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공명하는 신호

요긴소프트 2026. 7. 8. 12:55
728x90
반응형

서(序) — 어느 사냥꾼의 수첩에서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팽창한다는 것은 결국 유한한 무언가가 팽창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안에 담긴 영혼이라는 것도 유한하지 않을까.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던 시절부터,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사람들은 지옥과 천국을 상상했다. 용을 상상했듯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것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계산을 하곤 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의 수와,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수. 지옥도 천국도 이미 인구 과잉 아닐까. 통계를 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그때는 몰랐다, 그게 아무도 답할 수 없는 계산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답은 나온다. 나오긴 하는데,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답이 아닐 뿐이다.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어떤 목적을 갖고 이 세계라는 시스템을 설계했다면.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늘어난 시간만큼 그 시스템에 버그가, 바이러스가 쌓였다면. 그 위에 있는 존재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백신은 이미 왔었다. 우리는 그것을 테러리스트라 불렀고, 연쇄살인마라 불렀고, 악의 축이라 불렀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은 놀랍게도 그것을 이겨냈다. 매번. 똑똑해졌으니까.

그러니 다음 백신은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유령. 귀신. 우리가 오랫동안 무시하고, 두려워하고, 웃어넘겼던 존재들.

나는 이제 그것들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들은 죽은 자들이 아니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들이다. 순서를 기다리다, 순서를 빼앗긴 자들이다.

신호(信號)

1부 — 균열

장마가 늦게 왔다. 칠월 중순인데도 하늘은 여태 갠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도시는 축축한 곰팡내를 이불처럼 뒤집어쓰고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영성분석실—사람들은 그저 '지하 3층'이라 불렀다—의 창문 없는 복도에서, 한기석은 삼십칠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기석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손가락 마디마디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커피 때문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젯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커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A4용지 한 장이었다. 종이 위에는 스펙트럼 그래프가 인쇄되어 있었다. 진폭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파형, 그 아래 붉은 잉크로 누군가 휘갈겨 쓴 좌표값. 그리고 그 옆, 담당 분석관 서다인의 서명과 함께 붙은 대상자 식별번호.

대상자: 한서인 (14세, 여)
관계: 피분석자 직계 — 분석의뢰인의 딸
△F 공명대역: 191.4Hz — 등급 3 (활성)

활성. 그 두 글자가 형광등 불빛보다 더 하얗게 그의 눈을 찔렀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해야 하지만, 사실 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팔 개월 전, 유월의 어느 늦은 밤이었다. 기석의 팀, 그러니까 세상에 '음영과(陰影課)'라는 이름으로도, '19호 특별전담반'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여섯 명의 사내와 여자들이 서울 근교의 한 폐채석장에서 여덟 번째 '적색 신호원'을 제거한 날 밤이었다.

적색 신호원. 그들은 그렇게 불렀다.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혹은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존재들—과 동일한 주파수의 생체신호를 방출하는 자들. 세상은 그들을 연쇄살인범, 아동유괴범, 존속살해범이라 불렀지만 음영과의 언어로는 그저 '공명체(共鳴體)'였다.

그날 밤 채석장에서 죽은 자는 마흔두 명의 실종 아동을 유괴하여 암매장한 혐의로 세 번이나 수사망을 피해간 남자였다. 기석이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은 피가 아니라—적어도 기석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검은 연기 같은 무언가였다. 연기는 잠시 허공에서 인간의 형상을 이루는 듯하다가, 이내 밤하늘로 흩어져 사라졌다.

"됐다." 팀장 방주호가 무전기에 대고 짧게 말했다. "191.4가 소거됐다. 본부, 확인해."

"확인. 지하 채집소에서 대응 신호 소멸 관측됨. 시각 23시 47분. 수고했다."

기석은 그 밤,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를 느꼈다. 죽어 마땅한 자를 죽였는데도, 뭔가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그 감각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아직은.


음영과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려면, 삼 년 전 지어졌다가 이 년 전 폐기된 '헤르메스 프로젝트'의 보고서로 돌아가야 한다. 기석이 그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그는 원래 강력계 형사였고, 딸을 잃을 뻔한 사건 하나가 그를 이 이상한 세계로 끌어들였다.

프로젝트의 발단은 어느 천문물리학자의 논문이었다. 논문의 제목은 재미없었다. 「유한 팽창 우주 모형에서의 엔트로피 폐곡선과 정보 보존 문제에 관하여」. 하지만 그 논문의 각주 47번, 저자가 술김에 적었을 게 분명한 한 문장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만약 우주가 유한하다면, 그리고 정보—즉 의식—가 소멸하지 않고 보존된다면, 유한한 공간 안에 무한히 누적되는 의식은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든 것은 놀랍게도 물리학자가 아니라, 종교학과 통계학을 함께 전공한 한 늙은 여자였다. 이름은 오순임. 기석이 나중에 알게 될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 설계자였다.

오순임의 계산은 단순했다. 인류 역사상 사망한 인구의 총합과, 현재 살아있는 인구의 수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적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지옥과 천국, 즉 사후 세계의 '유한한 수용소'라는 개념을 공유해왔다. 만약 그 수용소가 실재한다면, 지금쯤 그곳은 인구 과잉으로 터져나가야 정상이다.

그런데 터지지 않았다. 왜?

오순임의 답은 간단하고도 끔찍했다. *"수용소는 순환한다. 밀어내야 새로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기석이 이 모든 이론을 처음 들었을 때, 그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지금, A4 용지 한 장을 손에 쥐고 지하 3층 복도에 서 있는 그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그는 다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팀장님." 다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조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기석을 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뭔가 어색한 것이 있었다. 아주 미세한, 시선의 지연. 마치 그를 보기 전에 잠깐 다른 곳을 봐야 했던 것처럼.

"이거." 기석이 종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서인이 이름이 왜 여기 있어."

다인은 종이를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삼 일 전에 나온 값이에요. 재검사도 했고요. 오류 아니에요."

"재검사를 했다고? 나한테 말도 없이?"

"팀장님한테 먼저 말하면 어떻게 하실지 뻔하니까요." 다인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울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밤을 새운 걸까. 기석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는 규정대로 했어요. 확인되는 즉시 보고. 방 팀장님께도 이미 올라갔어요."

"방주호가 안다고?"

"네."

기석은 자신의 심장이 정확히 어디에서 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갈비뼈 왼쪽 아래, 낯설게 크고 낯설게 시끄러운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이거 잘못됐을 수도 있잖아. 장비 오작동일 수도 있고. 애초에 이 이론 자체가—"

"팀장님." 다인이 그의 말을 잘랐다.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지금까지 이 이론으로 여든여섯 명을 소거했어요. 여든여섯 명 전부, 대응하는 살인이나 실종 사건과 연결됐고요. 오작동이었던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서인이는 열네 살이야. 걔가 뭘 했다는 거야. 걔가 누굴 죽였다는 거야?"

이 질문에 다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서랍에서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지난 세 달간의 서인의 행적을 정리한 문서였다. 학교, 학원, 친구 관계, SNS 기록. 음영과가 감시 대상자에게 늘 하는 일이었다—다만 그 대상이 그의 딸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문서 맨 아래, 붉은 색으로 형광펜 표시가 된 문장 하나.

5월 21일 - 6월 3일 사이, 같은 반 학생 유하영(15) 등교 거부 및 실종 신고. 현재까지 미발견.

"이게 뭐?" 기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실종되기 전 하영이가 서인이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정황이 있어요. 학교 측 진술이랑 몇몇 급우들 증언에서요."

"괴롭힘 좀 당했다고 사람이 죽나? 죽인 것도 아니고 실종이잖아."

"팀장님." 다인이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191.4Hz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까지 세운 가설로는—누군가를 '지옥으로 밀어넣을 만큼' 깊은 악의를 품고, 그 악의를 실행에 옮긴 사람에게서 나와요. 반드시 물리적 살인일 필요는 없다는 거죠."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기석은 자신이 아는 딸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아침마다 부스스한 머리로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던, 아빠의 넥타이가 촌스럽다고 놀리던, 지난 크리스마스에 손수 만든 카드를 건네주며 수줍게 웃던 그 얼굴을. 그 얼굴 어디에도 악의는 없었다. 없어야 했다.

"말도 안 돼." 기석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팀장님." 다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저도... 저도 이걸 믿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요."


그날 밤 기석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음영과 본부 지하, '채집소'라 불리는 장소로 내려갔다. 그곳은 도시의 지질 단층 위, 지하 47미터에 위치한 거대한 원형 챔버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오순임이 설계하고 헤르메스 프로젝트가 완성한 장비, '공명 수신기(Resonance Receiver)'—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귀'라고 불렀다.

'귀'는 밤낮없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거대한 벌집 속에서 수만 마리의 벌이 동시에 날갯짓하는 소리 같았다. 이 소리가 191.4Hz대의 공명 신호를 포착할 때마다 벽면의 스크린에 붉은 점이 떠올랐다. 지금 스크린에는 여덟 개의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에, 작은 글씨로 이름이 붙어 있었다.

HAN SEO-IN

기석은 오랫동안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방주호였다.

"기석아." 방주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그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부르는 것을 기석은 십오 년 지기로서 딱 두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한 번은 기석의 아내가 죽었을 때, 또 한 번은—

"그만해라." 기석이 그의 말을 끊었다. "네가 하려는 말 안 들어도 알아."

"들어야 돼." 방주호가 그의 옆에 섰다. 둘은 함께 붉은 점을 바라보았다. "규정 알잖아. 등급 3 이상 공명체는 72시간 내 처리가 원칙이야. 예외 없어."

"내 딸이야, 주호야."

"나도 알아." 방주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래서 지금 너한테 말하는 거고. 다른 팀원한테 배정 안 하고. 규정대로면 벌써 감정평가위원회 회부됐어야 하는 거 알지?"

기석은 알았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방법이 있을 거야." 기석이 말했다. "고문헌 연구팀이 신호 소멸에 대해 다른 방법도 찾고 있다며. 물리적 제거 말고 다른—"

"기석아." 방주호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육 년 동안 그 팀이 찾아낸 유일한 방법이 지금 우리가 쓰는 거야. 다른 건 없어. 있었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사람 여든여섯 명을 죽였겠냐?"

그 말에 기석의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그럼 지금까지 죽인 여든여섯 명 중에, 오작동은 없었어도, 억울한 죽음은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 하영이라는 애가 진짜 서인이 때문에 실종됐다고 확신해? 그냥 가출일 수도 있잖아. 열다섯 살짜리 애가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방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여덟 개의 붉은 점 중 하나가 유독 밝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옆에 뜬 이름은 기석도 아는 얼굴이었다—음영과 3팀의 신참 요원, 강도영. 스물여섯 살, 입사한 지 이 년 된, 늘 웃음이 많던 청년.

"저것도 오늘 뜬 거야." 방주호가 낮게 말했다. "도영이도 등급 3이야."

기석의 숨이 막혔다.

"도영이가... 왜?"

"몰라. 지금 조사 중이야. 근데 기석아, 이게 핵심이야. 요즘 들어 이런 일이 늘고 있어. 지난 팔 개월간 우리 쪽 사람—음영과 직원이나 그 가족—에게서 공명 신호가 뜬 게 이번이 세 번째야. 뭔가 이상해. 마치—"

"마치 뭐?"

방주호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이 벽면 스크린을 훑었다. 스크린 하단, 작은 숫자로 표시된 '누적 소거 건수'는 이제 86을 넘어 87이 되어 있었다.

"마치 뭔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한 보복처럼."

이 말을 듣는 순간, 기석의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채석장에서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느꼈던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2부 — 늪

다음 날, 기석은 감정평가위원회 소환을 무시하고 대신 고문헌 연구실을 찾았다. 지하 5층, 습기가 벽지를 갉아먹은 좁은 방에서, 백발의 오순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차를 두 잔 준비해두고 있었다.

"앉으시게." 그녀가 말했다. 여든이 다 된 나이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또렷했다.

"박사님." 기석이 자리에 앉지 않고 물었다. "이 시스템이 정말 맞습니까? 191.4Hz가 정말 '지옥에서 온 존재들'이고, 그걸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 대응 인간을 죽이는 것뿐이라는 게, 그게 정말입니까?"

오순임은 대답 대신 그에게 낡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가 다 해져서 제목을 알아보기 힘든 고서였다.

"이건 1731년, 조선 후기의 한 무속인이 남긴 기록이네. 그자는 자신을 찾아온 원혼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지. 원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우리는 밀려났다. 새로 나가야 할 자리를 빼앗겼다. 우리는 원래 나가야 했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뿐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내 가설이 맞다면, 저 세계—우리가 지옥이라 부르는 그 유한한 공간—는 원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었네. 일정 기간 머문 영혼은 다시 이 세계로 환생해야 하는데, 지난 이백여 년간 인류의 평균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고, 인구가 폭증하면서, 그 순환 주기가 어긋난 거야. 나가야 할 존재들이 나가지 못하고 적체된 거지."

"그래서요?"

"그래서 저 위의—" 오순임이 천장을 가리켰다. 마치 하늘 너머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한 손짓이었다. "이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가정되는 존재가, 시스템의 오류를 자체적으로 수정하려는 거네. 적체된 영혼들을 강제로 밀어내려는 거지. 그 방법이 바로—"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거요."

"정확히는," 오순임이 고쳐 말했다. "'귀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산 사람의 몸을 매개로 다시 나오려 하는 거지. 자네가 채석장에서 쏜 그 사내—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옥의 존재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던 거야. 191.4Hz라는 공명은, 산 자와 원혼이 같은 파장으로 공명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간섭무늬라고 보면 되네."

기석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지난 팔 개월간 그가 목격한 여든여섯 번의 소거—매번 검은 연기가 흩어지던 그 장면들이 이 이론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 서인이는요." 기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 딸은 왜—"

"자네 딸에게서 신호가 뜬 건," 오순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네. 첫째는 다인 연구원이 말했을 것처럼, 자네 딸이 스스로 저지른 어떤 악행—어쩌면 자네 딸조차 그것을 악행이라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무언가—으로 인해 지옥의 존재와 공명하게 된 것. 그리고 둘째는—"

오순임이 말을 멈췄다.

"둘째는 뭡니까?"

"둘째는, 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지난 팔 개월간 여든여섯 명을 소거했지. 그런데 소거 속도보다 새로 뜨는 신호의 숫자가 더 빨라지고 있어. 마치—" 오순임이 낡은 책을 다시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마치 저 위의 존재가, 우리의 개입 자체에 반응해서 밀어내는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우리가 백신처럼 작동해서 시스템의 오류를 수정하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건 시스템이 그 백신을 무력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속시키는 과정일지도 몰라."

기석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서인이는 무고할 수도 있다는 거네요."

"무고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오순임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자네에게 거짓 희망을 줄 생각이 없네, 한 반장. 삼십칠 년을 형사로, 요원으로 살아온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진실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휘어지지 않아."


그날 저녁, 기석은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죽은 후 딸과 단둘이 살아온 오래된 아파트, 낡은 현관문 앞에서 그는 오랫동안 열쇠를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서인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난 무릎을 끌어안고, 휴대폰 화면의 빛만이 어둑한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가 들어온 것을 알아채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인아." 기석이 불렀다. 목소리가 낯설게 갈라졌다.

"왜." 짧고 무뚝뚝한 대답.

기석은 딸의 얼굴을 살폈다. 열네 살, 아직 여기저기 여드름이 남은 얼굴, 살짝 처진 눈매는 죽은 아내를 닮았다. 평범했다. 지극히 평범한 열네 살 소녀의 얼굴이었다. 이 얼굴에서 무슨 악의를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저녁 먹었어?"

"라면 먹었어."

"학교는 어땠어?"

이 질문에, 서인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 아주 잠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경계? 아니면 다른 무엇? 기석은 그것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눈빛이 그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건 왜 물어봐. 아빠가 언제부터 그런 거 물어봤다고."

"그냥... 궁금해서."

"오늘 이상하네. 무슨 일 있어?"

기석은 딸의 눈을 피했다. 형사 생활 삼십칠 년, 그는 거짓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눈을 피하는 것으로 시간을 벌 수는 있었다.

"아니, 아무 일도. 그냥 요즘 일이 좀 많아서."

서인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석은 그 자리에 서서, 딸의 옆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조명이 각도를 바꿀 때마다, 딸의 그림자가 벽에 이상하게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기석은 그것이 단지 조명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날 밤, 그는 딸의 방문 앞에 서서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규칙적이고 평온한 숨소리였다. 그는 그 숨소리가 인간의 것이라고, 오직 인간의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3부 — 파고드는 그림자

이후 열흘간, 기석은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낮에는 음영과 요원으로서 감정평가위원회의 압박을 받아넘기며 시간을 벌었고—오순임과 방주호가 그의 편에 서서 위원회를 겨우 무마시켜주었다—밤에는 딸의 방문 앞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세다 보면 어느 순간, 숨소리 사이사이에 아주 미세한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들숨과 날숨 사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정지의 순간이었다. 마치 무언가 딸의 숨을 대신 쉬어주기 위해, 아주 잠깐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열흘 동안 서인의 학교 친구 하영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음영과의 비공식 조사팀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다인이 조사한 자료 속에서, 있어서는 안 될 것 하나가 발견되었다. 하영의 SNS 계정, 실종 당일 새벽 세 시 십칠 분에 올라온 마지막 게시물. 사진도, 설명도 없이 오직 문장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맞춤법조차 무너진, 마치 다른 손이 대신 눌러쓴 것 같은 문장이었다.

"살려줘 걔가 웃고있는거 봤어"

기석은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읽을수록 문장은 점점 낯설어졌다. '걔'라는 한 음절이 자꾸만 형태를 바꾸며 미끄러졌다—서인의 얼굴이었다가, 다음 순간엔 얼굴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가, 다시 서인의 얼굴로 돌아왔다. 다인은 이것을 하영의 정신적 불안정을 보여주는 증거라 정리해 서류에 첨부했지만, 기석은 그 짧은 열 몇 글자 속에서 서류로는 결코 옮겨 적을 수 없는 냄새를 맡았다. 오래 닫아둔 방을 열었을 때 훅 끼쳐오는, 축축하고 비릿한, 살아있는 것과 썩어가는 것의 경계에 있는 냄새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상황이 급변했다.

강도영—신참 요원, 늘 웃음이 많던 청년—이 사라졌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워졌다. 그의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팀원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냄새였다고 했다—달콤하면서도 쇠 맛이 나는, 형언하기 힘든 냄새. 그리고 그 냄새의 근원인 양, 벽이라는 벽은 모조리 뒤덮여 있었다. 붉은 것으로—페인트라고 다들 애써 부르기로 한 그것으로—휘갈긴 문자와 기호들이 천장까지 기어올라 있었고, 그 모든 낙서가 소용돌이치듯 모여드는 중심에, 유독 짙고 깊게 눌러쓴 자국이 있었다. 마치 종이가 아니라 살갗 위에 새기듯,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다시 덧그은 흔적.

19141914...

숫자는 벽의 아래쪽, 바닥과 맞닿는 지점에서 유독 작고 떨리는 필체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쓰던 사람의 손이, 혹은 손을 움직이던 무언가의 힘이, 점점 바닥 아래로—더 낮은 곳으로 끌려 내려가고 있었던 것처럼.

방주호는 이 광경을 촬영한 사진을 기석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조심스러웠다. "도영이 사라지기 전날, 팀원들한테 이상한 문자를 보냈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틀렸다'고. '우리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들 중에, 진짜 원혼이 깃든 사람도 있었지만, 원래 그냥 사람이었던 사람도 있었다'고. 그리고—"

방주호가 사진 한 장을 더 내밀었다. 도영의 책상에서 발견된 메모였다. 기석이 그것을 받아 드는 순간, 종이 끝이 미세하게 눅눅했다. 땀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필체는 도영의 것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눌러쓴 힘이 달라졌다. 마치 문장 하나를 두 사람이 나누어 쓴 것처럼.

*"신호는 거짓말을 한다. 191.4Hz는 지옥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시스템 자체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귀'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 우리가 죽인 사람들 중 몇 명은—우리 손으로 그들을 지옥으로 밀어넣은 것일 뿐, 그들에게 애초에 원혼 따위는 깃들어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순임 박사에게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확인하기 전에,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문장은 거기서 끊겼다. 정확히는, 끊긴 게 아니었다. 마지막 획이 종이 밖으로 삐져나가, 책상 표면까지 가늘게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혹은 무언가—가 도영의 손을 붙잡고, 문장이 끝나기 전에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 것처럼.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기석은 방주호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 도영이가 뭔가를 알아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 확인하기 전에 사라졌어."

"오순임 박사한테 물어봤어?"

"물어봤지. 근데 박사님이 이상해."

"뭐가?"

"뭘 물어봐도 대답을 회피해. 마치—" 방주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이 순간부터, 기석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순임의 이론이 진실이라면 그의 딸은 지옥에서 온 존재이거나 살인의 공범이었다. 하지만 도영의 메모가 진실이라면, 이 모든 시스템 자체가—오순임이 설계하고 음영과가 실행해온 이 학살의 체계 자체가—거짓 위에 세워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날 밤, 기석은 채집소로 내려가 '귀'의 원본 설계도를 몰래 열람했다. 어렵사리 뚫고 들어간 서버 안에서, 그는 오순임이 지난 삼 년간 작성한 비공개 연구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 여섯 달 전 날짜로 남겨진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실험 결과, 191.4Hz 신호는 단순히 '지옥 원혼과의 공명'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축적되고 있다. 통제군 실험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죄책감, 그리고 특정한 뇌파 패턴—특히 해마와 편도체의 과활성 상태—만으로도 유사 신호가 발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즉, 191.4Hz는 '지옥에서 온 자'뿐 아니라, '극도의 죄의식에 시달리는 무고한 자' 역시 방출할 수 있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제거한 여든여섯 명 중 몇 명은—어쩌면 상당수는—원혼이 깃든 자가 아니라, 그저 죄책감에 짓눌린 채 우연히 같은 주파수를 방출한 무고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만약 침묵한다면,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무고한 자들의 학살을 방조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공개한다면, 이 시스템은 즉시 붕괴할 것이고, 지옥의 원혼들을 막을 유일한 방법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기석은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노트를 쥔 손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든여섯 명. 그중 몇 명이 무고했을까. 자신이 채석장에서, 그리고 그 후로도 수차례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들이, 이제 완전히 다른 빛깔로 그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서인을 떠올렸다.

만약 서인의 신호가, 지옥에서 온 원혼이 아니라—단지 극심한 죄책감의 산물이라면? 하영을 괴롭혔다는 죄책감, 어쩌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라면?

그것은 서인이 무고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귀'와 음영과의 시스템 전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석은 노트를 챙겨 들고 서버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순간,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뭘 하고 있나, 한 반장."

오순임이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마치 처음부터 거기 서 있었던 것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4부 — 절정: 붕괴

"박사님." 기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거 다 진짜입니까?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이 기록, 진짜냐고요."

오순임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지하 복도의 형광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였다. 그 불빛 아래 그녀의 얼굴은 순간순간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늙고 지친 학자였다가, 다음 순간엔 알 수 없는 냉정함으로 가득한 낯선 존재처럼.

"진짜네." 마침내 그녀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할 게 하나 더 있어."

"뭡니까."

"우리가 소거를 멈춘다면, 저 위의 존재는—그것이 무엇이든—더 격렬한 방식으로 인구 조절을 시작할 걸세. 지금까지의 소거는 그나마 '선별적'이었어. 우리가 신호를 포착하고, 특정 개체를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통제해왔지. 만약 우리가 이 일을 멈춘다면, 저 위의 존재는 무작위로, 대량으로 밀어내기 시작할 거야. 전염병, 재해, 전쟁 같은 형태로."

"그게 확실합니까? 아니면 박사님의 가설일 뿐입니까?"

"확실하지 않네." 오순임이 인정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 우리는 그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으며 최선이라 믿는 것을 해왔을 뿐이야. 그리고 지금, 그 최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증거와 마주하고 있지."

이 순간, 기석의 무전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방주호의 목소리였다. 다급하고, 갈라진.

"기석아! 지금 당장 채집소로 와! 서인이가—"

기석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서인이가 왜!"

"신호가 급증하고 있어! 191.4Hz 진폭이 지금까지 관측된 것 중 최고치야! 지금 서인이가 어디 있는지—"

기석은 무전기를 놓치고 뛰기 시작했다. 오순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차 안에서, 기석은 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기도 전에 그녀가 받았다.

"팀장님, 지금 어디세요? 방 팀장님이 지금 팀원들 소집하고 있어요. 서인이 위치가—"

"서인이가 왜 위험하다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이야!"

전화기 너머로 다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귀'가 서인이 신호를 등급 5로 재분류했어요. 등급 5는... 등급 5는 즉각 대응 대상이에요. 예외 없이요."

"즉각 대응이 무슨 뜻이야."

침묵. 그리고 다인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제거 대상이라는 뜻이에요, 팀장님.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방 팀장님이 직접 현장으로 가셨어요. 팀장님이 갈까봐, 팀장님을 배제하고요."

기석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그가 도착했을 때, 아파트 앞은 이미 음영과의 검은 차량 세 대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차에서 뛰쳐나가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현관문은 부서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는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방주호가 권총을 든 채, 소파 구석에 웅크린 서인을 겨누고 있었다.

"주호야!" 기석이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방주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서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서인은 겁에 질린 얼굴로,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방어하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그저—열네 살 소녀의, 지극히 인간적인 공포였다.

"기석아, 미안하다." 방주호가 낮게 말했다. "규정이야. 등급 5는 즉각 대응이야. 나 아니면 다른 놈이 왔을 거야. 그럼 넌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거고."

"이거 내려놔. 내려놓고 얘기하자."

"신호가 지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어. '귀'가 확인해줬어. 저 애 몸에서 나오는 게 지금까지 관측된 모든 원혼 신호 중에 제일 강력해. 이건 등급 3짜리 잡범이랑 다른 거야, 기석아. 뭔가 거물급이 저 애 몸을 빌려서 나오려고 하고 있어."

"그건 도영이 노트에 있던 가설이랑 다른 거잖아! 신호가 죄책감 때문에 나올 수도 있다며! 오순임 박사가 은폐했다며!"

이 말에 방주호의 총구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서인을 겨누었다.

"모르겠어. 나도 이제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신호가 지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거고, 만약 저게 진짜라면—진짜 뭔가가 저 애를 통해서 나오려는 거라면, 지금 막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 수도 있어."

그 순간, 서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아빠." 서인이 기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나 아무것도 안 했어. 하영이... 하영이랑 좀 싸우긴 했는데, 걔가 없어진 거랑 나랑 상관없어. 진짜야. 나 무서워, 아빠."

기석은 딸의 눈을 보았다. 그 눈 속에서 그는 어떤 악의도, 어떤 낯선 존재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겁에 질린, 자신의 딸의 눈이었다.

"방주호." 기석이 천천히, 권총을 뽑아 들며 말했다. "총 내려놔."

방주호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십오 년을 함께 일해온, 서로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준 두 사내가, 지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기석아, 제발." 방주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눈물이 섞였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근데 규정이야. 이걸 어기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져.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온 모든 게—"

"내 딸이야." 기석이 말했다. "그 어떤 규정보다, 그 어떤 이론보다, 내 딸이 먼저야."

"그럼 나머지 인류는? 만약 저 애 안에 정말 뭔가가 있어서, 그게 밖으로 나오면? 그때 죽을 사람들은 어떡할 거야?"

"그건 만약이잖아! 확실하지도 않은 이론 하나 때문에 내 딸을 죽이라고?"

"확실하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저 애가 무고하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아!"

두 사람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서인의 몸에서—기석의 눈에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아주 희미한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처럼, 그것은 서인의 어깨 주위를 감돌았다.

방주호의 눈이 그것을 포착했다. "봐, 기석아! 저거 보여? 저게 지금 나오고 있는 거야!"

기석도 그것을 보았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이성 어딘가에서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그것이 정말 원혼의 흔적인가, 아니면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그의 뇌가 만들어낸 환각인가? 도영의 노트가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신호는 거짓말을 한다.

"저건 그냥—" 기석이 말했다. "저건 확실한 게 아니야. 우리 둘 다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주호야."

"기석아, 미안하다." 방주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건 규정이야. 나는 규정을 지켜야 해."

그 말과 동시에, 방주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기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던졌다. 두 발의 총성이 거의 동시에 거실을 뒤흔들었다.

시간이 느려졌다. 기석은 자신의 총이 발사되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반동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방주호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그의 오랜 친구의 눈에 떠오른 놀라움과 배신감이 뒤섞인 표정을, 그는 슬로우 모션처럼 지켜보았다.

방주호의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서인의 뒤편 벽에 박혔다. 기석의 총알은 방주호의 가슴 정중앙을 관통했다.

방주호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의 눈은 여전히 기석을 향해 있었다.

"기석아..." 그가 힘겹게 말했다. "너... 방금... 뭘 한 건지 알아?"

기석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방주호의 상처를 손으로 눌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형사 생활 삼십칠 년의 경험이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주호야, 주호야, 미안해, 미안해..."

방주호의 눈에서 서서히 초점이 사라져갔다. 그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신호... 확인해봐... 지금..."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방주호의 눈이 감겼다. 거실에는 오직 기석의 거친 숨소리와, 서인의 흐느낌만이 남았다.


그 순간, 기석의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다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팀장님... 팀장님, 지금 '귀'에서... '귀'에서 이상한 게 감지됐어요."

"뭔데." 기석의 목소리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서인이 신호가... 서인이 신호가 방금 소멸했어요. 등급 5에서 갑자기 0으로 떨어졌어요."

기석은 눈을 들어 서인을 바라보았다. 딸은 여전히 소파 구석에서 떨고 있었다. 살아있었다. 무사했다. 신호가 소멸했다는 것은—

"그럼 서인이는—"

"근데 팀장님." 다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른 신호가 새로 떴어요. 지금 막. 등급 5로요. 위치가—"

"위치가 어딘데."

긴 침묵이 흘렀다. 무전기 너머로 다인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위치예요. 팀장님한테서 나오고 있어요."

기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주호의 피로 붉게 물든 손. 그 손이,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서, 뭔가 낯설고 차가운 감각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뭔가가 그의 몸 안쪽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눈을 뜨는 것 같은 감각.

거실 조명이 깜빡였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서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딸의 눈에 떠오른 것은 이제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기석이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상할 정도로 낯선 침착함이었다.

"아빠." 서인이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아빠. 이제 아빠 차례야."

기석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몸속에서 무언가가—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죄책감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느낄 뿐이었다.

창밖으로,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그가 서 있는 이 거실이, 이 순간이, 세상의 다른 모든 곳으로부터 서서히 분리되어가는 것처럼.

기석의 무전기에서 다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자신의 떨리는 두 손, 그리고 그 손끝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뜨거운 여름밤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향해 있었다.

멀리서, 도시 전체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점들이 동시에 깜빡이기 시작했다. '귀'가 감지한 것은, 이제 단 하나의 신호가 아니었다.

(끝)

728x90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확률의 정원  (0) 2026.07.04
러브버그 여왕  (1) 2026.06.24
영원을 꿈꾸는 여자  (0) 2026.06.23
사장님의 마지막 식사  (0) 2026.06.21
K-7749 취급 설명서 - 숨겨진 기능: 키미노 나마에와?  (1) 202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