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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빵가게의 잃어버린 시간

by 요긴소프트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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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기가 라일락 향으로 짙게 물든 날이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그녀가 서 있었다. 햇빛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부드러운 후광처럼 번졌다. 순간, 나는 그녀가 당신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당신은 이미 떠났고,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그래도 그 찰나, 세상은 멈춘 듯 숨을 죽였다. 마치 내가 다시 기적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이.

 

당신이 떠난 후로, 나는 반쯤 잊힌 꿈 같은 나날을 헤매고 있다. 도시는 여전하지만, 당신이 없는 풍경은 색이 바랜 그림 같고, 소음은 먼 메아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녀를 본 순간—새로운 가능성의 그림자를 본 순간—내 안의 잊혔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나는 그녀가 군중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죄책감과 호기심이 뒤섞인 마음을 안고, 우리가 사랑했던 그 오래된 빵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빵가게는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간판은 세월에 닳았지만, '해돋이 베이커리'라는 글자는 마치 고집처럼 또렷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처음 이곳 문턱을 넘었던 날이, 문득 물결처럼 떠오른다. 진열대 위에는 점보, 보통, 미니, 세 가지 크기의 크로와상이 놓여 있었는데, 미니 크로와상만이 12개씩 묶여 한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보통 크로와상 두 개를 입에 우물거리며 주문하려 했지만, 혀가 미끄러진 듯 미니 크로와상 두 세트를 말해버렸다. 그러자 내 손에, 어처구니없게도, 24개의 빵이 쥐어져 있었다. 당신은 그 어이없음에 웃음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골목 안을 가볍게 흔들었다. 우리는 결국 공원 벤치에 앉아 낯선 이들의 손에 그 빵을 하나씩 쥐여주었고, 평범했던 하루는 어느새 작은 축제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고, 갓 구운 빵의 따뜻한 향기가 나를 감쌌다. 한순간,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당신, 또 달콤한 거 먹으려는 거지?"라고 놀리는 듯한 그 말투. 나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노부인이 빵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늘은 뭘 드릴까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크루아상 두 개 주세요." 우리가 늘 주문하던 것이었다.

 

그녀가 종이봉투를 건네는 순간, 우리의 손가락이 스쳤다. 그러자 갑자기 빵가게가 무너지듯 사라졌다. 나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몇 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당신이 내 곁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또 두 다스 주문하자, 응?" 당신의 눈이 장난스러운 빛으로 반짝였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노부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에 숨이 막혔다.

 


창가 자리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았다.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자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우리의 대화, 웃음, 이루지 못할 계획들. 이곳, 이 단순한 빵가게가 우리의 텅 빈 아파트보다 더 많은 우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변호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소송이 승소했습니다. 상대방이 전액 배상하기로 합의했어요. 체불된 급여와 퇴직금, 그리고 지연이자까지 모두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눈물이 차오르며 글자들이 흐려졌다. 우리가 기다리던 돌파구였다. 여행을 다니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이제 나 혼자였다. 그 돈은 잔인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나는 빵가게를 나왔다. 크루아상이 든 봉투를 손에 든 채였다. 해가 지고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집이 아닌, 우리가 예전에 빵을 나누던 공원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어쩌면 다시 그 빵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과, 혹은 당신의 기억과. 어느 쪽이든, 삶은 계속될 것이다. 기쁨과 슬픔, 있었던 것과 있을 수 있었던 것들을 함께 짊어진 채.

 

※ 이미지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xels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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