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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레쉬트

by 요긴소프트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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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쥐 아르바이트

1. 절망의 시작

"이런 젠장!"

오늘도 출근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어제는 횡단보도 신호에 발이 묶여 꼼짝없이 버스를 놓쳤는데, 오늘은 그 빌어먹을 버스가 매정하게 신호를 무시하고 내 눈앞에서 출발해 버렸다. 빌어먹을 세상! 오늘은 또 그 망할 선배한테 어떤 기상천외한 욕설을 들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지금 내가 겨우 발을 붙이고 있는 레쉬트 언어임상센터는 언어 문제 진단과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변변찮은 대학을 어정쩡한 성적으로 졸업한 나는, 변변찮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여기저기 찔러 넣은 입사 지원서만큼이나 불안한 눈칫밥을 집에서 축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학 동기들은 하나둘씩 번듯한 곳에 합격해서 몇 번인가 얻어먹었던 합격 턱도 이제는 핑계만 늘어놓으며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멍하니 창밖 풍경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그때, 문득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참여 대상
만 19세 이상 ~ 30세 미만
외국어 듣기/말하기 (영어, 일본어, 중국어 제외) 가능자

기간 및 방법
면접: 언어 말하기/듣기 수준 평가
기간: 임상시험 시작일부터 5일간 (주중 8시간)
방법: 제공된 헤드셋을 통해 듣기/말하기

대상자에게 제공되는 사항
헤드셋
중식 별도 제공
면접 교통비 별도 지급

참여 문의
자세한 임상시험 방법, 임상 시험 부작용, 참여 보상 등 내용은 시험 담당자 OOO (Tel: 070-XXXX-0042)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임상시험? 땀 흘리는 배달 대행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하지만 참여 대상 조건에 붙어 있는 '외국어 듣기/말하기'라는 문구가 신경 쓰였다. 어느 정도 수준을 요구하는 걸까? 뜬금없지만, 나는 네팔어를 조금 할 줄 안다. 예전에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난 '에티샤'라는 친구와 거의 1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공장이 이전하는 바람에 지금은 가끔 문자만 주고받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는 사이였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에티샤와 대화하면서 귀와 입이 저절로 트였다. 에티샤는 내가 네팔어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발음이 원어민과 똑같다며 신기해했었다. 그 칭찬 덕분에 더 열심히 따라 하곤 했다.

내 어설픈 네팔어 실력이 외국어 능력으로 인정받을지는 미지수였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광고를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참여 조건에 외국어 가능자라고 되어 있는데, 제가 네팔어를 조금 할 줄 아는데 지원 가능한가요?" 다행히 돌아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네, 가능합니다." 가슴을 졸이며 가장 궁금했던 참여 보상에 대해 물었다. "보상은 어느 정도 되나요?" 담당자는 점심과 교통비는 별도로 지급되며, 5일 동안 200만 원이라는 솔깃한 금액을 제시했다.

"아싸! 개꿀!"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물어볼 것도 없었다. "내일 바로 면접 보러 가겠습니다!" 내일 당장이라도 백수가 아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담당자는 친절하게 연구소 위치와 대중교통으로 오는 방법을 상세히 안내해 주었다.

임상 센터는 청량리역에서 가까운 서울시립대학교 근처, 꽤나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중교통은 불편했지만, 머릿속에는 곧 손에 쥘 두둑한 보상금 생각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을 올라 연구소 문을 열었다. 면접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날 밤새워 네팔어 문법 책을 뒤적였지만, 일상 회화 수준의 간단한 말하기와 듣기 테스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특이했던 점은 면접을 진행한 연구원의 발음이었다. "Good Morning."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영어 인사말조차 원어민이 발음하면 묘하게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그의 발음은 에티샤가 말할 때와 거의 흡사했다. 게다가 나와 함께 면접을 보던 다른 지원자와는 능숙한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임상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외국어에 능통한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내가 네팔어로 지원했다는 사실에 연구원들은 꽤나 반기는 눈치였다. 친구 덕분에 우연히 익힌 네팔어였지만, 사회에서는 쓸모없다고 여겨 이력서에조차 적지 않았던 언어가 이렇게 뜻밖의 기회를 가져다줄 줄이야. 배워서 쓸모없는 것은 정말 없는 걸까? 그렇게 얼떨떨한 기분으로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부랴부랴 이력서의 '가능 외국어' 항목에 자랑스럽게 '네팔어'를 추가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기다리던 문자가 도착했다. [임상시험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내일 오전 9시까지 연구소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싸! 개꿀 알바 붙었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고마운 마음에 오랜만에 에티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머스떼, 에티샤."

네팔어로 건넨 인사에 에티샤도 한층 더 밝고 반가운 목소리로 응답했다. 인도와 네팔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인지 언어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우리가 흔히 아는 '나마스떼'는 힌디어로 인도식 발음이고, '너머스떼'는 네팔식 발음이다. 에티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되었다고 고마움을 전하자, 에티샤는 오히려 기뻐하며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동대문 에베레스트 식당에 가서 맛있는 네팔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을지로 가구 거리 근처에 에베레스트라는 네팔 음식점이 있어서 월급날이면 종종 함께 가곤 했었는데, 가구 공장이 경기도 광주로 이전하면서 아마 네팔 음식을 자주 먹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에티샤에게 네팔어 발음 연습도 하면서 즐겁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선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연구센터에 도착했다. 대기실에는 나 말고도 여섯 명의 임상시험 대상자들이 먼저 와 있었다. 다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유독 팔에 섬뜩한 문신을 새긴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 때문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실험은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어제 면접을 봤던 연구원은 우리 일곱 명을 각각 다른 칸막이 방으로 안내하며, 앞으로 5일 동안 각자 배정받은 방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칸막이 방은 방음 시설이 완벽한지 옆방은 물론 외부 소음조차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첫째 날, 하루 종일 헤드셋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낯선 네팔어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팔어라고는 하지만, 드문드문 익숙한 단어가 몇 개 들릴 뿐, 전체적인 내용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시험하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채로 오전 임상시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다행히 점심 식사는 모든 피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했다. 다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각자 다른 나라의 언어를 헤드셋으로 듣기만 했다고 한다. 그중에 어제 함께 면접을 봤던 녀석의 이름은 김요한이었는데,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금세 말을 놓고 친구가 되기로 했다. 요한이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바르셀로나에 가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10년이나 흘렀고, 그 이후로 스페인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듣는 귀는 살아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여기서 들려주는 스페인어는 마치 스페인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는 사투리 같아서 제주도 방언처럼 알아듣기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한이가 들은 스페인어는 스페인 북부 카탈루냐 지방의 언어였다고 한다. 오전 시험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나 질의응답 없이, 오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임상시험이 진행되었다. 하루 종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를 듣고 있자니 좀이 쑤시고 점점 지쳐갔다. 역시 남의 돈 벌기가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첫날 임상시험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고 그대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꿈속에서 나는 히말라야 어디쯤에 있을 법한 고풍스러운 사원에서 유창한 네팔어로 어떤 나이 지긋한 아저씨와 심각한 표정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네팔어만 듣고 왔더니 꿈까지 네팔어로 꾸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찜찜한 기분도 들었다. 혹시 이게 임상시험의 부작용인가? 임상시험 전에 부작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어볼걸 그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가끔 나 같은 경우가 있고, 정신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서 계약서에 부작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설명도 했다고 한다. 아마 그때 나는 돈 생각에 눈이 멀어 그런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임상시험 둘째 날, 오늘은 또 어떤 황당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실험실의 실험쥐는 매일 이런 기분일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하며 연구센터로 향했다. 시험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 물어봐도 연구원들은 시험의 일부라며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주일 내내 정해진 시간에 출근만 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대답뿐이었다. 별수 있나?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에게는 오직 5일 뒤에 손에 쥐게 될 두둑한 보상금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둘째 날도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듣기 평가(?)가 이어졌지만, 다행히 핸드폰 사용이 허용되었다. 단,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영상은 자막을 통해 볼 수 있었고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메시지 확인도 가능했기에 어제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낯선 언어를 듣다 보니, 희미하게나마 그 언어의 뉘앙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때로는 즐거워하는 듯했고, 때로는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불안해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그러다가 문득 분노를 넘어 마치 저주의 말처럼 섬뜩하게 들리는 대화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침하고 불길한 느낌이었다. 둘째 날 점심시간, 어제보다 훨씬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피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다. 들어보니 우리 일곱 명이 듣고 있는 언어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랍어, 네팔어 등 각양각색이었지만, 다들 알아듣기 힘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또 신기했던 것은, 어제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처럼 보였던 요한이가 알고 보니 외국어를 가장 잘하는 녀석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만 알고, 그 언어로 간단한 일상 대화조차 버거워하는 수준이었다. 다들 도대체 무슨 엉뚱한 시험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하며 저마다 추측을 쏟아냈다. 벌써 하루를 경험했다고 다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듯했다. 팔에 무시무시한 문신을 새겼던 그 험악한 인상의 친구도, 겉모습과는 달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시험이 시작되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오후에는 태블릿 PC가 주어졌다. 화면에는 100개의 짧은 대화가 연이어 재생되었고, 각 대화를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체크하는 객관식 문제 풀이 테스트였다. 단순한 4지선다나 5지선다형 문제였다면 듣자마자 바로 찍고 넘어갔을 테지만, 문제의 모든 보기에 0부터 10까지 감정의 강도를 세밀하게 입력해야 했고, 그 합이 정확히 10이 아니면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악랄한 테스트를 만든 건지, 온라인 설문 조사나 심리 테스트를 밥 먹듯이 해본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최대한 빨리 100문제를 풀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고작 30분 정도밖에 시간을 단축할 수 없었다. 그래도 30분이 어디냐, 칼퇴근은 누구에게나 달콤한 유혹이다. 서둘러 짐을 챙겨 연구실 문을 나서는 순간, 결과를 확인하던 연구원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나 30분마저 꽉 채우고 가라고 붙잡을까 봐 재빨리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왔다. 첫날만큼은 아니었지만, 둘째 날 역시 온몸의 에너지를 탈탈 털어낸 듯한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날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습관처럼 뉴스를 틀었는데, 경기도 광주의 한 가구 공장에서 큰불이 나 네팔인 노동자 두 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설마 하는 불안한 마음에 에티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어 문자를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에티샤가 일하는 공장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예전 사장님의 연락처도 알지 못했다. 혹시 뉴스 화면에 단서라도 있을까 싶어 다른 뉴스 채널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어두운 밤하늘 아래 검은 연기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장면만 반복될 뿐이었다. 대부분의 뉴스는 7~8초 정도 짧게 사고 소식을 전하고 곧바로 다른 뉴스로 넘어갔다. '다른 공장이겠지',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을 거야', '무소식이 희소식일 거야' 애써 불안한 마음을 외면하며 침대에 누웠다. 또다시 네팔어 꿈을 꾸었다. 어제 꿈에 나왔던 그 낯선 사원에서 어제 만났던 그 아저씨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에티샤가 걸어왔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 높여 이름을 불렀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몸조차 꼼짝할 수 없었다. 에티샤는 말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자신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뭐였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잠은 완전히 깨어났지만, 꿈속의 생생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에티샤가 예전에 말해줬던 이름의 뜻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에티샤(Etisha)는 "beginning after the end", 즉 "끝 이후의 시작" 또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힌두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했던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엄습해 다시 에티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임상시험에 늦을 것 같아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언덕길을 뛰어 올라, 간신히 약속 시간에 맞춰 연구센터에 도착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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