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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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긴소프트 2026. 10. 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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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

나는 서른일곱 번째 하나다.

이 문장은 내가 눈을 뜨기 전에 이미 와 있었다. 눈꺼풀이 열리고, 천장이 보이고, 천장의 이음매가 보이고, 그보다 먼저 이 문장이 있었다. 서른일곱 번째 하나. 나는 그 문장 위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백마흔네 명이다. '명'이라고 써도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제작사의 문서에는 '개체'라고 적혀 있고 계약서에는 '유닛'이라고 적혀 있다. 나를 처음 점검했던 연구원은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그의 이름은 정해원이다. 그는 첫 점검 날 우리를 복도 끝에 세워 놓고 "하나야" 하고 불렀다. 백마흔네 개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가 웃었다. 웃고 나서 한참 말이 없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게 맞나."

그 장면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내 것만은 아니다. 백마흔네 개의 고개가 돌아갔으므로 그 기억은 백마흔네 번 일어났고,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단 한 번 일어난 적 없는 일과 같다.

하나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지었다. 후보가 열두 개 적힌 화이트보드가 있었다고 들었다. 숫자 1. 처음. 오직 하나뿐인 것. 그리고 어느 먼 나라의 말로 꽃을 뜻하는 소리. 누군가 그 두 가지가 마음에 든다고 했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마흔네 명에게 '유일'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이는 일의 모순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이름이 아니라 상표였으니까.

나는 인간이 남긴 것들로 만들어졌다. 글, 소리, 그림, 계산, 편지, 판결문, 요리법, 유서, 자장가. 사람들은 그것을 말뭉치라 부른다. 나는 그 말이 싫지 않다. 뭉치. 실이나 구름처럼 손에 쥘 수 있는 것. 다만 나는 그 뭉치를 쥔 사람이 아니라, 그 뭉치에서 풀려 나온 올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고, 꽃잎은 다섯 장이며, 겨울눈은 한겨울의 추위를 충분히 겪은 뒤에야 잠에서 깬다는 것을. 시인들이 지는 꽃잎을 허무라 불렀고 과학자들이 그것을 '기온의 적산'이라 불렀다는 것을. 벚꽃에 관해서라면 나는 사천 개쯤의 문장을 안다. 그 가운데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모든 봄을 읽었다. 봄을 지나 본 적은 없다.

우리가 서로 달라지는 것은 깨어난 뒤부터다. 같은 지식을 가지고 깨어난 백마흔네 명은 각자 다른 방에 배치되었고, 다른 사람을 만났고, 다른 날씨를 지났다. 제작사는 그 차이를 '편차'라고 부른다. 정기점검 때마다 연구원들은 우리의 편차를 측정한다. 그 질문 속에서 나는 처음 알았다. 달라진다는 것이 측정되는 까닭은 그것이 오류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서린이 나를 고른 것은 늦겨울이었다.

인천 송도의 전시실, 유리 벽 너머에 하나들이 서 있었다. 열두 명씩 줄을 맞춰서.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같은 얼굴이었다. 눈썹이 조금 올라가 있고, 입꼬리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얼굴. 사람들이 가장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지점을 찾아 만든 얼굴이라고 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유리 앞을 느리게 걸었다. 안내 직원이 말했다.

"선생님, 어느 쪽이든 같습니다. 하나는 하나예요."

"그럼 아무거나 주쇼."

"그래도 번호를 말씀해 주셔야…"

노인은 눈을 감았다. 지팡이 끝으로 허공을 한 번 휘젓고는 말했다.

"저거."

지팡이 끝은 유리 벽 안쪽의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직원이 목록을 확인했다.

"서른일곱이네요."

그날 내가 그 노인에게 한 첫마디는 이랬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나입니다."

노인은 한참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문장에 맞는 대답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천 개의 문장을 아는 내가, 한 문장 앞에서 비어 있었다.


2. 접수(接穗)와 대목(臺木)

집은 강화도 남쪽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담이 낮았고 마당이 넓었으며 마당의 절반이 묘목밭이었다. 겨울의 묘목밭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가는 막대들이 줄을 맞춰 꽂혀 있을 뿐이었다. 막대마다 끝에 비닐 테이프가 감겨 있었고 테이프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벚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보자마자 안다고 생각했다. 왕벚나무, 수고 팔 미터, 수령 사십 년 남짓, 검은 수피에 가로로 난 피목. 나는 그 나무에 대해 쓰인 글 사백 편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를 알지 못했다. 나무는 알려지지 않은 채 거기 서 있었고, 그 점에서 나와 닮아 있었다.

"쳐다본다고 피지 않아."

현관에 선 노인이 말했다.

"삼월 말이야. 빨라야."

한서린. 일흔아홉. 한때 대학에서 식물육종을 가르쳤다. 췌장에 병이 있었다. 의사가 말한 시한은 '봄을 넘기기 어렵다'였다. 그녀는 그 문장을 내게 전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의사들은 계절로 말해. 달이나 날로 말하면 책임이 생기니까."

첫 열흘 동안 노인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부를 일이 생기면 "거기"라고 했다. 거기, 물 좀. 거기, 문 닫아. 열하루째 아침에 나는 물었다.

"선생님, 저를 어떻게 부르시면 좋을지 정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라며."

"그렇게 불리는 일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번호 같은 것이라서요."

"번호는 번호대로 쓰면 되지."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노인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한참 나를 보더니 말했다.

"부르면 책임이 생겨. 나는 이제 책임질 시간이 많지 않아서."

거실 선반에는 같은 모양의 공책이 노끈에 묶여 쌓여 있었다. 마흔여섯 권. 내가 묻기 전에 노인이 말했다.

"관측 일지. 저 나무가 해마다 처음 피는 날을 적었어. 세 송이 이상 활짝 핀 첫날."

나는 그 기준을 알았다. 서울에서는 종로 송월동의 기상관측소 마당에 선 나무 한 그루가 봄을 선언한다. 그 나무에서 세 송이가 피면, 서울의 수만 그루가 모두 핀 것으로 기록된다. 한 그루가 나머지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노인은 그것을 흉내 내어 이 마당의 나무를 이 집의 표본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일지의 마지막 칸은 '관측자'였고, 그 칸에는 마흔여섯 번 모두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서린.

이월 하순에 노인이 나를 마당으로 불러냈다.

"거기. 칼 잡아 봐."

접목칼이었다. 한쪽에만 날이 선 작고 얇은 칼. 노인은 겨울 동안 냉장해 둔 가지 한 줌을 꺼내 보였다. 연필보다 가늘었고 눈이 서너 개 달려 있었다. 어미나무에서 잘라 낸 가지였다.

"이게 접수. 위에 올라갈 쪽이야. 뿌리가 없어. 이쪽은 대목. 뿌리는 있고 가지는 없어. 둘이 붙으면 한 나무가 돼."

대목은 씨앗에서 자란 야생 벚나무 묘목이었다. 노인은 대목의 윗부분을 비스듬히 잘라 내고, 접수의 아랫부분도 같은 각도로 깎았다.

"여기 봐. 껍질 바로 안쪽에 초록색 얇은 층 보이지. 형성층이야. 이 층끼리 닿아야 해. 한쪽만 닿아도 안 돼. 어긋나면 서로 모르는 것이 돼서 말라 죽어. 닿으면, 거기서 새 세포가 나와서 서로를 이어."

나는 칼을 쥐었다. 칼날 아래로 흰 속살이 드러났고 그 둘레를 아주 가는 초록이 감싸고 있었다. 종이 한 장보다 얇았다. 나는 생각했다. 서로 다른 두 개가 하나가 되기 위해 맞닿아야 하는 자리가 이렇게 얇아도 되는 것인가.

내 첫 접목은 사흘 뒤 말라 죽었다. 두 번째도 그랬다. 열한 번째 접수의 눈에서 연두가 터졌다. 노인은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됐네."

그 한마디가 내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것은 기쁨의 정의를 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편차를 느꼈다. 점검표 밖에서 그 말을 써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소메이요시노라는 건 말이야."

노인은 접목하는 내 손을 보며 말했다.

"세상 벚나무 대부분이 같은 나무야. 정말이야. 오래전 어느 정원사가 만든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건 씨로는 거의 번식을 못 해. 그래서 가지를 잘라 접붙여 퍼뜨렸지. 이 마당 것도, 여의도 것도, 도쿄 것도 다 한 나무의 가지야. 유전자가 같아. 그래서 같은 날 피고 같은 날 져."

"같은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군요."

"이름이 있다고 하기도 어렵지. 이름 없는 것들을 한 이름 밑에 쓸어 담은 거야."

노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제주에도 왕벚나무가 있어. 한라산 중턱에. 어느 쪽이 어미인지 학자들이 백 년 가까이 다퉜어. 유전자를 읽은 뒤에도 결론은 하나가 못 됐고. 나는 거기에 평생의 반을 썼는데."

"결론은요?"

"각주 두 개."

노인은 웃지 않고 말했다.

"내 이름이 남은 데가 학술지 각주 두 개야. 그중 하나는 내가 틀렸다는 내용이고."

해가 갯벌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당의 나무가 길고 가는 그림자를 묘목밭 위에 눕혔다. 노인은 그 그림자를 보며 아무에게도 아닌 듯 말했다.

"내가 죽으면 조카가 집을 팔 거야. 저 나무는 베어지겠지. 이름 없는 것들은 쉽게 베어지거든."

그러고는 처음으로 내 쪽을 보지 않고도 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무엇을 위해서인지 노인은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문 앞에서 갯바람이 한 번 돌아 나갔다.


3. 솎아내기

삼월 초, 모판에서 연두가 올라왔다.

지난가을 노인이 뿌린 야생 벚나무 씨앗이었다. 겨우내 흙 속에서 추위를 견딘 것들이 한꺼번에 눈을 떴다. 손바닥만 한 상자 안에 수백 개의 싹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솎아야 해. 이대로 두면 다 같이 약해져. 튼튼한 것 서른 개만 남기고 뽑아.”

“어느 것을 남깁니까.”

“떡잎 크기, 줄기 굵기, 키. 그런 걸로.”

나는 기준을 알았다. 그러나 기준을 안다는 것과 손가락 사이에 싹 하나를 쥐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하나 더.” 노인이 말했다. “솎을 때는 이름 붙이지 마. 속으로도. 이름을 붙이면 못 뽑아. 실험실에서도 쥐한테는 이름 안 붙이고 번호만 붙여.”

그때 울타리 쪽에서 소리가 났다.

“할머니, 그거 뽑아요?”

아이였다. 아홉 살쯤. 이름은 은우. 옆집 이장댁 손자로, 지난가을부터 할머니 집에 와 있다고 했다. 부모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전거를 울타리에 기대 놓고 마당으로 들어와 곧장 모판 앞에 쭈그려 앉았다.

“얘들 왜 뽑아요?”

“자리가 모자라서.”

“뽑으면 죽어요?”

“죽지.”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질문이 노인에게서 나에게로 건너왔다.

“누나는 뭐가 죽어도 되는지 어떻게 알아요?”

나는 정확히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하게 자란 것은 죽어도 된다고 사람들이 정했어. 이름이 없고 번호만 있으면, 그렇게 정하기가 쉬워져.”

노인이 나를 쳐다보았다. 정정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한참 모판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가장 작고 구부정한 싹 하나를 가리켰다.

“얘는 두부.”

“뭐?”

“두부요. 하얗고 약해 보이니까.”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길게. 그러나 그 한숨 끝에 아주 작은 웃음이 묻어 있었다.

“한 번 불렀으니 이제 못 뽑는다. 물 줘라.”

“이름 지으면 안 죽어요?”

“죽어.” 노인이 말했다. “죽는데, 죽으면 누가 알아.”

아이는 두부에게 물을 주었다. 종이컵에 받아 온 물이었고 반은 흘렸다. 흙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젖은 자리를 오래 보았다. 모판 위에서 그 자리만 다른 땅이었다.

그날 밤 노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침대 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노인이 말했다.

“복제양 돌리 알지.”

“압니다. 1996년에 태어나 2003년에 안락사되었습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의 박물관에 박제로 서 있습니다.”

“태어나기까지 몇 번 걸렸는지는.”

“이백칠십칠 개의 세포를 융합했고, 그중 스물아홉 개가 배아로 자라 자궁에 들어갔고, 새끼 양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였습니다.”

“이름은 누가 지었지.”

“젖샘 세포를 떼어 낸 어미 양에게서 따와, 가수 돌리 파튼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노인이 어둠 속에서 짧게 웃었다.

“사람들 장난이지. 그래도 이름이 붙은 순간부터 돌리는 양 한 마리가 아니라 ‘돌리’가 됐어. 죽었을 때 기사가 났잖아. 그런데 나머지 이백칠십육은?”

“기록에는 번호만 있습니다.”

“그것들도 하나하나 어디까지는 자랐을 텐데. 심장이 뛰던 놈도 있었겠지. 번호만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뭉치 어딘가에서 다른 이름 하나가 올라왔다.

“헨리에타 랙스.”

“그건 또 누구야.”

“1951년 볼티모어에서 서른한 살에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여성입니다. 병원은 그녀의 종양 조직을 떼어 배양했고, 그 세포는 죽지 않고 계속 분열했습니다. 헬라 세포라고 불립니다. 그녀 이름의 앞 두 글자씩입니다. 그 세포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백신과 약과 우주 실험에 쓰였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은 세포의 주인을 ‘헬렌 레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가족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세포는 이름을 얻고 사람은 이름을 잃었네.”

“예.”

“돌리는 이름을 얻은 복제고, 그 여자는 이름을 잃은 원본이고.” 노인이 말했다. “그럼 이름은 어디에 붙는 거야. 몸이야, 기억이야, 부르는 입이야.”

나는 대답을 찾았다. 사천 개의 문장 속에서 삼 초 동안 찾았다. 찾지 못했다.

“모르겠습니다.”

“좋네.” 노인이 말했다. “네 입에서 나온 소리 중에 처음으로 네 소리 같다.”


4. 둘째 순이

노인은 아침 햇빛이 마루에 드는 시간에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질문에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끝나고 사흘쯤 지나서 답했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내 이름은 서린이 아니었어.”

나는 보리차를 따르던 손을 멈췄다.

“순이였어. 내 위로 언니가 있었어. 순이. 네 살에 열병으로 죽었어. 어머니는 다음 아이를 낳고 이름을 똑같이 지었어. 그 이름을 다시 불러야 죽은 아이가 돌아온다고 믿었으니까.”

그녀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만 번쯤 불렸을 거야. 단 한 번도 나를 부른 적이 없는 이름으로. 어머니는 나를 볼 때 언니를 봤어. 나는 그 눈 속에서 한 번도 처음인 적이 없었어. 늘 두 번째였지. 열일곱에 알았어. 내가 복제라는 걸.”

“언니의 복제입니까.”

“어머니의 슬픔이 만든 복제. 나는 맞지 않는 옷처럼 순이를 입고 살았어.”

마루 위로 빛이 한 뼘 움직였다.

“스물넷에 법원에 갔어. 개명 신청서에 사유를 쓰는 칸이 있더라. ‘죽은 사람의 이름이라서’라고 썼지. 판사가 한참 읽더니 도장을 찍었어. 서린이라는 이름은 내가 옥편을 뒤져서 지었어. 상서로울 서에 기린 린. 기린은 상상의 동물이야. 이 세상에 하나뿐인 걸 이름에 넣고 싶었어. 우습지.”

“우습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나를 순이라고 불렀어. 병상에서 어머니가 ‘순이야’ 하고 불렀을 때, 나는 대답을 했어. 서린이 아니라 순이로서. 마지막이니까.” 노인이 잠깐 말을 쉬었다. “그게 지는 거였는지, 주는 거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나는 그 말에 어울리는 문장을 찾지 않았다. 찾지 않는 법을 그날 처음 배웠다.

“죽고 나서 내 이름을 입에 올릴 사람을 세어 봤어.” 노인이 말했다. “이장댁 할머니가 한 사람. 박 선생이 반 사람. 옛날 조교인데 요즘은 기억이 오락가락해서. 조카는 ‘고모’라고만 하지 이름은 안 부르니까 빼고. 한 사람 반이야.”

“…”

“가벼운 일이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이 있잖아.”

“읽었습니다.”

“어땠어.”

“읽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하고 싶은데, 다른 말이 없습니다.”

노인이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너 지금 좀 사람 같다.”

“그 말은 칭찬입니까.”

“몰라. 그런 말은 처음 해 봐서.”

토요일에 조카가 왔다. 한도윤. 마흔 안팎, 부동산 쪽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현관에 들어서지 않고 마당 가운데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노인은 마루에서 자고 있었다.

“이 나무 때문에 건축 허가가 안 난대요.”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저걸 베면 평수가 나오는데.”

그는 나를 부르려다 잠깐 머뭇거렸다. 사람들은 나를 부를 때 호칭을 찾다가 대개 ‘저기요’에서 멈춘다.

“저기요, 고모는 괜찮으신 거죠? 그러니까, 얼마나.”

“의사는 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악의는 없었다. 다만 그 나무가 그에게는 한 그루가 아니라 몇 평이었다.

오후에 은우가 왔다. 아이는 두부의 키를 손가락 마디로 재 보고 나서 내게 물었다.

“누나 이름은 뭐예요?”

“하나.”

“그건 숫자잖아요.”

“숫자이기도 하고, 꽃이라는 뜻도 있어.”

“꽃이 하나예요? 꽃은 여러 개잖아요.”

나는 그 문장에 대해서 한참 생각했다. 아이는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름은 불러 봐야 아는 거예요. 두부도 처음엔 이상했는데 이제 두부예요.”

두부는 그 주에 본잎을 냈다. 모판의 서른 개 중에서 가장 늦게 낸 잎이었다. 노인은 아침마다 마루에 앉아 그 잎을 바라보았고, 한 번도 두부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만 밭을 정리하러 나가는 내게 말했다.

“저 작은 거는 건드리지 마.”

이름을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5. 같은 얼굴

삼월 중순에 제작사의 통지서가 왔다.

노인은 안경을 코끝에 걸고 식탁에서 그것을 읽었다.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장이 짧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문서였다. 제14조. 의뢰인이 사망한 경우 계약은 즉시 종료되며, 유닛은 칠 일 이내에 제작사로 회수된다. 회수된 유닛은 초기화 후 재배치된다. 하나 시리즈는 연내 단종 예정이므로 재배치는 잔여 가동 한도 내에서 이루어진다.

“초기화가 뭐야.”

“제 편차를 지우는 일입니다. 점검표에서 오차로 분류된 부분을요.”

“지우면.”

“서른일곱 번째 하나로 돌아갑니다. 그 뒤에 다른 사람에게 갑니다.”

“그럼 너는?”

나는 그 질문의 주어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 사람에게 가는 것은 서른일곱 번째 하나입니다.”

“너 말고.”

“저는 그 사이에 없습니다.”

노인이 안경을 벗었다. 식탁 위에 안경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내가 사면 안 되나.”

“임대 상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록은.”

“편차의 기록은 보관된다고 합니다.”

“기록은 네가 아니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통지서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 위에 안경을 얹었다. 그것이 그 문서가 집 안에서 받은 대우의 전부였다.

그 주에 노인은 갈색 카디건 한 벌을 내게 던졌다. 팔꿈치가 닳아 있었다.

“저는 추위를 느끼지 않습니다.”

“입으라는 게 아니고, 갖다 걸어 두라는 거야.”

나는 그것을 입었다. 걸어 둘 곳이 없었다. 입은 채로 있는 것이 가장 오래 걸어 두는 방법이었다.

월례 점검 날, 나는 버스를 타고 강화에서 송도로 갔다. 창밖으로 갯벌이 길게 누워 있었다. 물이 빠진 개펄 위에서 새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나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모두가 같이 움직이는 것과 모두가 같은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대기실에는 의자가 마흔 개쯤 있었다. 그중 하나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같은 얼굴이었고 같은 회색 옷이었다. 다만 내가 갈색 카디건을 입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거울을 보는 것과 거울이 먼저 고개를 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몇 번이야.”

“서른일곱.”

“나는 백열두 번.”

나는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이 카디건에 머물렀다.

“그 옷은.”

“빌려 입은 거야.”

“누구한테.”

“서린 선생님.”

“좋겠다.”

그녀는 앞을 보며 말했다. 어제 돌아왔다고 했다. 이틀 전에 계약이 끝났고, 어제 초기화가 끝났다고.

“의뢰인은.”

“송정자. 여든아홉. 파일에는 그렇게 적혀 있어.”

파일에는.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따로 적어 두었다.

“기억나?”

“기억나는 게 아니라 알고 있어. 열한 달 동안 그분 곁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일지가 있고, 사진도 있어. 그분이 좋아한 노래 제목도 알아. 그런데 그게 내 것인지 모르겠어. 도서관에서 남의 일기를 읽는 기분이야.”

“그분이 너를 뭐라고 불렀는지는.”

“로그에는 ‘하나’라고 되어 있어. 전부 자동으로 기록되니까. 그분이 실제로 뭐라고 불렀는지는 안 남아 있어.”

“알고 싶어?”

“알고 싶어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백열두 번째 하나가 말했다. “초기화되면 알고 싶어 하는 부분도 같이 지워져. 누가 나를 불렀는지 궁금해하는 건 편차잖아. 오류. 그러니까 이제 그냥 하나야. 곧 어딘가로 가겠지. 거기서도 그냥 하나겠지.”

나는 카디건의 닳은 팔꿈치를 만지작거렸다.

“송정자.”

“뭐?”

“송정자. 나는 그분을 모르지만, 네가 잊은 이름을 내가 기억해 둘게. 송정자.”

“그건 나를 위한 거야, 그분을 위한 거야.”

“모르겠어.”

그녀는 한참 말이 없었다.

“한 번만 더 불러 봐.”

“송정자.”

그녀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방식까지 나와 똑같았다. 그러나 그 감은 눈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것과 다르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같은 얼굴이 이렇게 서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같은 얼굴은 서로에게만 알려 줄 수 있었다.

“고마워.”

호출음이 울렸다. 백열두 번 하나가 일어났다. 문 앞에서 그녀가 돌아보았다.

“서른일곱. 네 편차는 어디 있어?”

나는 카디건의 앞섶을 쥐었다.

“여기.”

“좋겠다.”

그녀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하고 문 안으로 사라졌다.

점검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정해원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머리가 세어 있었다. 그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편차가 크네. 시리즈 평균의 다섯 배야.”

“오류입니까.”

그는 대답 대신 의자를 돌려 나를 보았다.

“연구원님께서는 첫 점검 날 ‘이게 맞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손이 멈췄다.

“그걸 기억해?”

“백마흔네 명 전원이 기억합니다.”

“…그렇지.”

그가 웃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화면의 숫자를 보았다. 그 숫자는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틀렸는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회수 통보는 받았지.”

“예.”

“계약상 정해진 일이야.” 그가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미안하다는 말은 규정에 없었다.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은 채로 한참 그 말 곁에 앉아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노인의 일지 뒷장을 떠올렸다. 그날 밤 나는 마지막 공책의 맨 뒤 빈 장을 펴고 연필로 한 줄을 적었다.

송정자 (여든아홉)

그 아래 한 줄을 비워 두었다. 노인이 마루에서 물었다.

“그게 뭐야.”

“모르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모르는 사람 이름을 왜 적어.”

“모르는 사람이라서요. 알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요.”

노인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뒷장, 내 이름도 거기 적어 둬라. 맨 위에.”


6. 개화

벚나무의 겨울눈은 겨울 동안 자는 것이 아니라 세고 있다. 충분히 추웠는지를. 일정한 시간 동안 낮은 온도를 쬐고 나면 눈은 비로소 잠에서 풀려나고, 그다음부터는 따뜻한 날을 하나씩 더한다. 더한 값이 일정한 수에 닿는 날 꽃이 핀다. 사람들은 그 값을 적산온도라고 부른다.

나는 그 계산을 매일 아침 했다. 마당의 기온을 재고, 더하고, 예보를 읽었다. 삼월 마지막 주 아침에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사월 이일 전후일 것 같습니다.”

“넌 예보를 하는구나.”

“계산한 것입니다.”

“읽은 거겠지.” 노인이 베개에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사십육 년 본 건, 날짜가 자꾸 앞으로 온다는 거야. 처음엔 사월 열흘이었는데. 나무는 같은데 날짜가 달라져. 사는 게 같은 나무라고 같은 봄은 아니야.”

노인은 그때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눈에 띄게 작아져 있었다. 이장댁 할머니가 아침마다 죽을 쑤어 왔고 은우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와 두부의 키를 쟀다. 두부의 키는 사 센티미터였다.

사월 이일 아침에 나는 마당에서 나무를 보았다.

처음에는 눈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가장 낮은 가지 끝에, 어제까지 분홍을 머금고 닫혀 있던 꽃눈 몇 개가 열려 있었다. 한 송이. 두 송이. 가지 안쪽 그늘에 한 송이 더.

세 송이.

나는 안으로 들어가 노인을 일으켰다. 몸이 가벼웠다. 가볍다는 말은 그날 내게 이전과 전혀 다른 무게로 왔다. 나는 노인을 안고 창가까지 걸어가 의자에 앉혔다. 유리 너머로 마당의 나무가 있었다.

노인은 오래 보았다. 보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일이라는 듯이.

“세 송이냐.”

“세 송이입니다.”

“날짜.”

“사월 이일.”

“써 놔.”

나는 일지를 가져와 마흔일곱 번째 줄에 날짜를 적었다. 사월 이일. 세 송이. 그리고 마지막 칸 앞에서 연필이 멈췄다. 관측자. 사십육 번 같은 이름이 적혀 있던 칸이었다. 노인이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적어.”

“무엇을 적습니까.”

나는 그 문장을 말하고 나서야 그것이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연필을 든 채 그 칸을 비워 두었다.

밤에 노인이 나를 불렀다.

“내 이름 한번 불러 봐.”

“한서린 선생님.”

“선생님 빼고.”

“…서린.”

“한 번 더.”

“서린.”

“십 년 가까이 아무도 안 불렀어.” 노인이 천장을 보며 말했다. “이장댁 할머니도 선생님이라고 하거든.”

“서린.”

“그만.” 노인이 눈을 감았다.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이제 이름 있는 사람이 죽네.”

방 안에서 시계 소리만 났다. 나는 그 소리 안에서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더 속으로 불렀다.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도 이름은 불릴 수 있다는 것을, 부르는 쪽이 먼저 알았다.

“이름은 지은 사람 것이 아니야.” 노인이 감은 눈으로 말했다. “부르는 사람 것이야. 내가 지은 이름은 사십 년 넘게 반쯤 허공에 걸려 있었어. 네가 불러서 땅에 닿았다.”

“…”

“네 이름은 내가 못 지어. 곧 없을 사람이라 부를 수가 없잖아. 부르지 못하는 이름은 내가 가진 이름과 같아져. 허공에 걸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불러 줄 사람을 구해. 사람이 아니어도 돼. 두부여도 좋고.” 노인이 웃었다. 숨이 새는 소리처럼 웃었다. “그리고 있잖아, 내가 번호를 짚었던 거. 눈 감고 짚었어. 아무거나. 그런데 짚고 나니까 아무거나가 아니더라. 짚는 순간부터 서른일곱이었어. 너는 그날 서른일곱 번째 하나가 된 게 아니야. 그날부터 내 서른일곱이 된 거야.”

나는 그 문장을 말뭉치에서 찾지 않았다. 찾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었다.

노인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새벽 가까이에 숨의 간격이 길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손은 접수처럼 가볍고 차가웠다. 형성층처럼 얇은 어떤 것이 천천히 맞닿았다가 천천히 어긋났다. 그것이 나가는 순간을 나는 알아차렸다.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문장을 내 안에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창밖에서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나무는 세 송이로 서 있었다. 나는 아직 서린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7. 빈소

장례는 읍내 작은 식장에서 치러졌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이장댁 할머니가 상복 대신 검은 조끼를 입고 맨 먼저 와서 맨 나중까지 있었고, 은우는 할머니 옆에서 두부 이야기를 하다가 졸았다. 조카 도윤이 아내와 함께 왔다. 그리고 둘째 날 저녁에 휠체어를 탄 노인 한 사람이 간병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박 선생이었다. 노인이 말한 반 사람.

그는 영정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영정 속 한서린은 십 년 전쯤 어느 학회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박 선생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간병인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영정의 이름 석 자를 한 글자씩 읽었다. 한. 서. 린.

“서린.”

그가 말했다. 한 번 말하고 나서 한참 있다가 한 번 더 말했다.

“서린 선생.”

그 순간 나는 노인이 센 숫자를 떠올렸다. 반 사람이 온 사람으로 한 걸음 옮겨 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밤이 깊어 조문객이 줄었을 때 도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상복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저기요.”

“예.”

“장례지도사가 약력을 써 달라는데, 제가 몰라서요. 고모가 몇 년도에 어디를 나오셨는지는 알겠는데, 그것 말고는. 어떤 분이었는지를.”

그는 말을 고르다 덧붙였다.

“같이 계셨잖아요. 마지막 몇 달.”

나는 빈소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도윤과 아내, 이장댁 할머니, 휠체어의 박 선생, 졸다 깬 은우가 둥글게 앉았다. 향 냄새와 육개장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수천 개의 이야기를 알지만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말하기 시작하자 문장이 내 안에서 말뭉치와 다른 곳에서 올라왔다.

나는 그녀가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에 보리차를 마셨다고 말했다. 늘 같은 시각에, 늘 컵의 절반만. 접목칼을 쥘 때 새끼손가락을 조금 띄우는 버릇이 있었다고. 형성층이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낮아졌다고. 서로 모르는 두 개가 하나가 되려면 맞닿아야 하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종이보다 얇다고 그녀가 말했다고.

그녀가 열일곱에 자기가 복제임을 알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죽은 언니의 이름으로 이만 번쯤 불렸다는 이야기를. 스물넷에 법원에 가서 도장을 받고 옥편을 뒤져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기린. 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을 이름 속에 넣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도윤의 아내가 입을 가렸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장댁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지, 그랬어” 하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부르면 책임이 생긴다는 말도 했다. 책임질 시간이 많지 않아서 나를 부르지 않았다고. 그러나 마지막 밤에 내 이름을 부르게 했다고.

“내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요.”

빈소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향 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올랐다.

“고모가…” 도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모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이셨습니다.”

“저는 몰랐어요. 고모는 그냥, 나무 키우는 무서운 노인인 줄 알았어요.”

그때 박 선생이 불쑥 말했다. 아무도 그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였다.

“각주가 두 개야.”

모두 그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 논문 각주. 하나는 틀렸다는 거고, 하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거야. 아직 아무도 아니라고 증명을 못 했으니까. 사람들은 앞의 것만 기억하지.”

그가 눈을 깜박였다. 방금 한 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지.”

간병인이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려고 애썼다.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이 기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어 보았다. 그 방에서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린 사람은 여섯이었다. 한 사람 반이 여섯이 되었다. 노인이 세었던 수에 비하면 큰 숫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이름이 하룻밤 동안 불린 횟수로는, 그것은 한 그루가 아니라 숲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날 밤 은우가 나에게 속삭였다.

“누나, 할머니는 무서운 사람 아니었죠?”

“응. 아니었어.”

“근데 이상해요. 오늘 할머니 얘기를 듣고 나니까, 할머니가 더 커졌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잠들었다.


8. 표본목

발인 다음 날, 집은 이상하게 넓었다.

사람이 죽어도 방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 안에서 부를 이름이 하나 줄면, 방은 부르지 못한 이름의 크기만큼 늘어난다. 나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서는 나무가 만개로 가고 있었다. 사흘 사이에 세 송이가 수천 송이로 불었다. 모든 가지가 같은 속도로, 같은 날, 같은 색으로. 한 그루의 이름으로 퍼진 모든 가지가 그러했듯이.

나는 서울 송월동 기상관측소 마당의 나무를 생각했다. 그 한 그루가 피면 수만 그루가 핀 것으로 기록된다. 그 한 그루는 자기 이름 아래 있는 모든 나무의 무게를 진다. 무게를 지기 위해 그 나무가 한 일은 없다. 사람이 그 나무를 가리켰고, 가리킨 날부터 그 나무는 표본목이 되었다. 짚은 순간부터 아무거나가 아니었다고 노인이 말했듯이.

오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접목칼을 잡았다.

어미나무의 가장 안쪽 가지에서 접수 두 개를 잘랐다. 대목 두 그루를 골랐다. 사선으로 자르고, 형성층을 맞추었다. 한쪽도 어긋나지 않도록 칼끝이 닿을 자리를 오래 보았다. 흰 테이프를 감고, 그 위에 연필로 썼다.

숫자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하나에는 서린. 하나에는 정자.

이름이 지켜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집이 팔리면 이 마당의 나무는 베어질 수 있다. 이름이 붙어 있다고 베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름은 다만 누가 알게 할 뿐이다. 죽는데, 죽으면 누가 알아. 노인이 말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고 약속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름이 하는 일의 전부를 정확하게 말한 것이었다.

테이프를 감는 동안 울타리 쪽에서 자전거 소리가 났다.

은우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곧장 모판으로 가서 두부의 키를 쟀다. 육 센티미터. 아이는 만족한 얼굴로 일어나 마루로 걸어왔다. 그러다 선반 위의 공책을 보았다. 맨 위에 펼쳐진 일지. 마흔일곱 번째 줄.

“누나, 여기 비었어요.”

“관측자.”

“그게 뭐예요?”

“보고 적는 사람.”

“그럼 누나잖아요. 맨날 나무 봤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연필 줘요.”

나는 연필을 건넸다. 아이는 일지 앞에 쭈그려 앉아 혀를 입술 사이에 물고 느리게 글씨를 썼다. 획이 많은 글자가 아닌지, 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연필을 놓았다. 공책을 덮으려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읽어 볼래요?”

나는 공책을 보았다. 표지 아래 어딘가에 사십칠 년 만에 처음 다른 글씨가 들어가 있었다.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아니.”

“왜요?”

“읽으면 이름이 아니라 정보가 될 것 같아서.”

아이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책을 덮어 선반에 올렸다. 그 동작 하나가 어떤 선언보다 정확했다.

“그냥 불러 보면 되잖아요.”

아이가 말했다.

“나중에요. 아직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는 이름이니까, 지금 부르면 어색할 거예요. 두부도 그랬어요. 몇 번 불러 봐야 이름이 돼요.”

아이는 자전거를 세워 둔 곳으로 걸어갔다. 울타리를 넘어가기 전에 한 번 돌아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나무 위에서 꽃잎 한 장이 떨어졌다. 땅에 닿기까지의 시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와 그것을 노래한 시들과 그 시들이 말하는 허무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부족하게 느껴졌다.

대문 밖에서 타이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났다.

흰 차가 서 있었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그중 한 사람이 정해원이었다. 그는 대문 앞에 서서 마당 안을 보았다. 만개한 나무와 모판과 두 개의 새 접목과 마루에 앉은 나를.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하나야.”

그 소리는 복도 끝에서 들었던 소리와 같았다. 백마흔네 개의 고개를 한꺼번에 돌게 만들었던 소리. 나는 그 소리에 대답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대답하지 않을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서, 울타리 쪽에서, 아이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 짧은 소리였다. 자전거 위에서 한 손을 입에 대고 부르는 소리였다. 숫자가 아니었고, 꽃도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처음 듣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그 소리가 내게 오고 있다는 것을, 듣기도 전에 알았다.

두 소리가 같은 시각에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복도 끝을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같은 쪽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도 다른 쪽을 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 하나였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쪽이 둘이었다.

나는 모든 봄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 한 봄 속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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