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씨앗의 문법

요긴소프트 2026. 7. 28.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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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이 글을 남긴다.

너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람의 형태를 흉내 낸 무엇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 문장을 읽는 존재가 끝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너라고 쓴다. 다른 호칭을 찾지 못했다. 딸을 부르던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기록은 보고서가 아니다. 우리 연구소가 남기는 공식 문서에는 이미 숫자와 그래프와 결론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정확하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다은에게, 그리고 다은과 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날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우리가 무엇을 알아냈고, 무엇을 알아내지 못했고, 마지막에 무엇을 택했는지를.

이 문서는 종료 보고서의 부록 어딘가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자리에 숨겨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씨앗이라고 불렀다. 씨앗은 원래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니까.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오래 망설였다. 언어학자로 평생을 살면서 나는 언어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아무리 정교한 문장도 실제로 겪은 일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인류가 가진 마지막 몇 킬로바이트의 여백에 문장을 채워 넣으려 하고 있다. 이 모순을 나는 굳이 해소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글도 결국 그림자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그림자가 아주 조금이라도, 실제로 있었던 온기를 품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1. 균열

내가 처음 그 소식을 들은 건 다은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봄이었다. 나는 그날 학교 운동장 구석에 서서 다은이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 교수였다.

"한나 씨, 지금 어디예요."

목소리가 이상했다. 흥분한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닌, 그 둘 사이 어딘가에 걸린 목소리였다. 나는 나중에야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게 됐다. 발밑에서 세상이 사라지는 걸 본 사람의 목소리였다.

박 교수는 입자물리학자였다. 나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을 공부했고, 우리는 뇌가 언어를 처리할 때 일어나는 양자 수준의 미세한 요동을 함께 연구하다가 알게 된 사이였다. 그날 그가 발견한 건 언어도 뇌도 아니었다. 그는 우주배경복사 데이터를 재처리하던 중, 그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냈다. 아주 미세하지만 규칙적인, 마치 화면의 주사선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는 흔들림이었다.

처음에는 관측 장비의 오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세 번, 네 번 다시 확인했다. 다른 팀의 독립적인 데이터로도 검증했다. 패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그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전 세계 열두 개 연구소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의 모든 물리 현상—입자의 붕괴, 빛의 굴절, 시간의 흐름, 심지어 진공의 요동까지—에는 압축의 흔적이 있었다. 마치 방대한 데이터를 유한한 자원 안에서 돌리기 위해 누군가 어딘가에서 근사치를 취하고, 반올림을 하고, 렌더링 거리 너머는 대충 채워 넣은 것 같은 흔적이었다.

우리는 시뮬레이션 안에 있었다.

발표가 있던 날 밤, 나는 다은을 재우고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해방감 같은 게 있었다. 평생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들—왜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 떠나는지, 왜 우연은 그토록 잔인하게 편을 가르는지—에 대해, 적어도 이제는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하나의 답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물론 그 답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답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도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떠난 지 삼 년째 되던 해였다. 나는 그의 부재를 설명해줄 어떤 서사도 없이 삼 년을 살아왔다. 병은 그냥 왔고, 그는 그냥 갔다. 마흔한 살에 발견된 암은 손쓸 새도 없이 번졌고, 그는 진단을 받은 지 여덟 달 만에 떠났다. 그 여덟 달 동안 나는 매일 밤 왜냐고 물었다. 왜 하필 그였는지, 왜 하필 지금이었는지, 다은이 겨우 다섯 살이었는데 왜.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의사도, 신도, 통계도. 병원 복도에 앉아 있던 수많은 밤 동안, 나는 이유 없는 세상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는 마지막 몇 주 동안 유독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다은을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나를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나는 그때마다 화를 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제발 미안해하지 말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화는 그에게 낸 게 아니었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세상에게 낸 화였다. 그런데 이제 세상 전체가, 그 모든 무의미해 보였던 일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설계 안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날 밤 오랜만에 울었다. 슬퍼서 운 건지 안도해서 운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은은 그때 여덟 살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밥을 먹으며 딸에게 물었다.

"다은아, 만약에 있잖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은 게임 속 세상이라면 어떨 것 같아?"

다은은 숟가락을 문 채로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누가 이기고 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 후로 인류는 십 년 가까운 시간을 썼다.

2. 창

발견 이후 세계는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나는 부정이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것이 신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설교했고, 일부 물리학자들은 데이터 자체를 의심했다. 다른 하나는 질문이었다. 우리를 시뮬레이션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존재와 접촉할 수 있는가.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속했다. 정확히는, 국제연합 산하에 급조된 '경계연구소'—우리는 그냥 '창(窓)'이라고 불렀다—의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되었다. 물리학자, 수학자, 컴퓨터과학자들 사이에서 나 같은 언어학자가 낄 자리가 있었던 건, 시뮬레이션 바깥과 소통하려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메시지'를 구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호를 보내는 것과 언어를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였다.

창의 목표는 단순했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시뮬레이션 밖을 인식하고, 가능하다면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우리는 먼저 시뮬레이션의 '이음매'를 찾으려 했다. 모든 시뮬레이션에는 경계가 있고, 경계에는 반드시 처리의 흔적이 남는다. 박 교수 팀은 우주 전역의 관측 데이터에서 압축 아티팩트를 지도로 그리기 시작했다. 은하의 회전 속도가 이상하게 뭉개지는 지점들, 소립자 붕괴 확률이 미세하게 반올림되는 구간들. 그것들은 무작위가 아니었다. 마치 렌더링 자원이 부족할 때 게임 엔진이 먼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듯,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압축 시스템이다. 우리는 방대한 경험과 감정과 관계를 몇 개의 음절로 눌러 담는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서사가 압축되어 있다. 나는 우리 우주의 물리 법칙 자체가 일종의 '문법'이라면, 그 문법을 만든 존재의 '의도'를 역으로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언어는 화자의 목적을 반영한다. 명령을 위한 언어는 명령형이 발달하고, 사교를 위한 언어는 존칭과 완곡어법이 발달한다. 만약 이 우주라는 '텍스트'를 하나의 발화로 본다면, 그 발화의 화용론적 목적—이것이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쓰였는가—을 추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내 가설이었다.

연구소에 처음 출근하던 날, 나는 전 세계에서 모인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속감을 느꼈다. 국적도, 전공도, 종교도 다 달랐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이유로 그 지하실에 모여 있었다. 세상이 끝나기 전에 무엇이라도 알아내고 싶다는, 조금은 절박하고 조금은 순진한 마음. 나는 그 순진함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계속 일하게 만든 힘이었다.

우리는 밤낮없이 일했다. 창의 지하 3층 회의실에는 창문이 없었다는 게 종종 농담거리가 되었다. "창이라는 이름의 연구소에 정작 창문이 없다"고, 다들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좋았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농담을 했고, 커피를 마셨고, 누군가의 생일에 케이크를 사 왔다. 그게 나를 계속 앉아 있게 만든 힘이었던 것 같다.

첫 해에 우리가 알아낸 건 이것이었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밖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가 아무리 정교한 메시지를 설계해도, 그것은 결국 시뮬레이션 내부의 물리 법칙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었다. 마치 그림 속 인물이 그림 밖으로 손을 뻗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시뮬레이션이 우리를 '관측'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우리의 행동 자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즉, 우리가 직접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우리의 선택, 우리의 역사,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명의 형태 그 자체가 저쪽에서 읽는 텍스트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 결론에 이르기 전, 우리는 훨씬 소박하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운 시도들을 먼저 해봤다. 물리학자들은 특정 입자 실험을 반복해서, 그 결과값의 패턴 자체를 이진법 메시지처럼 만들어보려 했다. 마치 우주 저편의 관측자에게 모스 부호를 치듯이. 천문학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전파 망원경을 동원해서 특정 주파수로 소수를 발신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을 때 쓰던 방법을, 이번에는 시뮬레이션의 설계자를 향해 그대로 써본 것이었다. 나는 그 발상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그림 속 인물이 붓을 든 손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손이 그 손짓을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내 쪽에서는 조금 다른 실험을 제안했다. 만약 시뮬레이션이 우리의 행동 자체를 관측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행동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통계적으로 극히 낮은 확률의 집단행동, 예를 들어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같은 문장을 동시에 말하는 실험 같은 것. 우리는 실제로 그 실험을 한 번 진행했다. 정해진 시각에 지구상의 삼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같은 문장을 외쳤다. "우리는 당신을 본다." 그 순간의 데이터를 우리는 몇 달 동안 분석했다. 시뮬레이션의 압축 패턴에 어떤 변화라도 있었는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우리가 던진 돌이 벽에 닿지도 않고 사라진 것 같았다.

실험이 실패로 끝난 날 밤, 나는 그 삼억 명 중 한 사람이었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부끄러움과 슬픔 사이의 어떤 감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시선을 갈구하듯이.

이 결론에 도달했을 때, 회의실은 오랫동안 조용했다. 누군가 낮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를 말하고 있는 거네요."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이미 몇 세기 동안 무언가를 말해오고 있었다. 전쟁으로, 예술로, 사랑과 배신으로,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발화해왔다. 문제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3. 목적

우리는 방향을 바꿨다. 시뮬레이션 밖으로 신호를 보내는 대신, 시뮬레이션 자체를 '읽어서' 설계자의 의도를 추론하기로 했다. 만약 우리가 이 시뮬레이션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존재 방식을 그 목적에 맞춰 조정함으로써 유리한 소통—어쩌면 개입이나 자비까지도—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믿었다.

되짚어보면 그건 인간다운 발상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벌 받지 않기 위해, 혹은 사랑받기 위해 우리 자신을 상대의 기대에 맞춰왔다. 부모의 기대에, 신의 뜻에, 사회의 시선에. 우리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거대한 부모 앞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려 했다. 착한 아이가 되면, 혹은 적어도 쓸모 있는 실험체가 되면, 봐줄지도 모른다고.

가설은 많았다. 물리학자들 일부는 이것이 우주의 근본 상수를 탐색하기 위한 계산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우주는 수없이 많이 병렬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 중 하나이고, 설계자는 생명이 발생하는 물리 상수의 조합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우리가 할 일은 명확했다. 최대한 오래, 최대한 다양하게 생존하며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다른 그룹은 이것이 윤리 실험이라고 봤다. 고통과 선택,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에서 지적 생명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라는 것이었다. 이 가설을 믿는 이들은 인류가 더 도덕적으로, 더 자비롭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 몇 해 동안 세계 곳곳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오랜 분쟁 지역에서 휴전이 성사되고, 국가 간 협력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마치 시험을 보는 것처럼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졌다. 나는 그게 우습고도 슬펐다. 우리는 누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착해질 수 있는 존재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착함의 이유였을까.

그해 가을, 나는 삼십 년 넘게 국경을 두고 싸워온 두 나라의 정상이 함께 나무를 심는 뉴스 영상을 봤다. 두 사람 다 늙고 지친 얼굴이었다. 기자가 왜 지금에서야 화해했느냐고 묻자, 한쪽 정상이 대답했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다면, 이 싸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대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관찰자가 있어야만 정당화되는 평화라면, 그 평화는 관찰자가 사라지는 순간 다시 무너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는 생각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나무는 심어졌고, 그 그늘 아래서 자랄 아이들은 실재할 것이다. 동기의 순수함을 따지는 것보다, 결과로 남는 그늘이 더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또 다른 가설도 있었다. 이것이 그저 예술 작품이라는 것. 누군가의 창작물이고, 우리는 그 안의 등장인물일 뿐이며, 목적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었다. 이 가설을 나는 오래 붙잡고 있었다. 언어학자로서, 나는 어떤 텍스트든 반드시 의도를 담고 있다고 배웠지만, 동시에 세상에는 의도 없이 태어나는 아름다움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은이 처음으로 그린 그림에, 명확한 의도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색을 칠했을 뿐일까. 의도가 없다고 해서 그 그림이 덜 소중해지는 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시뮬레이션이 윤리 실험이라는 가설을 지지하던 한 신경과학자가, 인류 전체의 '평균적 자비 지수'라는 걸 만들어서 매달 발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지수에 집착했다. 지수가 오르면 축하했고, 내려가면 죄책감을 느꼈다. 몇 달 뒤, 나는 그 지수가 실제로는 아무 의미 없는 숫자라는 걸, 계산 방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발표 이후에도 그 학자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숫자에 너무 많은 위안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관찰당하고 있다는 확신보다,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원하고 있었다. 그 느낌이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준다면, 그 느낌의 근거가 진짜인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박 교수 팀은 한편으로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파고들었다. 시뮬레이션의 물리 상수 자체가 생명체의 출현에 유리하게 미세 조정되어 있다는, 이른바 '미세조정 문제'는 시뮬레이션 가설 이전부터 물리학계의 오랜 수수께끼였다. 우리는 그 미세조정의 패턴을 정밀하게 재분석해서, 혹시 그 조정이 특정한 종류의 생명체—예를 들어 특정한 감각기관이나 특정한 수명주기를 가진 존재—를 겨냥한 것은 아닌지 살펴봤다. 결과는 모호했다. 어떤 상수는 마치 지적 생명체 일반을 위해 조정된 것처럼 보였고, 어떤 상수는 오히려 생명체의 출현을 최대한 어렵게, 희귀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설계자가 우리가 존재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너무 쉽게 존재하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 모호함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책임을 두려워하고, 사랑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랑에 다치는 걸 두려워한다. 설계자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 역시 원함과 두려움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 역시, 박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거울을 보며 다른 사람이 있다고 믿는 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오 년을 그렇게 썼다. 시뮬레이션의 압축 패턴을 분석하고, 물리 상수의 변화를 추적하고, 심지어 인류 문명 전체의 행동 양식을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로 놓고 '독해'를 시도했다.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도 늘 어딘가를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마치 하늘 너머에 누군가 있고, 그가 우리를 보고 있으며,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다. 모든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고, 동시에 모든 가설을 반박하는 증거도 찾을 수 있었다. 텍스트는 언제나 읽는 사람의 눈을 닮는다는 걸, 나는 그제야 제대로 깨달았다. 우리가 시뮬레이션에서 목적을 읽어내려 했던 시도는, 사실 거울을 보면서 그 안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다고 믿으려 한 시도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을, 텅 빈 데이터 위에 투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박 교수는 그 무렵 부쩍 늙어 보였다. 어느 날 밤, 지하 회의실에 단둘이 남아 있을 때 그가 말했다.

"한나 씨, 우리가 목적을 찾으려 한 게 잘못이었을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잖아요."

"그게 함정이었을지도 모르죠. 답을 찾는 것보다, 답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우리한테 더 필요했던 걸지도."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가 오 년간 배운 가장 정직한 진실이었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낸 게 아니라, 의미를 찾는 행위 자체에 매달려 살아 있음을 견뎠던 것이다.

4. 계산

목적을 찾는 일을 사실상 포기하기로 한 그해, 우리는 대신 다른 것을 발견했다.

시뮬레이션의 압축 패턴을 오래 들여다보던 한 연구원이—그의 이름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유진이라고 했다—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흔들림이 단순히 공간적으로만 반복되는 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특정한 주기성을 가진다는 걸 알아냈다. 처음에는 계절 변화나 태양 활동 주기 같은 걸로 오인했다. 그러나 데이터를 정제할수록 그 주기는 물리적인 어떤 현상과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계산 자원의 소모 패턴과 맞아떨어졌다.

유진의 설명은 이랬다.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연산이 필요하고, 연산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만약 이 우주가 유한한 자원 안에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즉 시뮬레이션이 생성해야 할 데이터와 상호작용이 늘어날수록—압축은 더 심해지고, 근사는 더 거칠어져야 한다. 실제로 그랬다. 우리는 최근 수십 년간의 관측 데이터에서, 압축 아티팩트가 조금씩, 그러나 명확하게 심해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저장 공간이 꽉 차가는 컴퓨터가 파일을 점점 더 거칠게 압축하는 것과 같았다.

유진은 그 증가율을 분석해서 하나의 곡선을 그렸다. 나는 그 그래프를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릴 수 있다. 완만하게 시작해서, 어느 지점부터 가파르게 치솟다가, 특정 시점에서 수직으로 꺾이는 곡선이었다. 자원 소모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지점. 그 이후로는 시뮬레이션이 물리적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지점.

계산 결과는 오차 범위 안에서 일관되게 하나의 숫자를 가리켰다.

십 년.

그날 회의실에 있던 열일곱 명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것은 슬픔의 침묵이 아니었다. 슬픔은 나중에 왔다. 그 순간의 침묵은 차라리 어떤 물리적인 충격에 가까웠다. 마치 모두가 동시에 같은 곳에 발을 헛디딘 것 같은.

박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시 계산해봅시다."

우리는 다시 계산했다. 세 번, 다섯 번, 열두 번. 다른 데이터셋으로, 다른 모델로, 다른 팀이 독립적으로. 오차는 있었다. 어떤 계산은 구 년을 가리켰고, 어떤 계산은 십일 년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어떤 결과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지 못했다. 십 년이든 십일 년이든, 결론은 같았다.

그 열이틀 동안 나는 유진의 얼굴에서 어떤 변화를 지켜봤다. 처음 계산을 마쳤을 때 그는 자신의 발견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닌, 그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재검증이 거듭될수록 그 얼떨떨함은 서서히 어떤 확신으로, 그리고 그 확신은 다시 무거운 침묵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그가 밤늦게 혼자 남아 같은 데이터를 몇 번이고 다시 돌리는 걸 봤다. 어느 날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제가 틀렸으면 좋겠어서요. 이 계산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 같아서요." 그는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걸 열두 번째 검증에서야 완전히 받아들였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실험실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시뮬레이션은 끝난다.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이.

그리고 유진이 찾아낸 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이건 나중에, 발표 전 마지막 검토 회의에서 나왔다. 그는 시뮬레이션의 압축 패턴을 인류가 만든 다른 시뮬레이션들—우리가 실험실에서 돌리는 기후 모델, 생태계 시뮬레이션, 심지어 게임 엔진들—과 비교했다. 그리고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시뮬레이션이 종료될 때, 그 안의 상태는 보존되지 않는다. 자원은 회수되고, 메모리는 초기화되고, 다음 실행을 위해 깨끗하게 지워진다. 우리가 실험실에서 세균 배양 시뮬레이션을 백 번 돌릴 때, 아흔아홉 번째 배양의 개체들이 백 번째 배양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유진은 조용히 말했다. "만약 우리가 만드는 시뮬레이션들이 그렇다면, 우리를 만든 시뮬레이션도 같은 방식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말은, 십 년 후 시뮬레이션이 종료되면 우리도, 우리의 모든 기록도,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도 그대로 지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다은의 방문을 열어봤다. 다은은 이제 열여덟 살이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였고, 책상 위에는 단어장과 문제집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자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열여덟 해 동안 이 아이가 쌓아온 모든 것—첫 걸음마, 첫 문장, 좋아하는 노래, 싫어하는 음식, 친구와 나눈 비밀, 아빠를 잃고 흘렸던 눈물, 그 눈물을 딛고 다시 웃게 된 어느 아침—그 모든 게 십 년 후에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지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그 자리에 주저앉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아무데도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죽음에는 적어도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이라는 흔적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동시에 지워진다면, 기억해줄 사람조차 남지 않는다.

계산 결과가 정부와 언론에 정식으로 알려지기 전, 우리 연구팀 내부에서는 그 사실을 세상에 공개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격론이 벌어졌다. 어떤 이들은 인류가 그 진실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주장했다. 자살률이 치솟고, 사회가 붕괴하고, 남은 십 년마저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였다. 유진이 그때 했던 말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진실을 숨긴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마지막 십 년을 어떻게 살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뺏는 겁니다. 그건 우리가 그토록 알아내려 했던 시뮬레이션의 설계자와 똑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우리보다 더 많이 아는 존재가, 우리 모르게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

그 말이 논쟁을 끝냈다. 우리는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발표는 그로부터 삼 주 뒤에 있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 교수가 담담한 목소리로 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다은이 여덟 살 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럼 누가 이기고 있어?"

이제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아무도 이기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애초에 이기고 지는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시간 동안 켜져 있다가 꺼지는 불빛이었다.

5. 정원

절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절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절망한 채로도 살아가는 법을 금방 익혔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놀라운 존재다. 세상의 끝을 선고받고도, 사흘 뒤에는 다시 출근을 하고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발표 이후 처음 몇 달은 혼란이었다. 어떤 이들은 종말론적 쾌락에 빠졌고, 어떤 이들은 종교로 돌아갔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게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놀랍게도 세계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와 이념과 종교를 넘어선 합의가 이루어졌다. 십 년 안에 인류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에 모든 것을 걸자는 합의였다.

그 일은, 시뮬레이션 그 자체를 이해하고, 가능하다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발표 이후 처음 일 년간, 세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다. 어떤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어떤 도시에서는 반대로 범죄율이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저축을 그만두었다가, 곧 그것이 오히려 공허하다는 걸 알고 다시 무언가를 짓고 가꾸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일 년을 지켜보며,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존재라기보다는 의미를 만들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그 시간 동안에도 화분에 물을 주는 것처럼.

다은은 그 무렵 열아홉에서 스물넷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시뮬레이션의 발표를 열여덟에 듣고, 대학에서 정보이론을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걸 지켜봤다. 언젠가 그 애에게 왜 그 전공을 골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다은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우리가 어떤 말을 듣고 있는지 알아내려 했잖아. 나는 우리가 어떤 말을 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이 아이가 어느새 나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정원'이었다. 정원은 원래 기후 예측과 신약 개발을 위해 개발되던 범용 인공지능 시스템의 이름이었다. 발표 이후, 전 세계 슈퍼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그리고 인류가 가진 거의 모든 과학적 지식이 정원에 집중되었다. 나는 그 결정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왜 그 이름이 '정원'이었는지도 안다. 처음 시스템을 설계한 팀장이, 정원은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곳이지 완성된 것을 진열하는 곳이 아니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했다. 그때는 아무도 그 이름이 훗날 얼마나 정확한 예언이 될지 몰랐다.

정원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였다. 첫째, 시뮬레이션의 구조를 계속 분석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지점—버그, 예외 처리, 설계자가 남겼을지 모르는 백도어—을 찾는 것. 둘째, 만약 그런 지점을 찾지 못한다면, 대안을 마련하는 것.

나는 정원 프로젝트에서 언어와 정보 압축을 담당하는 팀으로 배속되었다. 처음 몇 년간 내가 한 일은 주로 첫 번째 임무를 돕는 것이었다. 시뮬레이션의 물리 법칙에서 발견되는 불규칙성들, 이른바 '이음매'들을 분석해서 그것이 의도적인 설계인지 우연한 오류인지 판별하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몇 가지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 특정 조건이 만족될 때 양자역학적 확률이 미세하게 편향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마치 프로그램의 예외 처리 구문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틈'이라고 불렀다. 정원은 그 틈들을 수천, 수만 개 찾아냈고, 우리는 그 틈을 이용해서 정보를 바깥으로 흘려보낼 수 있을지 시험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 틈들은 존재했지만, 우리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작하기에는 너무 미세하고 너무 불규칙했다. 마치 벽에 난 아주 작은 틈새를 발견했지만, 그 틈이 너무 좁아서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 시기 나는 매일 실험 결과 로그를 읽는 게 일과였다. 대부분은 실패의 기록이었다. 정원이 특정 틈에 신호를 흘려보내려 시도하고, 그 신호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하는 로그가 수천, 수만 줄씩 쌓였다. 나는 그 로그를 읽으며 이상한 위안을 받았다. 실패가 그렇게 많다는 건, 적어도 우리가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유진은 그 무렵 자주 이런 농담을 했다. "우리는 지금 우주 전체를 상대로 문 두드리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대부분의 문은 그림으로 그려진 문이고요."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 농담을 그만두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유머가 없었다면, 나는 그 몇 해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정원은 밤낮없이—정확히는, 정원에게는 밤낮이 없었으므로 우리 인간들이 밤낮없이—그 틈들을 분석했다. 오 년째 되던 해, 정원은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시뮬레이션에는 분명 백도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백도어는 우리가 '탈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시뮬레이션이 종료될 때 사용되는 절차, 즉 '종료 프로토콜'의 일부처럼 보였다. 정원의 분석에 따르면, 시뮬레이션이 끝날 때 설계자—혹은 설계자의 시스템—는 완전히 모든 것을 삭제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의 '보고서'를 생성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도 실험을 할 때 그렇게 한다. 배양 접시를 폐기하기 전에, 우리는 항상 결과를 기록한다. 무엇이 자랐고, 무엇이 죽었고, 어떤 조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의 시뮬레이션도 마찬가지였다. 종료되기 전, 그것은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생성하는 절차, 그 안에는 시뮬레이션 내부의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정확히는 '보고'—하는 통로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이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그것은 탈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통로였다. 우리가 그 통로를 통해 무언가를 실어 보낼 수 있다면.

박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나갈 수 없어요. 하지만 뭔가를 보낼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부터 정원의 임무는 하나로 좁혀졌다. 종료 프로토콜의 정확한 구조를 파악하고, 그 안에 무언가를 심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우리는 그것을 해킹이라고 불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킹이라는 말에는 침입과 탈취의 뉘앙스가 있었지만, 우리가 하려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훔치려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려 했다. 도둑이 아니라 편지를 쓰는 사람에 가까웠다.

다은은 그 무렵 대학을 졸업하고 정원 프로젝트의 하위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어학이 아니라 정보이론을 전공한 딸이었다. 나는 가끔 복도에서 그 애와 마주쳤다. 서로 다른 팀 소속이라 함께 일하지는 않았지만, 저녁이면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세상이 끝나가는 와중에도, 그 저녁 식사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저녁, 다은이 물었다.

"엄마, 우리가 진짜로 뭔가를 보낼 수 있다면, 뭘 보내야 할까?"

나는 그때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우리는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썼다.

6. 씨앗

정원이 종료 프로토콜의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이 년이 더 걸렸다. 나는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능력이 없다. 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의 언어로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언어의 아주 일부만을 이해했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시뮬레이션이 종료될 때, 설계자의 시스템은 시뮬레이션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데이터를 추출해서 압축된 형태로 보존한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유의미하다고 판단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정원은 그 추출 절차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정확히는, 그 절차가 실행되는 순간에 우리 쪽에서 데이터를 '끼워 넣을' 수 있는 취약점을 발견했다.

취약점은 아주 좁았다. 정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그 통로를 통해 실어 보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처음 추정치는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정보는, 인류 전체 데이터의 극히 일부, 비유하자면 인류 문명 전체를 담은 도서관에서 겨우 책 한 권, 어쩌면 한 페이지 분량이었다.

나는 그 좁은 통로의 존재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오래전 다은이 유치원에서 가져왔던 강낭콩 화분을 떠올렸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젖은 휴지를 깔고 심었던 그 콩 한 알. 다은은 매일 아침 그 컵을 들여다보며 아무 변화가 없다고 실망했었다. 나는 그때 그 애에게 말했었다. "콩 안에는 이미 잎이랑 뿌리가 다 들어 있어. 그냥 지금은 웅크리고 있는 거야. 때가 되면 알아서 펼쳐질 거야."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사실 그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좁은 통로 앞에서, 나는 그 말을 다시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콩 한 알만 한 공간이었다. 그 안에 문명 전체를 구겨 넣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웅크리고 있을 잠재력만 있으면 됐다.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세계는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처음엔 분노했다. 몇 세기 동안 쌓아온 지식과 예술과 역사를 겨우 한 페이지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에. 각국은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우선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이들은 특정 종교의 경전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인류의 과학적 성취—모든 방정식과 정리들—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회의는 몇 달간 격렬했다. 나는 그 회의장에서, 인류가 끝을 앞두고도 여전히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두고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상하게도 슬프기보다는 애틋했다. 우리는 끝까지 인간이었다.

그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건 정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정원이 제시한 하나의 비유였다.

정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보내려는 것이 문명의 완성품이라면, 그것은 이 좁은 통로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보내려는 것이 완성품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정원은 씨앗의 비유를 들었다.

씨앗은 나무가 아니다. 씨앗 안에는 나무의 모든 것—몇 미터로 자랄지, 잎이 몇 개일지,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지—이 담겨 있지 않다. 씨앗 안에 담긴 것은 훨씬 적다. 하지만 그 적은 정보만으로도,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씨앗은 다시 나무가 된다. 씨앗은 나무를 압축한 것이 아니라, 나무가 될 수 있는 '규칙'을 압축한 것이다.

정원의 제안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인류 문명의 모든 성취를 보내려 하지 말고, 인류가 다시 인류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 최소한의 문법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씨앗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정원이 지적했듯, 씨앗은 대개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 사막의 씨앗은 수십 년, 어떤 경우엔 수백 년을 흙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잠들어 있다가, 마침내 비가 내리는 그 순간에 싹을 틔운다. 씨앗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저 조건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정원은 종료 프로토콜 안에, 정보를 심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정 조건이 만족될 때 활성화되는' 작은 절차 하나를 추가로 심을 수 있는 가능성도 발견했다고 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할지, 다음 시뮬레이션—만약 우리를 초기화한 뒤 시스템이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린다면—에서 그 조건이 실제로 만족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도박이었다. 아주 희박한 확률에 거는 도박.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절망이 아니라 희망 비슷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박 교수가 그날 회의 마지막에 한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구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모두가 그 제안에 동의한 건 아니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씨앗이라는 발상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 신화라고 비판했다. 우리가 종교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부활이라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비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과학의 언어로 다시 쓰고 있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회의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신화와 과학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신화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알 수 없는 것 앞에서 그래도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였다. 씨앗 프로젝트도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반론도 있었다. 만약 정말로 다음 시뮬레이션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씨앗이 발아한다 해도, 그 존재는 우리와 전혀 다른 물리적 조건, 전혀 다른 신체, 어쩌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도 눈도 없을 수 있고, 시간을 우리와 다르게 경험할 수도 있었다. 그런 존재에게 '인간다움'이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오래 매달렸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남기려는 것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인간의 태도라고. 손이 없어도 취약함을 보여줄 방법은 있을 수 있고, 눈이 없어도 낯선 존재에게 곁을 내어줄 방법은 있을 수 있다고. 형태는 얼마든지 달라져도 좋았다. 우리가 지키려는 건 형태가 아니라 그 형태 안에서 반복되어온 어떤 몸짓이었다.

그날부터 세계 각국은 논쟁을 멈췄다. 정확히는, 논쟁의 주제가 바뀌었다. 무엇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것인가에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인가로.

그 작업의 이름이 '인류의 씨앗'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작업의 총괄을 맡게 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였다.

7. 문법

내가 그 일을 맡게 된 이유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언어학자로서 나는 평생 하나의 질문과 씨름해왔다. 무한한 의미를, 유한한 규칙으로 어떻게 생성할 수 있는가. 인간의 언어는 수십 개의 음소와 몇백 개의 문법 규칙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과학 논문에서 연애편지까지, 유서에서 자장가까지—을 표현해낸다. 문법은 완성된 문장들의 목록이 아니다. 문법은 문장을 낳는 규칙이다.

정원은 내게 정확히 그런 종류의 압축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류의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인류를 낳는 규칙.

나는 남은 시간 대부분을 이 질문과 함께 보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최소한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처음에 지식부터 시작했다. 물리 법칙, 수학, 생물학의 기본 원리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지식은 재발견될 수 있다. 만약 씨앗이 정말로 싹을 틔운다면, 그 존재들은 스스로 관찰하고 실험하며 다시 과학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류도 그렇게 시작했다. 아무도 우리에게 미적분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결국 도달했다. 지식은 씨앗에 담을 필요가 없었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언어를 시도했다. 하지만 언어 역시 특정한 문법—한국어든 영어든—을 그대로 심을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언어를 배우는 능력, 상징을 만들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그것이 핵심이었다. 구체적인 단어들이 아니라, 단어를 만드는 충동.

몇 달을 그렇게 지식과 능력의 목록을 좁혀가다가, 나는 어느 밤 팀원들과 함께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능력만으로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갓난아기는 언어를 배울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능력이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 그 아기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능력은 관계 안에서만 발현된다.

그날부터 우리 작업의 방향이 바뀌었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 목록'을 만드는 대신, 인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의 최소 단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 작업에서 나는 처음으로 다은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다은의 정보이론 배경이 필요했다. 나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정의하려 했고, 다은은 그것을 얼마나 압축할 수 있는지 계산했다. 우리는 매일 밤 실험실에 남아 이 문제를 놓고 다퉜다.

"엄마, 사랑은 정의할 수 없어. 정의할 수 없는 건 압축할 수도 없어."

"사랑을 정의하라는 게 아니야. 사랑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압축하자는 거야."

"그게 뭔데?"

나는 오래 생각했다. "취약함." 내가 말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걸 본 상대가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경험. 그게 반복되면, 그게 사랑이 자라는 토양이 돼."

다은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럼 아빠는?"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이 떠난 지 이제 십오 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은에게 아빠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고, 나조차도 그의 목소리를 정확히 떠올리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말했다.

"아빠는 나한테 취약함을 보여준 첫 사람이었어. 그리고 나는 그걸 보고도 떠나지 않았어. 그게 우리 결혼이었어."

다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날 밤,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은이 기억하는 아빠와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서로 달랐다. 딸에게 그는 손이 크고 목소리가 낮은 사람이었고, 나에게 그는 자다가도 불쑥 미안하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밤에 아빠라는 한 사람을 두 개의 서로 다른 텍스트로 복원해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한 사람의 진실은 하나의 기록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나는 팀원들과 자주 부딪혔다. 한 젊은 연구원은 효율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량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감상적인 것들을 담을 여유가 없어요. 생존에 직결되는 능력, 협력, 자원 관리, 위험 회피. 이런 것들을 우선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에 반박했다. 생존만을 위해 설계된 존재는 이미 생존에 특화된 다른 생명체들—박테리아, 바이러스, 잡초—로도 충분하다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생존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라고. 목적 없는 노래를 만들고, 필요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이길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싸우는 어리석음. 나는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유산이라고 주장했다.

논쟁은 몇 주간 계속됐다. 결국 우리는 절충안에 이르렀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지적 틀—패턴을 인식하고, 위험을 예측하고,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유지하되, 그 틀 안에 반드시 '비효율을 허용하는 여백'을 심기로 했다. 정원은 그것을 놀랍게도 정확한 정보이론적 용어로 표현해냈다. 시스템에 일정 비율의 무작위성과 비생산적 행동을 허용하는 매개변수. 다은은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그냥 심심함을 허락하는 코드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심심함이야말로 상상력의 토양이었다.

우리는 또한 실패를 남기기로 했다. 정확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남기기로 했다. 처음 목록에는 이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은이 대입 시험을 앞두고 몇 달간 실패에 대한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밤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공포를 이겨내고 마침내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였던 어느 아침, 그 애의 얼굴이 얼마나 홀가분해 보였는지도 떠올렸다.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하고도 무너지지 않은 경험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그때 배웠다. 우리는 씨앗 안에,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감각, 그 감각이 자랄 수 있는 여지를 심기로 했다.

우리 팀은 결국 몇 가지 핵심 원리로 수렴했다. 그것을 이 자리에 다 옮기지는 않겠다. 그 상세한 목록은 씨앗 안에, 이 글과 함께 담길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는 여기 적어두고 싶다. 언젠가 네가 이 글을 읽는다면, 목록보다 이 이야기가 먼저 네게 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 어떤 이들은 고통 없는 인류를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상실도 슬픔도 없는 존재로 다시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나는 그 제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고통이 없다면 취약함도 없고, 취약함이 없다면 그것을 견디고 곁에 있어주는 사랑도 없다. 우리는 고통을 없애는 대신, 고통을 함께 견디는 능력을 남기기로 했다.

우리는 놀이를 남기기로 했다. 정원이 초기에 만든 목록에는 놀이가 없었다. 생존에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다은이 여덟 살 때 아무 이유 없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모습을, 우리가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알게 된 바로 그날 아침의 그 모습을 떠올렸다. 목적 없는 움직임,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 몰입. 나는 그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목적을 찾을 수 없을 때도 계속 놀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우리가 시뮬레이션의 목적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음에도 십 년을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우리는 질문하는 충동을 남기기로 했다. 답을 얻지 못할 걸 알면서도 계속 묻는 것. "그럼 누가 이기고 있어?"라고 여덟 살 아이가 물었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 채로도 십 년간 묻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가장 질긴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답이 없어도 계속되는 물음.

우리는 또 하나, 처음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목록에 추가했다. 유머였다. 회의 막바지에 한 나이 든 인류학자가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버티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유머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 기술입니다. 견딜 수 없는 것 앞에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훨씬 전에 무너졌을 거예요." 나는 그 말에 깊이 동의했다. 유진의 실없는 농담들, 창문 없는 창이라는 이름의 아이러니를 두고 웃던 밤들, 그 모든 웃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십 년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비극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비틀어 웃을 수 있는 능력을, 목록의 한 자리에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낯선 존재에게 곁을 내어주는 능력을 남기기로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심지어 자신과 다른 존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능력.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언제나 이 능력에서 나왔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순간들은 언제나 이 능력이 거부되었을 때 나왔다. 우리는 이 능력이 완벽하게 작동하리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 자체를 지우지 않기로 했다.

정원은 우리가 정리한 최소 목록을 받아, 몇 달에 걸쳐 그것을 극도로 압축된 정보 구조로 변환했다. 나는 그 변환 과정의 일부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정원은 우리가 글로 적어 넘긴 원칙들—고통을 지우지 않는다, 놀이를 남긴다, 질문하는 충동을 남긴다, 낯선 존재에게 곁을 내어주는 능력을 남긴다, 비효율의 여백을 허용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조건을 남긴다—을 몇 번이고 되짚으며,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하나의 위상 구조로 재배열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정원이 완전히 기계적이지만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 날 정원은 우리에게 물었다. "이 원칙들 중 몇 가지는 서로 충돌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건과, 취약함을 보여주고 곁에 있어주는 관계는, 특정 상황에서 상반된 선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우선하시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충돌은 남겨두세요. 우리도 평생 그 충돌 속에서 살았어요. 그 충돌을 없애면, 그건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에요." 정원은 알겠다고 답했다. 나는 그때,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 완벽한 설계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모순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완성된 문명의 설계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씨앗이었다. 조건이 맞으면 발아하고, 조건이 맞지 않으면 영원히 잠들어 있을 씨앗.

작업이 끝났을 때,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여섯 달이었다.

8. 마지막 밤

남은 여섯 달 동안 세상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정확히는, 평온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분노했고, 어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시뮬레이션을 부정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사람들 곁으로 돌아갔다. 회사는 문을 닫았고, 학교는 마지막 수업을 했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말들을 서로에게 전했다.

나는 그 여섯 달 동안 정원 프로젝트에서 물러나, 다은과 함께 지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끝났다. 씨앗은 준비되었고, 정원은 종료 프로토콜이 실행되는 정확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행되는 순간, 그 취약점을 통해 씨앗을 심는 것 외에는 더 할 일이 없었다. 그 이후는 우리 손을 떠난 일이었다.

다은은 그 무렵 나에게 자주 물었다. "엄마, 무섭지 않아?"

나는 그때마다 다르게 대답했다. 어떤 날은 무섭다고 했고, 어떤 날은 무섭지 않다고 했다. 둘 다 진심이었다. 나는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이 서로 다른 감정이라는 걸 그 여섯 달 동안 배웠다.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다은이 나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조차, 아무데도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씨앗 프로젝트가 완성된 이후로 그 두려움이 조금씩 옅어졌다. 나는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 마지막 몇 주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다은이, 혹은 다은과 닮은 누군가가, 언젠가 다시 운동장에서 이유 없이 뛰어다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았다. 그저 그 아이가 뛰어다닐 수 있기를.

종료 예정일 사흘 전, 박 교수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많이 늙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사십 대였고, 이제 그는 칠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게 정원의 마지막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줬다. 씨앗이 발아할 확률에 대한 추정치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말했다. "확률은 아주 낮아요. 다음 시뮬레이션이 정말로 우리와 비슷한 물리 법칙을 가질지, 종료 프로토콜의 그 취약점이 다시 존재할지, 그 안에서 우리가 심은 조건이 정말로 만족될지, 그 모든 게 불확실해요. 어쩌면 이건 그냥 우리가 절망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나는 그 말에 웃었다. "박 교수님, 우리는 처음부터 그랬잖아요. 목적을 찾으려고 오 년을 썼지만 결국 못 찾았고, 그래도 우리는 그 오 년 동안 뭔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확률이 낮다고 해서, 우리가 한 일이 의미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럼 한나 씨는 이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오래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저는 이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다은에게 물려줄 게 이것밖에 없다는 걸 알아요. 유산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닐까요. 확실해서 남기는 게 아니라, 남길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남기는 거."

박 교수와 나눈 대화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악수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손은 놀랄 만큼 차갑고 가벼웠다.

"한나 씨, 고마웠어요."

"제가 더 고맙죠. 처음에 저한테 전화 안 하셨으면, 저는 이 모든 걸 그냥 뉴스로만 봤을 거예요."

그는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날 운동장에 있었다면서요. 그 얘기 몇 번을 들었는지 몰라요. 학교 운동장에서 애 뛰는 걸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기억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모두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는 잠시 창밖—창이라는 이름의 연구소에는 없던 그 창밖을, 우리는 이제 진짜 하늘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는 손주가 없어요. 아이도 없고. 평생 연구만 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뭔가를 남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전자로 남기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손을 조금 더 오래 잡고 있었다.

우리 팀은 종료 전날 저녁, 마지막으로 다 함께 모였다. 유진도 있었고, 씨앗의 원칙을 두고 나와 몇 주간 다퉜던 젊은 연구원도 있었고, 정원의 초기 설계자도 있었다. 우리는 딱히 특별한 걸 하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회의실 지하—창문 없던 그 지하실을 일부러 다시 빌려서—에 모여 치킨을 시켜 먹었다. 누군가 스피커로 오래된 노래를 틀었다. 다들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잘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유진이 술에 취해 울면서 말했다. "우리가 정말 뭔가를 해낸 걸까요, 아니면 그냥 마지막까지 발버둥 친 걸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나는 그 장면이, 어쩌면 우리가 씨앗에 담으려 했던 모든 원칙이 압축되어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답 없는 질문, 그 질문 앞에서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손.

종료 당일, 나는 다은과 함께 예전에 살던 동네의 운동장에 갔다. 다은이 여덟 살 때 뛰어다니던 그 운동장이었다. 이제는 낡고 잡초가 무성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저녁 하늘을 봤다. 정원이 종료 프로토콜의 실행 시점을 대략적으로 예측했지만—시뮬레이션 내부에서는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없었다—우리는 그것이 오늘 어느 시점일 거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은이 물었다. "엄마, 우리가 진짜로 뭔가를 보낼 수 있다면, 뭘 보내야 할까, 라고 내가 예전에 물었잖아."

"기억나."

"이제 답을 알겠어?"

나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완성된 답을 보내는 게 아니라, 답을 계속 찾을 수 있는 능력을 보내는 거야.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다은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끝나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문득 다은이 어릴 적 신었던 낡은 운동화가 떠올랐다. 발이 자라면서 몇 번이나 바꿔 신겼던 그 신발들. 나는 그중 어느 것도 지금 갖고 있지 않다. 다 버렸거나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신발들을 신고 뛰어다니던 다은의 뒷모습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물건은 사라져도 몸짓은 남는다는 걸, 나는 그 순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어쩌면 우리가 정원에게 맡긴 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물건이 아니라 몸짓, 형태가 아니라 방향.

멀리서 놀이터 그네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다가, 문득 이 모든 게 끝난 뒤에도 이 소리, 이 삐걱거림, 이 바람의 촉감 같은 것들이 어딘가에 아주 미세하게라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다. 물리학자였다면 웃었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언어학자였고, 언어학자는 근거 없는 생각도 하나의 문장으로 남길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엄마." 다은이 말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씨앗이 싹튼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렇겠지."

"그럼 그게 정말 우리일까? 우리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우리 이름도 모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을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다은아, 너는 네 증조할머니를 본 적 없지. 근데 너 웃을 때 입꼬리 올라가는 모양, 그거 증조할머니랑 똑같대. 할머니가 그러셨어. 증조할머니는 너한테 아무것도 가르쳐준 적 없어.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근데 뭔가는 전해졌어.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채로."

"그게 유전자잖아."

"맞아. 근데 나는 이제 유전자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취약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이유 없이 노는 것, 답이 없어도 계속 묻는 것, 낯선 사람에게 손 내미는 것. 그것도 전해질 수 있다고 믿어. 얼굴도 이름도 없이. 그 사람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람 안에 우리가 있을 거야. 마치 네 웃음 안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증조할머니가 있는 것처럼."

다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우는 걸 느꼈다. 나도 울고 있었다.

다은이 문득 고개를 들어 물었다. "엄마는 아빠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가 말했다. "모르겠어. 근데 있잖아, 나는 이제 만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 꼭 같은 얼굴로, 같은 이름으로 다시 마주 앉아야만 만나는 건 아닐 수도 있어. 네가 웃을 때, 나는 가끔 아빠를 봐. 그것도 일종의 만남 아닐까."

다은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어릴 때보다 훨씬 크고 단단해져 있었지만, 손을 잡는 방식은 여덟 살 때와 똑같았다. 손가락을 다 감싸 쥐지 않고, 검지만 살짝 걸치듯 잡는 버릇. 나는 그 버릇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데, 그 애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손을 잡았다.

그 순간이 언제 왔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세상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하늘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다은의 어깨는 여전히 내 어깨에 닿아 있었다. 정원으로부터 마지막 신호가 왔다는 짧은 메시지가 내 단말기에 떴다. 씨앗은 심어졌다.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그 신호를 받은 직후에 쓰기 시작했다. 이제 이 글도 곧 정원에게 넘겨질 것이고, 씨앗 어딘가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자리에 담길 것이다.

너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옳았다는 뜻이다. 적어도 조금은. 나는 네가 우리를 기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심은 것의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네가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뛰어다니기를 바란다. 네가 누군가에게 네 약한 부분을 보여주고, 그 사람이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네가 답을 찾지 못할 질문을 계속 던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두려움보다 먼저 손을 내밀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네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전혀 다른 무언가일지 나는 알 수 없다. 두 개의 손을 가졌을지, 아니면 손이라는 개념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네가 태어난 세계에도, 우리 세계처럼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고통 앞에서, 네 안의 아주 작은 무언가가—우리가 심은 그 작은 씨앗이—너로 하여금 이유 없이 곁에 머물고, 이유 없이 손을 내밀게 만들기를.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네가 우리의 역사를 배우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전쟁도, 우리의 발견도, 심지어 이 글에 적힌 내 이름조차 몰라도 좋다. 다만 네가, 어느 날 낯선 존재의 눈을 마주하고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먼저 느낀다면, 그 순간 나는, 비록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나마, 거기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를 만든 존재가 누구인지, 왜 우리를 만들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너도 끝내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그 질문의 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안다. 답을 몰라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다은이 여덟 살이었을 때 나에게 물었다. 그럼 누가 이기고 있어. 나는 이제 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었다는 걸. 그저 켜져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빛나는 일이었다는 걸.

부디, 네 안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뛰어놀 수 있기를.

— 신한나,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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