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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온실의 겨울 정원

1.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세상 끝, 바람이 가장 먼저 도착해 쉬어가는 언덕 위에는 커다란 유리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두 사람의 정원'이라고 불렀지만, 앤은 그저 '유리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리 집은 햇살이 좋은 날에는 거대한 비눗방울처럼 반짝였고, 비가 오는 날에는 울고 있는 거인의 눈처럼 흐릿해졌습니다. 아홉 살 앤은 학교가 파하면 늘 그곳으로 갔습니다. 앤에게는 기다려주는 엄마도,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유리 집에는 빈 씨 아저씨와 린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같기도 하고, 남매 같기도 했으며, 때로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유리 집의 문을 열면 기묘한 냄새가 났습니다. 아주 오래된 책 먼지 냄새와, 축..

일상다반사 2026.01.22

나가메야에서 온 소리

## 1장 - 버스를 놓친 날 또 버스를 놓쳤다. 오늘은 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내 눈앞에서 출발해 버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정류장에 서서 멀어져 가는 버스를 바라봤다. 레쉬트 언어임상센터 선배한테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실 나, 김현우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어중간한 성적으로 어중간한 대학을 졸업하고,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었다. 대학 동기들은 하나둘씩 합격 소식을 전해왔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날은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돌아보니, 출입문 옆에 임상시험 지원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만 19세 이상 30세 미만, 외..

일상다반사 2026.01.17

선주와 여섯 번째 원

선주는 컴퍼스로 원을 그렸다. 다섯 번째 원이었다. 첫 번째 원은 컴퍼스 침이 미끄러져서 망쳤고, 두 번째는 선이 너무 굵었고, 세 번째는 시작점과 끝점이 맞지 않았다. 네 번째 원은 거의 완벽했지만 종이가 조금 찢어졌다. "완벽한 원은 존재하지 않아." 아버지가 말했다. 선주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책상 앞에 앉아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매일 원을 그리잖아요." "그건 원처럼 보이는 것들이지. 진짜 원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수학 시간에 배웠지? 점은 크기가 없고, 선은 폭이 없고, 원은 중심에서 모든 점까지의 거리가 정확히 같은 거라고." 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가 그린 이 점을 봐." 아버지가 선주의 공책을 가리켰다. ..

일상다반사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