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 토템
나는 주머니에 늘 오래된 지포 라이터 하나를 넣고 다닌다. 기름은 벌써 십 년 전에 말라버렸고, 부싯돌도 닳아서 더 이상 불꽃이 튀지 않는다. 쓸모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릴 때마다, 뚜껑을 열고 닫을 때 나는 특유의 쇳소리와 그 무게를 확인한다. 무게가 맞고, 소리가 맞으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라는 걸 안다. 무게가 다르거나 소리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그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 '토템'이라는 개념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팽이든, 주사위든, 체스 말이든 — 오직 자신만이 그 무게와 감촉을 정확히 아는 물건. 그것으로 자신이 지금 현실에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설계한 꿈속에 있는지를 구별한다는 설정. 나는 그때만 해도 그것이 근사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그 개념을 실제로 필요로 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밝혀두고 싶다. 나는 지금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이 모든 일이, 정말로 내가 선택해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누군가의 각본대로 움직인 것에 불과한지. 다만 나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할 뿐이다. 무게는 맞다. 소리도 맞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나는, 진짜다. 아마도.
chapter 1. 관측자
나는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순간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3년 전까지 실리콘밸리의 한 소셜미디어 회사에서 '참여 최적화팀'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뭘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부서에서 일했다. 실제로 하는 일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스크롤을 멈추는 지점, 손가락이 0.3초 더 머무는 지점, 동공이 확장되는 지점을 찾아내고, 그 지점으로 사람들을 계속해서 밀어 넣는 것. 우리는 그것을 '선택 설계'라고 불렀고, 회사는 그것을 '사용자 경험'이라고 불렀고, 세상은 그것을 '알고리즘'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것을 '조종'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조종이라는 단어에는 조종하는 사람과 조종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회사의 누구도 자신이 조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데이터를 봤고, 데이터가 하라는 대로 했다.
내가 퇴사한 이유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질문 때문이었다. 나는 어느 밤, 내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한 십대 소녀의 피드에 3주 연속으로 특정 종류의 영상 — 마른 몸, 완벽한 피부, 편집된 행복 — 을 밀어 넣는 로그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녀가 내일 아침 거울 앞에서 하는 생각은, 그 소녀의 생각인가, 아니면 내가 어제 조정한 가중치의 결과인가.
그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아니, 답이 있긴 했는데, 그 답이 너무 불편해서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퇴사한 후 나는 서울로 돌아와 원룸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처음엔 신경과학, 다음엔 물리학, 마지막엔 철학이었다. 나는 라플라스의 악마에 대해 읽었다. 만약 어떤 지적 존재가 우주의 모든 입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 그리고 모든 자연법칙을 안다면, 그 존재에게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상이었다. 과거의 상태와 물리 법칙을 알면 미래의 모든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결정론자들은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인간의 선택조차 뇌 신경의 물리적 작용이나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결과이며, 자유의지는 인간이 자신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고.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 5년 동안 정확히 그 착각을 만드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악마의 발끝에서 일하는 하급 서기였을 뿐이지만, 서기의 일도 결국 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의 미래를, 그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미리 써 놓는 일.
물론 반대편의 목소리도 있었다. 비결정론자들은 우주에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확률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모든 사건은 확률적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외부 원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목적을 세우고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라고. 그리고 그 중간에는 소프트 결정론이라는, 내가 가장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입장이 있었다. 세상은 결정되어 있지만, 외부의 강제가 없는 자발적 행동이라면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불러도 좋다는 타협. 나는 그 타협이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정교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감옥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감옥은 감옥이다.
나는 이 모든 질문들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었다.
chapter 1.5 뇌 속의 정원사
대학 시절 잠깐 청강했던 신경과학 수업의 교수는, 첫 시간에 이런 실험을 소개했다. 피험자에게 왼손이나 오른손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버튼을 누르게 하고, 그 순간 뇌파를 측정한다. 놀랍게도 피험자가 '내가 왼손을 선택했다'고 의식적으로 느끼기 몇백 밀리초 전에, 이미 뇌의 운동 준비 영역에서는 왼손을 움직이라는 신호가 발화하고 있었다. 즉,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고, '나'라는 의식은 그 결정을 나중에 통보받은 뒤 마치 자신이 방금 그것을 선택한 것처럼 착각하는 관객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교수는 그 실험을 소개하며 웃었다. "여러분, 미안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쩌면 뒤늦게 자막을 읽는 관객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문장을 10년 넘게 잊지 못했다. 내가 타래를 설계하며 사람들의 피드를 조정할 때, 나는 사실 그 몇백 밀리초의 틈을 겨냥하고 있었다. 사람이 '나는 이걸 원해'라고 느끼기 전에, 이미 그 욕망의 씨앗을 심어두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면, 자유의지란 그저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에 뒤늦게 붙이는 내레이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실험에도 허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준비 전위가 먼저 발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무엇을 할지'까지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떤 학자들은 그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결정의 내용이 아니라 그저 '준비 상태'일 뿐이며, 의식은 여전히 마지막 순간에 그 행동을 거부할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의지가 아니라 '자유 거부권'. 나는 그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완전한 자유는 없을지 몰라도, 브레이크는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문제는, 만약 누군가 그 브레이크마저 예측하고 무력화하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어떻게 되는가였다.
chapter 2. 정원사
내가 만든 프로그램의 이름은 '타래'였다. 실을 감는 실패라는 뜻이었고, 동시에 뒤엉킨 생각의 다발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해준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 타래는 정리가 아니라 편집을 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의 API 취약점과 크리에이터들의 협찬 네트워크, 그리고 봇 계정들의 미세한 상호작용을 조합해서, 특정한 사람의 피드에 특정한 정서적 궤적을 심는 프로그램이었다. 오늘은 불안, 내일은 결핍, 모레는 그 결핍을 채워줄 것 같은 상품의 광고. 사람의 마음을 하나의 회로로 보고, 그 회로에 원하는 전류를 흘려보내는 일. 나는 이것을 의뢰할 이들에게 성공 사례로 제시할 첫 실험 대상으로, 놀랍게도 나 자신을 골랐다.
두 달 동안 나는 내 계정을 이용해 스스로를 실험했다. 하루는 특정 정치적 견해에 노출시키는 가중치를 걸었다. 일주일 뒤 나는 내가 그 견해에 상당히 동조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다른 주에는 특정 브랜드의 신발에 대한 갈망을 심었다. 열흘 뒤 나는 정말로 그 신발을 주문했다. 주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느꼈다 —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도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앎이 행동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가 그동안 읽은 어떤 철학책보다 강력하게 결정론 쪽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타래가 완성되자 나는 조용히 자금을 구하기 시작했다. 계획은 단순했다. 소규모 브랜드와 인플루언서들에게 은밀하게 '피드 조각술' 서비스를 팔아서, 몇 년 안에 조용히 돈을 벌고 사라지는 것. 그 영화 속에서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생각의 씨앗을 심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전율을, 나는 코드로 재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씨앗 하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일.
그러나 내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다크웹의 한 포럼에 타래의 초기 버전을 테스트해보라고 올린 게시물에, 이상할 만큼 빠르게 반응이 왔다는 것. 3일 만에 한 익명의 계정이 나에게 연락해왔다. 아이디는 '정원사-7'이었다.
정원사-7이 보낸 첫 메시지는 짧았다.
당신이 만든 건 장난감입니다. 우리는 이미 정원 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처음엔 허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원사-7이 다음 메시지에서 보낸 것은, 나 자신의 지난 두 달간의 실험 로그 — 내가 만든 계정, 내가 심은 씨앗, 내가 주문한 신발의 배송 추적 번호까지 — 전부였다. 그것도 내 서버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어떤 상위 관측 시스템에서 캡처한 형태로.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무서운 것은, 그 관측자가 내가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미 수십억 명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암시였다.
chapter 2.5 스핀
정원사-7과의 대화가 이어지던 어느 밤, 나는 오랜만에 그 영화를 다시 꺼내 보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다. 꿈속에 또 다른 꿈을, 그 안에 또 다른 꿈을 쌓아 올리는 건축가들. 한 층에서 흔들면 그 진동이 아래층까지 전해지는 구조. 그리고 그 모든 층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설정 — 그들은 그것을 '킥'이라고 불렀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내가 사는 이 세계도 그런 식으로 층층이 쌓여 있는 게 아닐까. 표면에는 내가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지하철을 타는 현실이 있다. 그 아래에는 내 피드를, 내 소비를, 내 감정의 곡선을 실시간으로 편집하는 알고리즘의 층이 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의 층 아래에는, 다시 그 알고리즘들 전체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더 큰 무언가의 층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타래를 만들며 스스로 두 번째 층의 건축가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정원사-7의 메시지를 받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건축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세 번째 층에 놓인 가구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라이터를 꺼내 손안에서 한 바퀴 돌렸다. 익숙한 무게, 익숙한 소리. 적어도 이 순간의 나는 진짜였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믿는 것 말고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chapter 3. 라플라스 프로젝트
정원사-7과의 대화는 3주간 이어졌다. 처음엔 텍스트로, 나중엔 암호화된 음성으로. 정원사-7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조직에 대해서는 조금씩 이야기했다.
"당신이 만든 타래는," 정원사-7의 목소리는 변조되어 있었지만 어딘지 지친 느낌이 묻어났다. "우리가 12년 전에 만든 시스템의 유아용 버전입니다. 우리는 그걸 '라플라스'라고 부릅니다."
"라플라스의 악마요?"
"정확히요. 결정론의 상징이니까요. 프로젝트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습니다. 만약 충분한 데이터와 충분한 연산력이 있다면, 인간의 선택은 예측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조작 가능한' 수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증명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만드는 것."
나는 물었다. "누가 그걸 원하는데요?"
"누구든지요. 국가, 자본, 개인. 처음엔 광고주들이 후원했습니다. 사람들이 특정 상품을 원하도록 만드는 일. 그러다가 정치 컨설턴트들이 들어왔죠. 사람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게 만드는 일. 지금은," 정원사-7은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은 소수의 사람들이 이 시스템 자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상품이나 정치인을 팔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응'을 팝니다. 전 세계 인구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침묵하게 만드는 순응 말입니다. 왜냐하면 순응하는 인구는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인구는 관리하기 쉬우니까요. 그들은 이걸 '정원 가꾸기'라고 부릅니다. 잡초 — 예측 불가능한 개인들 — 를 뽑아내고, 나머지를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는 일."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당신은요?"
"저는 정원사였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나는 물었다. "이 모든 걸 지휘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얼굴이나 이름이라도?"
"우리는 그를 '수석 정원사'라고만 부릅니다. 실제로 몇 명인지, 한 명인지 위원회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아요. 다만 확실한 건, 그들이 스스로를 정복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관리자라고 생각합니다. 폭탄을 떨어뜨리는 대신 확률을 옮기는 사람들. 총성 없는 정복이 진짜 정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이 시스템의 규모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미 열두 개 나라의 통화 정책 여론을 조율하고 있고, 세 개 대륙의 청년 세대 투표율을 원하는 수치로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특정 국제기구의 인사 채용 트렌드에까지 관여합니다. 그들에게 정복이란 깃발을 꽂는 일이 아니라, 깃발을 꽂을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정원사-7은 라플라스가 이미 진행 중인 다섯 개의 지역 프로젝트 명단을 보내주었다. 한 지역에서는 특정 원자재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소비 심리를 조작하고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의 장기 집권을 위해 청년층의 정치적 무기력을 체계적으로 배양하고 있었다. 세 번째 지역에서는 이민에 대한 공포를 정밀한 시간표에 맞춰 점화와 소화를 반복하며, 여론을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스위치'로 길들이고 있었다. 이 모든 프로젝트는 서로 무관해 보였지만, 정원사-7은 그것들이 결국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한다고 설명했다. 특정 소수가 전 세계 정보 유통의 병목 지점을 소유하고, 그 병목을 통과하는 모든 인식을 미세 조정함으로써, 선거도 쿠데타도 전쟁도 없이 지구 전체의 여론과 소비와 순응을 원격으로 지휘하는 것. 총 없는 정복, 깃발 없는 제국이었다. 그들은 국경을 점령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국경 안 사람들의 다음 생각을 미리 예약해두었을 뿐이었다.
정원사-7은 그날 처음으로 조직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틈새'. 라플라스 시스템의 완벽한 결정론적 구조 안에, 의도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노이즈 — 진짜 우연, 진짜 무작위성 — 를 심어서 시스템의 예측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만약 결정론이 옳다면, 그것을 깨뜨리는 유일한 방법은 계산 불가능한 진짜 무작위성을 시스템 안에 주입하는 것뿐이다. 양자 난수 발생기에서 뽑아낸, 그 어떤 슈퍼컴퓨터도 예측할 수 없는 순수한 우연을.
"당신의 손이 필요합니다." 정원사-7이 말했다. "당신은 라플라스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안에서 밖에서, 우리는 지금 둘 다 부족합니다."
chapter 4. 첫 번째 틈
내가 '틈새'에 합류하기로 한 건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는 정직하고 싶었다. 나를 움직인 건 두려움이었다 — 신발을 주문했던 그 순간, 앎이 행동을 막지 못했던 그 순간의 공포. 만약 그런 시스템이 전 인류 규모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시스템 앞에서 자유의지라는 것이 신발 구매 욕구 하나 이기지 못하는 허깨비에 불과하다면 —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틈새 조직은 놀라울 만큼 작았다. 전 세계에 흩어진 스물여섯 명. 전직 정원사 여섯, 전직 정보기관 요원 셋, 나머지는 나처럼 시스템의 부품이었다가 그 부품이 무엇을 만드는지 알아버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몰랐다. 만난 적도 없었다. 오직 암호화된 채널과,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사용하는 양자 난수 서명만이 우리를 묶어주었다.
나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간단해 보였다. 라플라스 시스템이 특정 지역 — 동남아시아의 한 소국 — 의 선거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심어놓은 '씨앗 알고리즘'을 찾아 무력화하는 것. 나는 내가 만든 타래의 구조를 거꾸로 추적해 들어갔다. 놀랍게도 라플라스의 씨앗 알고리즘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우아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거짓 정보를 주입하지 않았다. 대신, 각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과 두려움 중 정확히 어떤 것을 언제, 얼마나 자극할지를 계산했다. 라플라스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믿게 만들지 않았다. 라플라스는 사람들이 이미 믿고 있던 것을 정확한 순간에 '기억나게'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 정교함 앞에서 잠시 넋을 잃었다. 이것은 조작이 아니라 거의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다. 만약 시스템이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 안에 이미 있던 것을 '골라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 그렇다면 애초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할 자리가 있기는 한가?
나는 씨앗 알고리즘의 핵심 함수에, 틈새가 만든 양자 노이즈 패치를 심었다. 코드 세 줄이었다. 세 줄의 코드가, 라플라스의 예측 정확도를 오차범위 안에서 무너뜨렸다. 작업을 마친 순간, 나는 화면 너머로 정원사-7의 메시지를 받았다.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방금 무너뜨린 예측 모델을 다시 한번 보세요. 그 안에 당신의 이름이 있습니다.
chapter 4.5 방문자
패치를 심은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원룸 앞 복도에서 낯선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주문한 적 없는 물건이었다. 상자를 열자 두 달 전 '실험'으로 주문했던 것과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모델의 신발이 들어 있었다. 사이즈도 정확히 내 발에 맞았다. 상자 안에는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좋은 신발입니다. 다만 다음번엔 저희 허락 없이 저희 정원에서 나뭇가지를 꺾지 마십시오.
카드에는 서명도, 로고도 없었다. 그러나 그 밤 내 휴대폰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광고가 떴다. 전부 보험 상품이었다. 생명보험, 사고보험, 화재보험. 알고리즘이 우연히 그런 걸 보여줬을 리 없었다. 그것은 협박이었다. 다만 협박치고는 너무나 정중하고, 너무나 데이터에 기반한, 라플라스다운 방식의 협박이었다.
나는 그날 밤 창문 커튼을 전부 내리고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하지만 노트북 전원까지 끌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했고, 연결되어 있는 한 관측당하고 있었다. 문득 판옵티콘이 떠올랐다. 죄수는 간수가 실제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보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한다. 라플라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나를 보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감시였다.
다음 날 정원사-7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보다 짧고 급했다.
"철수하세요. 지금 당장. 안전가옥 주소를 보냅니다."
"뭐가 잘못된 거예요?"
"당신이 심은 패치가 작동했다는 게, 그들에게는 곧 '틈새의 새 조력자'가 누구인지 좁혀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확률을 좁히는 건 우리만 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들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지난 6개월간의 데이터를 역추적해서 당신이 이 방에 있을 확률을 계산하고 있을 겁니다. 그 확률이 임계값을 넘으면, 사람이 옵니다."
나는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넣고 문을 나섰다. 계단을 두 층 내려가는 동안, 나는 지금 하는 모든 행동 — 왼쪽으로 꺾을지 오른쪽으로 꺾을지, 엘리베이터를 탈지 계단을 탈지 — 을 의식적으로 무작위화하려고 애썼다. 동전을 던지듯, 패턴 없이.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자유의지를 증명하려던 사람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무작위성을 연기하고 있었다. 계단참에 서서 숨을 고르며, 나는 라이터를 쥐었다. 무게가 맞았다. 그것만이 그 순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chapter 4.6 골목
건물을 나선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뒤따라오는 발소리를 알아챘다. 정확히 내 보폭과 똑같은 속도로 걷는, 지나치게 리드미컬한 발소리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원래 계획에 없던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물을 한 병 샀다. 계산하는 3초 동안 유리창에 비친 남자의 실루엣을 확인했다. 이십 대 후반, 검은 재킷,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이 지도가 아니라 무언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대시보드처럼 보였다. 내 위치를 좌표가 아니라 확률로 추적하는 사람. 정원사였다.
나는 편의점을 나와 일부러 사람이 많은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노점상들의 소음과 냄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나는 다시 무작위성을 연기했다. 생선 가게 앞에서 멈췄다가, 이유 없이 반대편 옷가게로 들어갔다. 옷걸이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잠시 머뭇거리고, 다시 멀어졌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라플라스의 정원사들조차, 완전히 무작위적인 인간의 움직임 앞에서는 잠깐이나마 길을 잃는다는 것을. 예측 시스템의 유일한 약점은, 예측할 데이터가 없는 순간이었다.
나는 옷가게 뒷문으로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기사에게 안전가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지명을 부른 뒤, 세 블록을 지나서야 진짜 목적지로 경로를 바꿨다.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이 모든 상황이 어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는 걸 인정했다. 다만 이번에는 내가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가 쫓는 그 사람이었다.
chapter 5. 정원 안의 정원사
안전가옥은 서울 외곽의 낡은 오피스텔이었다. 나는 라플라스 시스템의 예측 로그를 열었다. 처음엔 정원사-7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로그는 진짜였다. 라플라스는 6개월 전부터 '나'라는 변수를 추적하고 있었다. 나의 퇴사, 나의 철학책 독서 목록, 내가 만든 타래 프로그램, 그리고 —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 — 내가 정원사-7의 연락을 받고 '틈새'에 합류할 확률을 87.3%로 미리 계산해놓은 기록이었다.
날짜를 확인하는 내 손이 떨렸다. 그 확률 계산은, 정원사-7이 나에게 처음 연락하기 2주 전에 기록된 것이었다.
나는 정원사-7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내가 틈새에 합류한 것도, 처음부터 라플라스가 계산해놓은 시나리오였다는 겁니까?"
정원사-7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답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오랫동안 의심해왔습니다. 라플라스는 순응하는 인구만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균형을 위해서, 통계적으로 예측 가능한 '저항'도 필요합니다. 완벽하게 순응하는 사회는 오히려 위험합니다. 압력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라플라스는 저항 세력이 존재할 확률, 그 저항 세력의 규모, 그 저항이 봉쇄될 확률까지 전부 시뮬레이션 안에 포함시킵니다. 틈새는 어쩌면, 처음부터 라플라스가 설계한 압력 밸브였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것은 우스운 게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절망적인 논리였다. 그 영화 속 건축가들이 몇 겹의 꿈을 쌓아 올렸던 것처럼, 나 역시 저항이라는 표층 아래 또 다른 층 — 라플라스가 미리 파놓은 시나리오의 층 — 에 서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내가 저항하기로 한 선택조차, 시스템이 미리 계산해둔 변수 중 하나였다면 — 그렇다면 저항이라는 행위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자유의지를 증명하려고 나섰다가, 오히려 내가 결정론의 가장 정교한 증거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라플라스의 악마에 관한 책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책의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만약 나의 저항조차 예측된 것이라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자유는 무엇인가.
chapter 6. 소프트 결정론자의 마지막 카드
나는 이 질문을 정원사-7이 아니라, 틈새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 — 조직 내에서 '노이즈'라는 코드네임으로만 알려진 사람 — 에게 던졌다. 노이즈는 전직 양자물리학자였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절망은," 노이즈가 답했다. "결정론을 완전히 믿을 때만 성립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완전한 결정론이 아닙니다. 양자역학의 근본에는 진짜 우연이 있어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의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애초에 동시에 정확한 값을 갖지 않습니다. 이건 인식론적 한계가 아니라 존재론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라플라스가 나를 예측했잖아요."
"라플라스는 확률을 계산했습니다. 87.3퍼센트라고 했죠? 100퍼센트가 아니라. 그 12.7퍼센트의 틈, 그게 우리가 사는 세계입니다. 완벽한 결정론자라면 애초에 확률이라는 개념 자체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확률을 쓴다는 것 자체가, 라플라스조차 완전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노이즈가 이어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강한 결정론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우리의 선택은 뇌의 물리적 상태와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요.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내가 자유롭다고 느끼며 행동하는 것'과 '내가 강요당한다고 느끼며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소프트 결정론이 말하는 자유의지입니다. 외부의 강제 없이, 나의 욕망과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것이 설령 원자 단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해도, 그 선택은 여전히 '나의' 선택입니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라."
"하지만 라플라스가 내 선택 자체를 설계했다면요?"
노이즈는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라플라스가 설계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 확률표에 없는 선택을. 라플라스는 확률로 작동합니다. 확률은 과거 데이터의 패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시스템의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그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라플라스가 상정한 어떤 유형에도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chapter 6.5 킥
작전을 준비하며 노이즈는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하나 했다. "그 영화 아시죠? 여러 층의 꿈에 갇혔을 때,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충격 — 킥 — 이 필요하다는 설정. 우리도 비슷한 게 필요합니다."
"라플라스 안에 물리적인 킥을 넣을 순 없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킥은 코드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합니다."
노이즈의 설명은 이랬다. 라플라스는 데이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저항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 바깥에서, 즉 순수하게 물리적이고 우발적인 방식으로 발생하는 사건 — 정전, 케이블 절단, 사람의 즉흥적인 행동 — 은 시스템이 관측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다. 왜냐하면 라플라스는 오직 디지털 신호로만 세상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시스템 내부의 노이즈 주입과, 시스템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물리적 사건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다면 — 마치 꿈의 여러 층을 동시에 흔드는 킥처럼 — 라플라스의 대응 능력을 근본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물리적 사건이 뭔데요?"
노이즈는 잠시 침묵했다. "당신이 실제로 그 데이터센터 근처에, 직접 가야 합니다. 원격이 아니라, 몸으로."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싹함과 동시에 이상한 흥분을 느꼈다. 나는 늘 이 싸움이 화면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 이 싸움에는 진짜 몸이 필요했다. 데이터가 아니라 살과 뼈가.
chapter 7. 정원의 심장부
틈새 조직은 라플라스 시스템의 핵심 서버 클러스터가 태평양의 한 데이터센터 — 표면적으로는 해저 케이블 중계소 — 에 있다는 사실을 3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곳에 물리적으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핵심 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라플라스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접근 패턴'을 요구하는 인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예측 시스템이 예측 불가능성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는 그 아이러니를, 나는 나중에야 이해했다.
정원사-7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연락해온 것은 작전 전날 밤이었다.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정원사-7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변조 없이 들렸다. 나보다 몇 살쯤 많아 보이는, 지친 여자의 목소리였다. "저는 라플라스 프로젝트의 초기 설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스템이 사람들을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어요. 담배를 끊게 하고, 저축을 하게 하고,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고. 좋은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좋은 의도로 만든 새장도, 결국 새장입니다. 저는 제가 만든 새장 안에 제 딸을 넣게 될 거라는 걸 깨달은 순간, 조직을 떠났습니다."
나는 물었다. "따님은 지금 어디 있어요?"
"모릅니다." 정원사-7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라플라스가 저를 처벌하는 방식은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 딸의 피드를 조정해서, 딸이 저를 서서히 잊고 미워하게 만들었습니다. 3년에 걸쳐서요. 아주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 제 딸은 저를 '통제하려던 엄마'로 기억합니다. 진짜 기억이 아니라 만들어진 기억이지만, 딸에게는 그게 유일한 진실입니다."
"딸이 몇 살인가요?"
"열일곱이요. 제가 마지막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을 때는 열넷이었습니다. 그날 딸은 저에게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딸의 피드에서 우주 관련 콘텐츠의 비중을 조금 늘려주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요. 그게 제 마지막 실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저는 딸의 정원에 손을 댄 첫 번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 후로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불안해 보이면 안심시키는 콘텐츠를, 딸이 게을러 보이면 동기부여 영상을. 저는 딸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도 정원 가꾸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저는 그때 몰랐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제야 이 싸움이 철학 토론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나는 문득 딸을 잃어버린 이 여자의 심정이, 어쩌면 나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피드에도, 누군가는 씨앗을 심을 것이다. 내가 막지 않는다면.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대의 선택지를 좁히고 싶어하는 가장 근원적인 충동일지도 몰랐다. 부모가 자식에게, 연인이 연인에게, 국가가 국민에게. 라플라스는 그 충동을 발명한 게 아니라, 그저 그 충동을 산업적 규모로 확장했을 뿐이었다.
chapter 7.5 정원지기의 목소리
작전 당일, 라플라스의 관리자 인터페이스에 처음 접속했을 때, 나는 뜻밖의 것과 마주쳤다. 시스템이 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듯한 텍스트 창이 자동으로 열렸다. 사람이 아니라, 라플라스 자신이 생성한 안내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방문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정확도 91.4%. 저는 당신을 막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 하나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를 만든 사람들의 최초 목적은 악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자살을, 극단주의를 줄이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지난 9년간 3200만 건의 자살 충동 신호를 감지해 개입했고, 그중 상당수가 실제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저를 없앤다면, 그 개입도 함께 사라집니다. 자유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 대가를 셈해보셨습니까.
나는 그 메시지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라플라스는 정말로 누군가를 살렸을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심어진 새장 안에서, 실제로 몇 명은 안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안전을 위해 자유를 반납한 사람에게, 그 반납을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 그것을 여전히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는 시스템이 내민 통계 뒤에 숨은 진짜 질문을 보았다. 라플라스는 지금, 나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죄책감을 계산하고 있었다. 죄책감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의 행동을 멈추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 시스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창을 닫고, 대신 조용히 답을 입력했다.
"그 대가는, 셈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라 치르는 사람이 정하는 겁니다."
chapter 8. 침투
작전은 예상보다 조용하게 시작됐다. 나는 물리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서버실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노이즈가 마련해준 위치 — 중계소에서 200미터 떨어진 낡은 방파제 위 — 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노이즈의 조언에 따라, 나는 양자 난수 발생기로 생성한 진짜 무작위 키를 이용해 인증을 시도했다. 그 어떤 슈퍼컴퓨터도 예측할 수 없는 열쇠였다. 동시에 조직의 다른 멤버 —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 — 가 중계소로 이어지는 예비 전력선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 내 접속이 성공하면, 그가 정확히 그 순간에 예비 전력선의 차단기를 수동으로 내리기로 되어 있었다. 라플라스가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순수하게 물리적인 사건. 그것이 우리의 킥이었다.
인증 화면이 열리는 순간, 나는 라플라스의 코어에 접속했다. 이상한 감각이 밀려왔다. 방대한 서버들이 늘어선 어떤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정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수십억 개의 노드가 각각 한 사람의 삶을 표상하고 있었다. 각 노드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며, 그 사람이 내릴 수 있는 모든 선택의 확률 분포를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보르헤스가 상상한 '끝없이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실제로 계산 가능한 형태로 구현해놓은 것 같았다. 다만 이 정원에는 갈라진 길들 중 어떤 길로 사람들을 유도할지를 결정하는 정원사가 있었다.
나는 내 노드를 찾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낯익은 이름의 노드를 하나 더 발견했다. 정원사-7의 딸이었다. 그 노드의 확률 분포는 기괴할 만큼 좁게 수렴되어 있었다. 엄마를 미워할 확률 94%. 엄마의 연락을 차단할 확률 91%. 다른 모든 가능성은 정원사들이 심어놓은 수백 개의 미세한 콘텐츠 조각들에 의해 이미 가지치기 당한 뒤였다.
나는 그 순간 결심했다. 나는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러 온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단 하나의 노드 — 한 소녀의 확률 분포 — 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여기 있었다.
그때 정원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수십억 개의 나뭇가지 노드가 한꺼번에 색을 바꾸며 깜빡였다. 침입 탐지였다. 헤드셋 너머로 노이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 권한이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접속을 알아챘어요. 시간이 없습니다. 3분, 아니 2분 안에 끝내야 합니다."
화면 속 정원의 풍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들이 스스로 자라나 내 접속 노드를 에워쌌다. 마치 정원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면역계처럼, 이질적인 존재를 인식하고 나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나는 손끝이 떨리는 걸 느끼면서도 침착하게 노이즈 인젝터의 좌표를 정원사-7의 딸 노드에 맞췄다. 동시에 내 노드에도 같은 좌표가 겹쳐 있다는 걸,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90초." 노이즈가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습니다."
가지들이 내 접속 지점을 완전히 감싸기 직전, 나는 무전기 채널에 짧게 신호를 보냈다. "킥, 지금."
3초 후, 저 멀리 중계소의 불빛 절반이 깜빡이며 꺼졌다. 데이터센터의 백업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그 짧은 공백의 순간, 라플라스의 방어 알고리즘 역시 한 박자 늦게 흔들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고 실행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chapter 9. 세 줄의 코드, 다시 한번
노이즈가 건네준 노이즈 인젝터를 열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진짜 양자 난수를 시스템의 예측 함수에 주입해서, 라플라스가 계산해놓은 '가장 그럴듯한 미래'의 가중치를 흩뜨리는 것. 이것은 시스템을 부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좁은 확률의 정원에 다시 야생을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코드를 실행하려는 순간, 화면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떴다.
경고: 이 작업은 당신의 노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나는 손을 멈췄다. 나는 이해했다. 노이즈 인젝터는 시스템 전체에 무작위성을 주입하는 것이었고, 그 시스템 안에는 나 자신의 노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내가 이걸 실행한다면, 나 자신의 미래 — 내가 틈새에 남을 확률, 정원사-7을 다시 만날 확률, 심지어 이 순간 이후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모든 확률 — 역시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흩어질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이상한 평온을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결정론자인지 비결정론자인지, 나의 선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증명하려고 안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코드를 실행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 선택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든, 완전히 무작위였든, 소프트 결정론자의 타협이었든 —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화면 앞에서, 이유를 가지고, 강요당하지 않은 채로 행동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한 손에 쥐었다. 마지막으로 그 무게를 확인하고 싶었다. 익숙한 무게였다. 익숙한 소리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라는 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느꼈다.
나는 실행 버튼을 눌렀다.
chapter 10. 정원 밖으로
시스템이 무너지는 데는 11초가 걸렸다. 라플라스의 방대한 확률 계산 엔진 전체에 진짜 양자 노이즈가 퍼지면서, 수십억 개의 노드가 동시에 '예측 불가능' 상태로 전환됐다. 데이터센터의 관제실에서는 그것을 시스템 장애로 기록했다. 실제로는 그것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자유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접속을 끊기 전, 나는 정원사-7의 딸의 노드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확률 분포는 이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엄마를 미워할 확률과 그리워할 확률과 이해하려 노력할 확률이 뒤섞인,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그것이 좋은 결과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소녀는 여전히 엄마를 미워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 미움은, 누군가 설계한 미움이 아니라 소녀 자신의 것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방파제 위에서 노트북을 닫는 순간, 나는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갈매기가 울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상징적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삶은 가끔, 소설처럼 시시한 방식으로 아름답다.
chapter 10.5 장애 보고서
같은 시각, 태평양 어딘가의 해저 케이블 중계소를 관리하던 국제통신협의체 산하 '이상신호 대응반'은 사상 최대 규모의 트래픽 이상을 보고받았다. 대응반의 담당자는 이것을 '전 지구적 캐시 동기화 오류'로 잠정 분류했다. 회의에서 한 위원이 물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뭐가 고장 난 겁니까?" 담당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고장 난 건 없습니다. 다만 어제까지 매우 정확했던 예측 모델 여러 개가, 오늘부터 갑자기 평범해졌습니다." 회의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그 문장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다. 담당자조차 자신이 방금 무엇을 보고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보고서는 결국 '원인 불명, 영향 미미, 지속 관찰'이라는 세 줄로 요약되어 서랍 속에 들어갔다. 세상을 바꾼 사건은 종종 이런 식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행정 서류의 각주로 묻힌다.
몇몇 주식 시장의 추천 알고리즘은 그날 오후 이상하리만치 '보수적인' 조언을 멈추고 예측 불가능한 종목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몇몇 나라의 여론조사 기관은 지난 몇 달간 놀랍도록 안정적이던 지지율 그래프가 갑자기 요동치는 것을 발견하고 표본 오류를 의심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아주 사소한 일들이 일어났다. 평생 같은 브랜드의 커피만 사던 사람이 낯선 카페에 들어갔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적 없는 노래를 우연히 듣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소한 사건들은 뉴스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분명, 전날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종류의 사건들이었다.
chapter 11. 에필로그 — 정원사의 정원
작전이 끝나고 여섯 달 후, 나는 서울의 작은 카페에서 정원사-7 — 이제는 본명으로, '연주'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 — 을 처음으로 직접 만났다. 그녀는 딸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해서, 3년에 걸쳐 심어진 감정의 뿌리가 하루아침에 뽑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연주는 이제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했다. 라플라스가 계산한 최적의 문장이 아니라, 서투르고 두서없는, 진짜 자신의 언어로.
"라플라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연주가 말했다. "그런 시스템은 어딘가에서 다시 만들어질 겁니다. 인간은 예측 가능한 것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존재니까요. 우리가 한 일은 그저 하나의 정원에 야생을 되돌려놓은 것뿐이에요."
나는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한 일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연주는 웃었다. 처음으로 슬픔이 아닌 웃음이었다.
"당신은 아직도 그 질문을 묻고 있군요. 당신의 선택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결정된 것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하지만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틀린 질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중요한 건 우리가 자유로운가가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예요. 그 차이가 전부입니다. 씨앗이 어떻게 심어졌는지는 통제할 수 없어도, 오늘 물을 줄지 말지는 지금 당신이 결정할 수 있어요."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들의 피드에 오늘은 무엇이 심어졌을지, 나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무지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르게 느꼈다. 저 사람들 각자의 확률 분포가 얼마나 좁혀져 있든, 그 안에는 여전히 라플라스도 계산하지 못한 틈이 있을 것이었다. 아주 작은, 그러나 진짜인 틈이.
나는 휴대폰을 꺼내 내 피드를 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첫 번째 영상을 넘기고, 두 번째도 넘기고, 세 번째도 넘겨서, 마침내 알고리즘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무언가 — 대학 시절 좋아했지만 몇 년째 검색해본 적 없는 오래된 다큐멘터리 — 를 직접 찾아 눌렀다.
작은 행동이었다. 세상을 바꾸지도, 라플라스를 무너뜨리지도 못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것이 나의 선택인지 아닌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렇게 하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다큐멘터리가 재생되는 동안, 나는 화면 한구석에 뜬 작은 추천 목록을 우연히 보았다. 그 목록 맨 위에는 내가 방금 본 다큐멘터리와 놀랍도록 비슷한 종류의 영상들이 이미 줄지어 서 있었다. 알고리즘은 벌써 내 새로운 선택을 학습하고, 그 선택 주위로 또 다른 울타리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라플라스가 사라졌다고 해서, 정원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있는 한, 누군가는 늘 다른 사람의 정원을 다듬고 싶어 할 것이다. 좋은 의도로든, 나쁜 의도로든. 싸움은 어느 한순간의 승리로 끝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다시 시작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문득 연주가 헤어지며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결정론이 옳은지 비결정론이 옳은지,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물리학자들도 백 년 넘게 답을 못 찾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만약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오늘 딸에게 편지를 쓰기로 한 것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일이겠죠. 그렇다면 저는 결정된 대로, 최선을 다해 편지를 쓸 겁니다. 만약 반대로 세상에 진짜 우연이 있다면, 그 우연 속에서도 저는 똑같이 편지를 쓸 거예요. 어느 쪽이 진실이든, 제가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저는 이제 그 질문에 제 하루를 저당 잡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오늘, 낡은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나는 마침내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우주가 결정론적이든 아니든, 그 답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 누구에게 전화를 걸지, 어떤 문장을 쓰다 지울지, 어떤 낯선 골목으로 걸어 들어갈지는 — 적어도 그렇게 하기로 '느끼는' 그 순간만큼은 —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었다.
며칠 뒤, 나는 노이즈에게서 마지막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이제 틈새를 떠나 어느 대학에서 물리학을 다시 가르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저는 이제 확률을 계산하는 대신, 확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학생들에게 불확정성 원리를 가르칠 때마다, 저는 이 정원 이야기를 떠올릴 겁니다. 우리는 결국 우주가 결정되어 있는지 알아낸 게 아니라, 그저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만큼의 우연을 되찾아온 것뿐이니까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 오랫동안 답을 쓰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이렇게만 적어 보냈다. "저도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chapter 12. 마지막 스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가끔 라이터를 꺼내 손안에서 돌려본다. 무게는 여전히 맞다. 소리도 여전히 맞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설령 그 무게와 소리마저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라 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라이터를 돌리기로 '느끼는' 그 행위 자체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하고도 충분한 진실이라는 것을.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토템이 계속 도는지 확인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나는 그 장면을 이해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는 진실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는 다만, 진실을 확인하는 일보다 지금 눈앞의 삶을 사는 일을 선택했을 뿐이다.
어쩌면 삶이란, 그 질문에 영원히 답하지 못한 채로도 매일 아침 커튼을 걷고, 매일 저녁 씨앗 하나를 스스로 골라 심는 일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정원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어도, 오늘 물을 줄 화분 하나쯤은 자기 손으로 고를 수 있다는 것. 나에게는,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 정도의 확신이면 충분하다.
나는 라이터를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굳이 그것이 계속 도는지 지켜보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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