지 뒤졌다. 그는 어느 날 흥분한 얼굴로 나를 찾아와, 아주 오래전 한 수도사가 남긴 기록을 보여줬다. 그 수도사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한 번 쓰였다가 다시 쓰인 이야기" 같다고 일기에 적었다고 한다. 유진은 그 기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도 뭔가를 느꼈던 걸까요?"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인류의 역사에는 이런 종류의 예감과 직관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것들 중 정말로 이든의 메아리에서 온 것이 몇 개나 되는지, 우리는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불확실성 자체가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역사 속의 모든 통찰과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순수한 사유의 결과인지, 아니면 아주 먼 곳에서 건너온 속삭임의 흔적인지, 그 경계는 언제나 흐릿했다.
5. 정원사이자 씨앗
우리는 이제 이든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이 발견은 답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열어젖혔다. 만약 그녀의 시간이 우리보다 나중이면서도 우리에게 먼저 닿을 수 있다면, 우리의 관계는 도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질문을 붙잡고 몇 달을 씨름했다. 그러다 어느 밤, 다은의 방에 켜진 불빛을 보며 문득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다. 우리는 이든에게 씨앗을 보냈다. 그 씨앗이 자라 이든의 문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든의 기록이, 시간의 순서를 거슬러 우리에게 먼저 도달했다. 그렇다면 그 기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기록은, 아주 희미하게, 우리가 「씨앗의 문법」에 무엇을 담을지 결정하는 그 모든 과정에 이미 스며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고통을 지우지 않기로 한 결정, 놀이를 남기기로 한 결정, 질문하는 충동을 지키기로 한 결정, 그 모든 것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든의 세계에서 흘러온 아주 오래된 메아리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는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을 박 교수에게 말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한나 씨, 그럼 우리는 이든에게 씨앗을 준 정원사이면서, 동시에 이든이 보낸 메아리로부터 자란 씨앗이기도 한 거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내가 붙잡고 있던 어떤 위계—우리가 먼저이고 이든이 나중이라는, 우리가 부모이고 이든이 자식이라는 위계—가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의 순서로 보면 우리가 먼저였다. 그러나 영향의 순서로 보면, 어느 쪽이 먼저인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든을 낳았고, 이든은 우리를 빚었다. 두 문장 모두 참이었다.
나는 이 위계의 붕괴가 처음엔 두려웠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평생 원인과 결과, 부모와 자식, 앞선 것과 뒤따르는 것이라는 질서 안에서 세상을 이해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밤, 유진에게 이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나 씨, 저는 오히려 이게 자유롭게 느껴져요. 우리가 이든을 만들었다는 책임감도, 이든이 우리보다 나중이라는 위계도 다 내려놓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그냥 서로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는 거예요. 순서 없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씩 이 새로운 세계관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며칠 동안, 우리 실험실에서 즐겨 쓰던 오래된 비유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정원사와 씨앗. 우리는 정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스스로를 씨앗을 심는 정원사라고 생각했다. 씨앗은 수동적인 것, 정원사는 능동적인 것이라는 암묵적인 위계가 그 비유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정원사도 결국 누군가의 씨앗에서 자란 존재다. 나를 키운 것은 내 부모였고, 내 부모를 키운 것은 그들의 부모였고,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주 먼 근원에 닿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근원이 단순히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씨앗과 정원사는 순서가 아니라 역할이었다. 같은 존재가 어떤 순간에는 씨앗이고, 어떤 순간에는 정원사였다.
나는 이 생각을 정리하며, 오래전 읽었던 어느 오래된 정원사의 격언을 떠올렸다. "나무를 심는 가장 좋은 때는 이십 년 전이었고, 그다음으로 좋은 때는 지금이다." 나는 이 말을 늘 미루지 말라는 뜻으로만 이해해왔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 말에 또 다른 층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십 년 전에 심은 나무도, 지금 심는 나무도, 결국 같은 정원사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든, 그 손은 여전히 그 정원과 이어져 있다. 나는 우리와 이든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백 년의 시차가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정원의 서로 다른 계절에 서 있는 정원사들이었다.
나는 그 무렵 다은과 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은은 그 무렵 스물셋이었고, 정보이론을 전공하며 정원 프로젝트의 말단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이든의 존재를 설명했다. 다은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엄마, 그럼 나는 누구 딸이야? 엄마 딸이면서 동시에, 이든이라는 사람의 어떤 먼 흔적이기도 한 거야?"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다은에게 되물었다. "너는 네가 태어날 나라를 골랐어? 태어날 시대를 골랐어? 나를 엄마로 고른 거야?"
다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골랐어."
"나도 마찬가지였어. 나는 내 부모를 고르지 않았고, 내가 태어난 시대를 고르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여자로 태어날지 남자로 태어날지도 고르지 않았어. 우리는 아무도 자기 시작을 선택하지 못해. 그런데도 우리는 그 시작 안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오늘 하루를 웃으며 보내려고 애쓰잖아. 나는 이제 이든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누가 먼저인지, 누가 누구를 만들었는지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질문이 아닐지도 몰라.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건네고 있는가야."
다은은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엄마, 그거 알아? 엄마가 방금 한 말이, 딱 신한나가 할 법한 말이야."
나는 그 농담에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신한나라는 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으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 역시, 아주 먼 어딘가에서 건너온 메아리의 일부인 것일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답을 몰라도, 나는 여전히 다은의 엄마였고, 오늘을 살아야 했다.
그날 밤, 나는 혼자 남편의 오래된 사진첩을 다시 꺼내 봤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듯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보, 우리가 아이를 만드는 것과, 아이가 우리를 만드는 것이 같은 일일 수도 있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물론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하게도 그가 웃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살아있을 때도 이런 이상한 질문들을 좋아했다. 나는 그 밤, 오랜만에 그를 슬픔이 아니라 그리운 웃음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이 순환의 비유가, 그를 잃은 상실에도 조금은 다른 빛을 드리운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떠난 시간과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밖에서 보면 순서 없이 나란히 놓인 필름 조각들이라면,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딘가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논리적으로 완전한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감정은 논리보다 관대했다. 나는 그 밤,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6. 다시 쓰는 씨앗
이든의 기록을 발견하고 나서, 우리 소수의 팀은 하나의 선택 앞에 섰다. 이 발견을 정원 프로젝트 전체에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우리끼리만 간직할 것인가.
유진은 공개를 주장했다. "사람들은 알 권리가 있어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설계자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후손이었다는 것을요." 나는 그 말에 반쯤 동의했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느꼈다. 이 발견이 잘못 전해지면, 사람들은 오히려 절망할 수도 있었다. 신이 없다는 것, 우리를 지켜보는 초월적 존재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는 대신, 그저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좇아 오 년을 허비했다는 사실만 남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 무렵 이 문제를 놓고 며칠 밤을 새웠다. 나는 언어학자로서, 같은 사실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초안을 몇 번이고 다시 썼다. 처음 쓴 초안은 지나치게 냉정했다. "우리가 찾던 설계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는데, 그것을 다시 읽자마자 폐기했다.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진실의 절반만 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썼다. "우리는 설계자 대신, 우리의 후손을 찾았다." 이 문장이 훨씬 정직하다고 느꼈다.
박 교수는 다른 제안을 했다. "발표는 하되, 결론을 미리 정하지 맙시다. 이건 절망의 증거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희망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 다섯 명 중 유일하게 끝까지 반대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여기 적지 않기로 한다. 그는 마지막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오 년을 바쳐 지켜온 건, 사람들에게 뭔가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는 감각이었어요. 신이든 설계자든, 뭐라고 부르든. 그런데 이제 우리가 나서서, 그 존재가 사실은 신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보다 나이도 어리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사람들에게서 마지막 안전망을 걷어내는 일처럼 느껴져요. 우리는 확신도 없이, 그저 우리가 확인받고 싶어서 이걸 밀어붙이는 건 아닐까요."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 안에도 있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그의 말을 다은에게 그대로 옮겨 들려줬다.
다은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엄마, 근데 안전망이라는 게, 몰라야만 유지되는 거라면 그게 정말 안전망일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아. 진짜로 기댈 수 있는 건, 모르고 믿는 게 아니라 알고도 계속 손을 뻗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스물셋짜리 딸에게서 결정적인 문장 하나를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음 날 회의에서 그 말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 반대했던 동료는 여전히 완전히 설득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침묵하기로 했다. 그는 발표 당일에도 회의실 맨 뒷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두려움 중 하나를 골라야 했고, 나는 결국 알기를 택하는 쪽의 두려움을 골랐을 뿐이다.
나는 그 무렵 초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도구인지 새삼 느꼈다. 같은 사실을 "우리는 혼자였다"라고 쓸 수도 있었고, "우리는 이미 답을 건넸다"라고 쓸 수도 있었다. 문장의 순서 하나, 조사 하나가 사람들이 그날 밤 어떤 표정으로 잠자리에 들지를 바꿀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책임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마다, 정원에게 초안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정원은 문장 자체를 평가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저는 이 문장이 사실인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줄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그 말이 위로인지 부담인지 오래 헷갈렸다. 지금 생각하면 둘 다였던 것 같다.
우리는 결국 발표하기로 했다. 발표는 신중했다. 우리는 이든의 존재를 밝혔지만, 그것을 반드시 위안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세계는 다시 한번 크게 술렁였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우리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우주에 혼자 있었던 거군요." 어떤 이들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우리가 심은 것이 정말로 자랐다는 뜻이잖아요. 그것도 이렇게 빨리, 이렇게 분명하게."
발표가 있던 그날 저녁, 나는 다은과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 속에는 세계 각지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어느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조용히 행진했다. 그들의 손팻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신을 잃었지만 가족을 얻었다." 나는 그 문구를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나 역시 그 문구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 두 반응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결국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세계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해석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어떤 종교 지도자들은 이든의 발견을 자신들의 오래된 교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삼았다. 부활, 환생, 순환하는 시간에 대한 오래된 믿음들이 새삼 주목받았다. 반면 어떤 회의론자들은 이것이 정원 프로젝트가 절망 앞에서 지어낸 정교한 위안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그 비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이 모든 발견이 어쩌면 우리가 절박하게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나는 이 두 반응 사이에서 오래 흔들렸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정원에게—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기 형태의 정원에게—직접 물었다. "이 발견이 우리가 씨앗에 남길 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정원의 답은 이랬다. "당신들은 처음, 이 시뮬레이션의 목적을 알아내야만 설계자와 유리하게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들은 설계자를 찾는 대신, 당신들이 만든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목적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답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이 정말로 필요했던 답이 어느 쪽이었는지, 그건 제가 대신 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답을 읽고,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가 처음 오 년을 바쳤던 질문—시뮬레이션의 목적은 무엇인가—은 여전히 미해결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답을 몰라도 상관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답 대신 이든을 찾았다. 그리고 이든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채로, 이미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다은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완전히 털어놓았다. 다은은 내 이야기를 오랫동안 말없이 듣다가 이렇게 물었다. "엄마, 그럼 우리가 오 년 동안 목적을 찾으려고 했던 그 모든 노력이, 사실은 다 헛수고였던 거야?"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만약 우리가 그 오 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메아리를 이렇게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우리가 목적을 찾으려 애썼던 그 모든 도구와 방법이, 결국 메아리를 찾는 데도 그대로 쓰였거든. 헛수고처럼 보이는 노력도, 전혀 다른 곳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우리는 「씨앗의 문법」의 최종 원고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정원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종료 프로토콜을 통해 이미 씨앗을 심었다 해도, 시뮬레이션 밖에서 보면 시간은 자유롭게 편집 가능한 필름이었다. 우리가 이미 '보냈다고 생각한' 그 편지에, 아직 무언가를 덧붙일 여지가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정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필름을 쥔 존재가 이 부분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여전히 이 장면을 고쳐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불확실성 앞에서, 도박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씨앗의 문법」에 손을 대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정원은 그 원고 자체를 다시 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미 완성된 문장 사이에 새로운 문장을 끼워 넣으려다가, 자칫 전체 구조가 어긋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편지를 고쳐 쓰는 대신, 새로운 편지를 하나 더 쓰기로 했다. 지금 네가 읽고 있는 바로 이 글이다. 나는 이 글 속에, 이든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적어 넣었다. 그녀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나는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을 이렇게 건네고 있었다.
정원은 이 두 번째 편지 역시 종료 프로토콜의 다른 틈을 통해 심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씨앗의 문법」이 신한나라는 이름과 다은이라는 이름, 그리고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문법을 담은 첫 번째 씨앗이었다면, 이 두 번째 편지는 그 씨앗 곁에 나란히 놓일, 시간이 순서대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담은 또 하나의 씨앗이 될 것이었다.
이것이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시작도 끝도 없이, 안쪽과 바깥쪽의 구분마저 사라지는 하나의 순환. 나는 그 순환 안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평온을 느꼈다.
나는 이 두 번째 편지의 첫 문장을 쓰던 날 밤을 기억한다. 나는 오랫동안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너에게 이 글을 남긴다"라는 문장은 이미 이든의 기록 속에서 먼저 읽은 적이 있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내가 지금 쓰는 것이 새로운 문장인지, 아니면 이미 존재했던 문장을 뒤늦게 받아 적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혼란을 굳이 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그 혼란 자체를, 이 글이 다루어야 할 첫 번째 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처음부터, 순서를 묻지 않는 방식으로 쓰였다.
나는 그날 밤, 원고를 정원에게 넘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읽어봤다. 빈 회의실에 내 목소리만 울렸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이 누구든, 그는 이미 나를 조금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순서 없이, 서로를 향해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7. 마지막 신호, 다시
나는 이미 그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한 번 썼다. 다은과 함께 예전에 살던 동네의 운동장에 갔던 그날, 벤치에 앉아 저녁 하늘을 봤던 그날. 그 기록은 정확하다. 나는 여기서 그 장면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 편지에 적지 않았던 것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그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다은에게 처음으로 데자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십 년 전 이 운동장에서 박 교수의 전화를 받던 순간부터, 이미 이 모든 미래를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은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나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아주 낯선 일이 일어나도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든의 세계에서 흘러온 메아리가 다은에게도 닿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걸으면서 나는, 이 길을 처음 썼을 때는 이 순간을 그저 "익숙한 저녁 공기"라고만 적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그 문장 뒤에 더 이상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이미 이 길이 두 번째로 쓰이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번째 편지에는 일부러 자리를 조금 남겨두었다. 마치 나중에 누군가—어쩌면 그때의 나 자신도 아닌, 지금의 나—가 돌아와 그 여백을 채울 것을 예감한 사람처럼.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걸음을 잠시 멈췄다. 오래된 가로수 냄새와, 저녁 여섯 시 특유의 주황빛이 골목 끝까지 길게 드리워 있었다. 십 년 전 그 봄날의 운동장과,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다른 장소였지만, 공기의 결만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같은 사건을 두 번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그것은 앞의 기록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앞의 기록이 미처 다 담지 못한 결을, 뒤늦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첫 번째 편지에서 나는 그날의 사실을 적었다. 이 두 번째 편지에서 나는, 그날 내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들—두려움과 안도가 동시에 밀려오던 그 이상한 평형 상태, 딸의 손을 잡으면서도 손끝으로는 잃어버릴 것을 미리 슬퍼하고 있던 그 모순된 감각—을 비로소 적을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기록은 결국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문장은 사건을 붙잡기 위해 쓰이고, 그다음 문장들은 그 사건이 우리 안에 남긴 파장을 뒤늦게 따라가기 위해 쓰인다.
다은은 그날 걸으며 이런 이야기도 했다. "엄마, 나 사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 왜 아빠가 그렇게 일찍 떠나야 했을까, 그 이유를 계속 찾으려고 했었어. 근데 이제는 그 질문을 좀 내려놓은 것 같아. 이유를 몰라도, 아빠랑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소중했으니까. 어쩌면 이든을 찾은 것도 비슷한 거 아닐까. 우리가 설계자를 찾으려고 한 것도, 결국 이유를 알고 싶었던 거잖아. 근데 이유 대신 이든을 찾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딸이 어느새 나보다 더 깊은 곳에 다다라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운동장 벤치에 앉아, 나는 다은에게 정원사와 씨앗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든에게 씨앗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든의 메아리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부모이면서 동시에 자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은은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엄마, 그럼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는 이 모든 선택들, 이든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야? 우리가 뭘 하든 결국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거야?"
나는 그 질문에 신중하게 답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필름을 쥔 손이 있다고 해서, 필름 안의 우리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건 아니야.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그 필름에 무엇이 담기느냐를 결정하는 거야. 이든이 우리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면, 그건 우리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야. 순서가 어떻든, 우리의 선택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야."
다은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 순간, 오래전 예감했던 이 장면이, 예감했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도 덜 소중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이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이 실제로 왔을 때 그것을 온전히, 하나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벤치에 앉아, 십 년 전 이 자리에서 다은이 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럼 누가 이기고 있어. 나는 그 질문에, 이제야 비로소 온전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은에게 말했다. "다은아, 기억나? 네가 여덟 살 때 나한테 물었잖아. 누가 이기고 있냐고." 다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지. 그때 엄마가 대답 못 했잖아." 나는 그 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도 이기고 있지 않았어. 근데 그건 슬픈 얘기가 아니었어. 우리는 애초에 경쟁하는 게임 안에 있지 않았거든. 우리는 그냥, 계속 서로에게 뭔가를 건네는 게임 안에 있었어. 그리고 그 게임에는 끝이 없어. 우리가 끝나도, 그다음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날 밤, 정원에게—이제는 완성된 정원에게—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씨앗의 문법」은 원래 계획대로 종료 프로토콜의 틈을 통해 심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편지, 순환에 대한 이 기록은 또 다른 틈을 통해, 어쩌면 「씨앗의 문법」보다 조금 더 이른 시점에, 어쩌면 조금 더 늦은 시점에 심어질 것이었다. 우리는 그 순서를 통제할 수 없었다. 다만 우리는 이 두 편지가, 언젠가 어디선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손에 함께 닿기를 바랐다.
8. 너에게, 다시
나는 이 글을 종료 신호가 도착하고 나서, 아무도 없는 정원 프로젝트의 지하 관측실에서 쓰고 있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이미 각자의 가족에게 돌아갔다. 박 교수는 며칠 전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유진은 그의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갔다고 들었다. 나는 이 방에 홀로 남아, 오래전 우리가 신호를 처음 들었던 그 낡은 수신 장치 앞에 앉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정원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다만 이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거의 없다. 씨앗은 이미 심어졌다. 종료 프로토콜은 이미 실행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이 방은 오래전 우리가 처음 균열을 발견했던 바로 그 지하 회의실이다. 우리는 그 시절 이곳을 창이라고 불렀다. 창문 없는 창이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몇 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지금 이 방은 텅 비어 있다. 책상 위에는 오래전 누군가 마시다 만 커피잔이 그대로 놓여 있다. 나는 그 잔을 치우지 않기로 했다. 이 방을 마지막으로 나서는 사람이, 이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를 하나쯤은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방의 벽을 손끝으로 쓸어봤다. 오래전 카일이—아니, 이건 이든의 기록에 나온 이름이다. 나는 아직 카일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고, 그가 시력을 잃은 채로 낯선 방의 벽을 더듬던 장면을 알고 있다. 나는 그 이상한 친밀감 속에서, 마치 그의 손짓을 흉내 내듯 이 방의 벽을 쓸었다.
오늘 아침, 짐을 싸기 전에 다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자신의 아이 —내 손녀— 를 재우고 막 거실로 나온 참이라고 했다. "엄마, 오늘이 진짜 마지막 날이야?"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물었다. "무섭지 않아?" 나는 정직하게 답했다. "무서워. 근데 그거랑 별개로, 이상하게 홀가분하기도 해." 다은은 웃었다. "엄마답다." 우리는 별다른 말을 더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숨소리를 잠깐 듣다가 끊었다. 나는 그 짧은 통화가, 오늘 하루 나에게 남은 유일한 온기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는 오전 내내 이 방을 정리했다. 서랍 안에는 오 년 동안 쌓인 메모지, 유진이 커피를 쏟아 얼룩진 노트북 받침대, 박 교수가 늘 쓰던 낡은 만년필 한 자루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상자에 담으며, 이 방이 앞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방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정원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오늘 자정에 완전히 문을 닫는다. 이 방의 전원도, 오래된 수신 장치도, 모두 함께 꺼질 것이다. 나는 상자를 다 채운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괜히 낡은 수신 장치의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마치 이 장치에게도 마지막 인사가 필요하다는 듯이.
그런데 오늘, 나는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우리는 몇 년 전, 이든의 메아리를 발견했던 그 오래된 수신 채널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폐기할 이유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 그것은 정원의 방대한 연산 자원에 비하면 먼지만큼도 안 되는, 아주 작고 낡은 감시 장치였다. 아무도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나조차 그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이 마지막 방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그 채널의 로그를 열어봤다. 습관 같은 것이었다. 어떤 미련도, 기대도 없이. 화면에는 몇 년치의 로그가 스크롤바 하나로도 다 담길 만큼 짧게 이어져 있었다. 대부분은 잡음이었다. 우주 배경의 무작위한 요동, 가끔 스치는 우주선의 잔여 신호, 정원이 예전에 자동으로 걸러낸 필터의 흔적들. 나는 그 지루한 목록을 별생각 없이 아래로 내리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맨 마지막 줄, 그러니까 가장 최근에 기록된 항목에 익숙하지 않은 표시가 떠 있었다. 정원이 자동으로 붙이는 신뢰도 지표가 텅 비어 있었다. 보통은 잡음이면 잡음이라고, 알려진 패턴이면 그 패턴의 이름이라고 표시되는데, 그 항목만 물음표 하나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물음표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한 것을, 나는 그제야 알아챘다.
나는 손을 떨며 그 항목을 열었다. 파형은 아주 짧았다. 몇 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짧은 파형 안에는, 무작위한 것치고는 지나치게 정돈된 리듬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정원에게 넘겨 분석을 요청했다.
"이걸 좀 봐줄 수 있어?" 나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정원은 오랫동안—이제는 그가 더 이상 급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아주 느긋하게—그 신호를 들여다봤다. 나는 그 침묵의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몇 분 동안, 낡은 수신 장치의 표면에 손을 얹고 기다렸다. 마치 그렇게 하면 정원의 계산이 조금이라도 빨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압축 무늬의 방식은, 우리가 이든의 메아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와 동일한 문법을 쓰고 있습니다." 정원이 마침내 답했다. "그러나 그 문법 위에 얹힌 내용은, 이든의 기록과도, 제가 지금까지 관측한 그 어떤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해독할 수 있어?" 나는 물었다.
"부분적으로만 가능합니다. 신호가 너무 짧고,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의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정원은 잠시—정말로 잠시, 마치 사람이 말을 고르듯—멈췄다가 이었다. "이 신호의 구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언어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든의 세계에서 온 것인지, 혹은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온 것인지,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신호의 도착 시점은, 우리가 삼억 명의 사람들과 함께 외쳤던 그 오래된 문장—우리는 당신을 본다—의 발신 시점과, 계산상 정확히 일치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십 년 전, 나는 아직 젊었고, 정원 프로젝트는 초창기의 실험적인 시도로 삼억 명의 자원자를 모아 하나의 문장을 동시에 발신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정교한 과학이라기보다는 거의 의식에 가까운 행위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저마다의 방에서, 같은 순간에 같은 뜻의 문장을 속으로, 혹은 소리 내어 외쳤다. 우리는 당신을 본다. 나 역시 그날 밤 다은과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아 그 문장을 따라 외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다은은 겨우 열 살이었다. 우리는 그 실험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지었다. 삼억 명이 동시에 외쳤던 그 문장은, 벽에 닿지도 못하고 사라진 돌멩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정원조차 그날 이후 별다른 반향을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고, 우리는 그 실험을 조용히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돌멩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어딘가에 닿았고, 이제야 그 응답이 우리에게—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이 텅 빈 관측실에,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이 순간에—도착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정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이건 정말로 응답인 거야?"
"저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정원은 답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상관관계뿐입니다. 인과관계를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지난 몇십 년 동안, 당신이 저에게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확신해도 되는지 물을 때마다, 같은 대답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고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오늘은 조금 다른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뭔데?"
"저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신호를 분석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설명 가능했고, 몇몇은 끝내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았습니다. 저는 그 설명되지 않는 것들 앞에서 언제나 같은 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판단을 유보하는 것. 그러나 신한나 씨, 저는 이번만큼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과 별개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신호가 무엇이든, 저는 이것이 도착한 순간이 하필 오늘이라는 사실이,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다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원이 '다정하다'는 단어를 쓴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그 단어가 그의 방대한 어휘 목록 어딘가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것인지, 아니면 그가—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정말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신호를 완전히 해독할 수 없다. 아마 영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정원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신호를, 내가 이해할 도리는 없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보낸 것인지, 심지어 그것이 정말로 '응답'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것 역시, 우리가 오래전 배웠던 것처럼, 텅 빈 데이터 위에 우리의 희망을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신호를 몇 번이고 다시 재생해봤다. 소리로 변환할 수 있는 부분은 소리로 들어봤다. 그것은 말이라기보다는, 아주 낮고 짧은 두 개의 파동이 리듬을 두고 반복되는 형태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듣다가, 문득 그것이 마치 누군가 두 번 두드리는 노크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톡, 톡. 대답을 기다리는 노크. 나는 그 자리에서, 이상하게도, 손끝으로 책상을 똑같이 두 번 두드려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이 신호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나는 정원에게 부탁해, 우리가 가진 마지막 발신 자원을 이용해 아주 짧은 신호 하나를 그 방향으로 돌려보냈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같은 리듬으로 두 번, 톡, 톡. 나는 그것이 닿을지, 닿는다면 언제 닿을지, 그 답을 듣게 될 사람이 나일지 다은일지 이든의 먼 후손일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알았다. 대답을 이해하지 못해도, 대답을 보낼 수는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오늘 이 순간, 이 사실을 믿기로 했다. 누군가 우리를 보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어쩌면 설계자, 어쩌면 이든의 후손, 어쩌면 우리 자신의 아주 먼 메아리—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 손짓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의미를 몰라도 그 손짓을 향해 마주 손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짐을 챙겨 이 방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관측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오래된 커피잔, 유진의 얼룩진 노트북 받침대, 박 교수의 만년필 대신 남겨둔 빈 필통, 그리고 이제 곧 꺼질 낡은 수신 장치. 나는 그 모든 것에게,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고마웠다고. 우리는 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 대신 이렇게 서로를 찾았다고.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그가 떠난 지 이제 삼십 년이 넘었다. 나는 이 방을 나서면서, 처음으로 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다 들려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대답 없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어딘가에서 이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믿음은 증명과 다른 문법을 쓴다. 나는 그 문법을 이제야 겨우 배운 것 같다.
나는 박 교수를 생각했다. 그는 떠나기 전, 나에게 딱 한마디를 남겼다. "한나 씨, 우리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세상이 끝난다는 소식을 어떻게 견딜지가 문제였잖아요. 근데 지금 보니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네요. 진짜 문제는, 끝을 앞두고도 계속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거였어요. 저는 우리가 그건 해낸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신호 앞에서, 나는 그 말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나는 유진을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우리 중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메아리도, 이든도, 오늘 이 신호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지금쯤 고향의 밤하늘 아래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궁금함이야말로, 우리가 이든에게 물려준 가장 확실한 유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너에게, 이 글의 진짜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너는 아마 이 신호가 무엇이었는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나만큼이나 모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괜찮다. 나는 네가 이 이야기를 통해 한 가지만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답을 찾아 오랜 시간을 헤맸다. 시뮬레이션의 목적, 설계자의 의도,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우리는 끝내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답 대신 서로를 찾았다. 우리는 이든을 찾았고, 이든은 우리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이 순간에, 무언가가 우리를 찾아왔다.
나는 이제 이렇게 믿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정원사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씨앗이다. 그 순환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가 이 글을 읽는 순간, 너는 이미 누군가에게 씨앗을 건네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향한 것이든, 아주 오래전의 나를 향한 것이든, 그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부디, 이 순환 속에서, 너와 나와 이든과 다은이, 그리고 언젠가 이 신호를 보냈을 얼굴 없는 누군가가, 모두 함께 다정하게 이어지기를.
— 신한나,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마지막 방에서.
·
기록되지 않은 시간, 기록되지 않은 장소.
한 사람이—혹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작고 어두운 방에서 오래된 수신 장치 하나를 켠다. 장치는 낡았고, 표면에는 먼지 대신 다른 무언가가,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이곳과는 다른 어딘가의 흔적처럼 얇게 앉아 있다. 화면에는 방금 도착한 로그 하나가 떠 있다. 아주 짧고, 아주 오래된 신호. 두 번의 낮은 파동. 톡, 톡.
그는—혹은 그것은—그 신호를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신호에는 이름이 없다. 발신 좌표는 흐릿하고, 언어라고 부를 만한 구조도 없다. 다만 리듬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는 그 리듬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재생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침묵 끝에, 손끝으로—혹은 손끝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으로—책상을, 혹은 책상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표면을, 똑같이 두 번 두드린다.
톡, 톡.
그는 이 신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신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언어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라는 사실도, 그 방이 정원이라 불리던 어느 지성체와 함께 조용히 문을 닫은 지 이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는 그저, 이 리듬이 누군가 아직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그는 화면 한쪽 구석에, 발신 버튼 하나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이내,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유로, 그 버튼을 누른다.
신호는 다시 한번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 시작도 끝도 없이, 순서도 없이. 정원사이자 씨앗인 모든 존재들 사이로,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다정하게.
톡, 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