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빛의 경로

요긴소프트 2026. 7. 2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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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렌즈를 갈 때는 숨을 아껴야 한다. 숨을 크게 쉬면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유리 표면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나는 서른 해 가까이 이 일을 해왔지만, 아직도 연마포 위에 렌즈를 올려놓을 때마다 숨을 반쯤 참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어쩌면 고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숨을 참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용돌이 하나를 다스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대개 렌즈 수리라는 일을 단순하게 여긴다. 흠집을 지우고, 곰팡이를 닦고, 나사를 조이는 일 정도로.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렌즈 하나에는 보통 예닐곱 장에서 많게는 열 몇 장의 유리알이 정교하게 겹쳐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조리개 날과 스프링, 캠 구조가 머리카락보다 가는 오차 범위 안에서 맞물려 있다. 나사 하나를 잘못 조이면 초점이 미묘하게 어긋나고, 그 어긋남은 사진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렌즈를 통과하는 빛의 경로 전체를 조금씩 비틀어놓는다. 나는 이 일을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어긋남이 결국 눈에 보이는 커다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하루의 사소한 선택 하나가, 몇 해가 지난 뒤 전혀 다른 풍경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 것처럼.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는 못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조금 거창하다. 다만 이 일은 나에게 잘 맞는다. 하루 대부분을 침묵 속에서 보내고, 손끝의 감각에 온전히 의지하고, 완성된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 돌아오는 일. 나는 이 일을 통해 세상과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눈다고 느낀다.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은 언제나 아침 아홉 시 반이다. 나는 셔터를 올리고, 유리 진열장을 마른 천으로 한 번 닦고, 라디오를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는다. 대개는 클래식 채널이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나는 작업대 앞에 앉아 그날 맡은 렌즈들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다. 그런 날에도 나는 초조하지 않다. 렌즈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하루를 채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계절마다 바뀌는 골목의 빛, 오후가 되면 옆 건물 그림자가 가게 앞까지 길게 드리우는 모습,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것도 이 일의 일부다.

그날 오후에도 나는 낡은 라이카 렌즈 하나를 앞에 두고 있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조그만 표준 렌즈였는데, 어느 노인이 아들이 물려준 것이라며 들고 왔다. 렌즈 안쪽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습기를 오래 먹은 유리에는 마치 겨울 창문에 서린 성에 같은 무늬가 자라난다.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닦아내며 생각했다. 빛이 이 작은 유리 조각 하나를 통과하기 위해 대체 몇 번이나 굴절되고 몇 번이나 튕겨 나가는가를.

작업대 위 스탠드 불빛 아래서 렌즈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렌즈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백교수님이었다. 정확히는 백교수님의 딸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이미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알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죽음을 예감할 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또렷하게 그 사람과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길을 걸어보라고, 몸 어딘가에 새겨진 나침반이 재촉하는 것처럼.

"아버지가 오늘내일하세요." 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미 여러 날 울고 난 뒤의 목소리였다. "혹시 시간 되시면, 오늘 저녁에라도 와주시겠어요? 아버지가 자꾸 선생님 이야기를 하세요."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작업대 위의 렌즈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곰팡이를 다 걷어낸 유리는 이제 맑았다. 스탠드 불빛이 렌즈를 통과해 작업대 위에 작은 원을 그렸다. 나는 그 빛의 동그라미를 오래 바라보았다. 빛이 유리 속에서 어떤 길을 골라 이곳까지 왔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을 뿐이다.

2장.
내가 백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은 스물두 살, 물리학과 3학년 광학 수업에서였다. 그는 마흔 후반의 교수였고, 나는 그때 이미 진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있던 학생이었다. 수업은 대개 지루했다. 칠판 가득 복잡한 그림과 계산을 적어 내려가는 수업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칠판에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강의실 앞에 서서 이렇게 물었다.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다고 상상해보세요. 여러분은 모래사장 저편에 서 있고, 그 사람은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으로 뛰어가겠습니까?"

누군가 대답했다. "제일 가까운 직선으로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모래 위를 달리는 속도가 물속을 헤엄치는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러니 직선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모래 위를 조금 더 오래 달리고 물속에서는 최대한 짧게 헤엄치는 쪽이 실제로는 더 빠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배운 적이 없어도, 실제로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거의 정확하게 그 지점을 찾아 방향을 꺾어 뛰어듭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무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강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기 중에서 물속으로 들어갈 때, 빛은 마치 그 구조대원처럼 방향을 꺾습니다. 마치 어느 길이 가장 빠른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어느 물리학자는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빛은 사실 그 구조대원의 길 하나만 걷는 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동시에 다 걸어본다는 겁니다. 심지어 저 멀리 우회하는 길, 잠깐 뒤로 갔다가 다시 오는 길, 벽에 부딪혔다 튕겨 나가는 말도 안 되는 길까지도요. 그리고 그 모든 시도들이 마치 여러 사람이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른 박자로 흥얼거리는 것처럼 겹쳐지는데, 대부분은 서로 어긋나며 지워지고, 오직 그 구조대원이 택했을 법한 자연스러운 길 근처의 시도들만 서로 화음을 이루며 크게 남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눈에는 마치 빛이 처음부터 그 한 길만 골라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는 거지요."

"그럼 저희가 배운 게 다 틀린 건가요?" 누군가 물었다.

"아닙니다." 그가 웃었다. "다만 빛은 어리석지 않아서 지름길을 미리 아는 게 아니라, 무모할 만큼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보고서야 비로소 하나의 길로 수렴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는 그날 강의실 뒤편 실험실에서 낡은 레이저 포인터와 좁은 틈이 두 개 뚫린 판을 가져와 간단한 시연을 보였다. 레이저 빛을 그 두 개의 좁은 틈으로 통과시키자, 맞은편 스크린에는 하나의 밝은 점이 아니라, 마치 물에 돌 두 개를 동시에 던졌을 때 파문이 겹치는 자리처럼, 여러 개의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나타났다.

"빛 알갱이를 한 번에 하나씩, 아주 천천히 쏘아도 결국 이 무늬가 만들어집니다." 그가 말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알갱이 하나는 분명 둘 중 한쪽 틈만 지나갔을 텐데, 마치 두 틈을 동시에 지나가서 자기 자신과 부딪힌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틈으로 지나갔는지 몰래 들여다보려는 순간, 이 무늬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빛은 다시 얌전하게 하나의 길만 걸어간 것처럼 행동하지요."

"그럼 우리가 보지 않을 때는, 빛이 정말로 모든 길을 다 가는 겁니까?" 누군가 다시 물었다.

백교수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마치 그런 것처럼 셈해야,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결과와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뿐이지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지는 못해도, 마치 그런 것처럼 상상했을 때 가장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우리는 그 상상을 붙들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노트 한구석에 적어두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상상했을 때 가장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면. 나는 훗날 이 문장을 삶의 여러 순간에 다시 꺼내 보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그날 강의실을 나서면서 이상한 흥분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물리학 개념에 대한 흥분이라기보다는, 어떤 삶의 은유를 발견한 사람의 흥분에 가까웠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은유인지도 몰랐다. 그저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을 뿐이다. 나는 그 후로 몇 해 동안 백교수님의 연구실을 드나들며 광학과, 그가 젊은 시절 잠시 매료되었다던 동양의 오래된 세계관과, 그리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연구실은 늘 오래된 책과 커피 냄새로 가득했다. 창가에는 낡은 프리즘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오후가 되면 그 프리즘들을 통과한 햇빛이 벽에 작은 무지개를 그렸다. 나는 그 무지개를 볼 때마다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세상에는 이렇게 조용히, 아무도 보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는 종종 나에게 차를 내주며 물리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가 청년 시절 절에서 지냈던 한 철의 기억, 스승에게서 들은 화두, 그리고 언젠가 인도를 여행하며 보았다는 갠지스강의 새벽 풍경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그저 흥미로운 여담으로만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아마 그때부터 이미, 물리학과 불교와 삶을 하나로 꿰어보려는 자신만의 사유를 조금씩 나에게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렌즈를 만지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가 없었어도 나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요즘 들어 자주 든다.

3장.
대학원에 진학하고 삼 년째 되던 해, 나는 처음으로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지도교수와 함께 반년을 매달린 결과물이었다. 심사 결과가 나오던 날, 나는 연구실 컴퓨터 앞에서 메일을 열었다. 게재 불가였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은 논문의 아이디어 자체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연구자가 다룬 것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나는 그것을 미처 찾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논문을 다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날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좁은 우물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는지를 절감했다.

그 후로도 나는 이 년을 더 버텼다. 하지만 버틴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즐거워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여기서 그만두면 지금까지의 시간이 모두 무의미해질 것 같다는 불안 때문에 붙들고 있는 시간이었다. 연구실 후배들 중에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이미 훌륭한 결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내 재능의 크기를 가늠해보곤 했는데, 그 가늠질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서른을 앞둔 어느 겨울, 나는 결국 지도교수를 찾아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이 있는 법이지. 자네가 못나서가 아니야." 나는 그 말이 위로인지 체념인지 오래도록 구분하지 못했다.

집에 그 소식을 전했을 때, 아버지는 예의 그 말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통영 시장 한켠에서 오랫동안 삯바느질과 좌판 장사를 겸해온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벌이가 시원치 않은 달이면, 어머니의 좌판이 우리 식구의 진짜 생명줄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원을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부엌에 앉아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돈이 들어 있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면 계속해라." 어머니가 말했다. "이 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거다."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정확히는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그 돈이 얼마나 많은 밤과 얼마나 많은 손끝의 바늘땀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안전 욕구라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도 사랑에 가까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안전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일 저녁 좌판을 걷으며 하루치 매상을 세어보는 구체적인 손짓이었다. 그리고 그 손짓의 목적은 결국 자식들이 굶지 않고, 두려움 없이 다음 날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그 돈을 거절하는 대신, 대학원을 완전히 정리하고 작은 광학기기 회사에 취직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었다.

4장.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나는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열두 해가 지났다. 아버지는 평생 바다에서 일했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 무렵부터 배를 탔고, 새벽 세 시면 일어나 그물을 손질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질 때까지 어군탐지기 하나 없는 낡은 어선을 몰았다.

아버지에게 삶이란 단순했다. 오늘 배를 띄울 수 있는가, 오늘 그물에 고기가 얼마나 드는가, 이번 달 기름값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버지의 세계에는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아마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식구들이 굶지 않는 것, 태풍이 오기 전에 배를 안전한 곳에 묶어두는 것,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을 손보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그것이 아버지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저 생존이라는 낮은 바닥에 붙박여 사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나는 아버지의 그 낮은 자리가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삼남매를 굶긴 적이 없었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에도 지붕은 새지 않았다. 아버지의 삶을 하나의 화살표로 그린다면 그것은 아주 짧고 굵은 화살표였을 것이다. 방향은 오직 하나, 오늘을 무사히 넘기고 내일로 건너가는 것. 크기는 아주 컸다. 온 힘을 다해 그 방향으로만 나아갔으니까.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 물리학이라는,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지었던 표정을 기억한다. 화를 내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도록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니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만,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세속적인 걱정으로만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아버지가 평생을 걸쳐 도달한 하나의 지혜였다. 밥을 먹고 산다는 것, 배고픔과 두려움을 먼저 다스리지 않으면 그 위에 무엇을 쌓아 올리든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아버지는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층층이 쌓인 계단과 같다고 말한 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을 때, 나는 그 계단의 가장 아래 칸에 아버지의 그을린 손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통영의 작은 상가에서 치러졌다. 나에게는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 오빠는 젊어서 도시로 나가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나중에는 작은 수입 잡화 회사를 차려 제법 큰 돈을 벌었다. 언니는 고향에 남아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보냈다. 삼일장 내내, 나는 상복을 입은 오빠와 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이상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삼남매는 같은 아버지, 같은 바다, 같은 좁은 집에서 자랐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의 화살표를 그리며 살아왔다.

오빠는 발인 전날 밤, 술에 취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처럼은 살기 싫었다. 평생 배 위에서 그물만 만지다 늙는 거, 그게 얼마나 서러운 삶인지 너는 모른다." 나는 오빠의 그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오빠에게는 오빠의 진실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언니는 발인 날 아침, 관 옆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어. 한자리에서 오래, 성실하게. 아버지가 나한테 그런 걸 가르쳐줬으니까." 두 사람의 말은 정반대였지만, 나는 그 둘 다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아버지의 방향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려는 방향으로 자신의 화살표를 그었고, 언니는 아버지의 방향과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자신의 화살표를 그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 어디쯤에서,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인 물리학과 유리를 향해 비스듬히 걸어간 셈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셋이 나란히 아버지가 평생 타던 배를 보러 갔다. 배는 이미 낡을 대로 낡아 더 이상 바다에 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오빠는 그 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평생 서럽다고 말하던 그 삶 앞에서, 오빠는 누구보다 오래 서 있었다. 나는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우리가 부모의 방향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달아나려 해도, 그 화살표의 시작점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삼남매의 화살표는 서로 다른 곳을 향했지만, 그 시작점은 언제나 저 낡은 배 위, 아버지의 손끝이었다.

5장.
병원 로비에 들어서니 소독약 냄새와 함께 늦여름 저녁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뒤섞여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쉰여덟 살의 여자가 조금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익숙하지도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다뤄온 렌즈인데도 매번 조금씩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것을 볼 때처럼.

병동은 조용했다. 간호사들의 발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심전도 모니터의 규칙적인 신호음만이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병실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문 안쪽에서 낮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백교수님은 침대를 약간 세운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여든셋의 나이였고, 암은 이미 폐와 뼈까지 번진 상태였다. 마른 몸에 링거 줄이 여러 개 매달려 있었지만, 나를 돌아보는 눈빛만은 예전 강의실에서와 다르지 않았다.

"왔는가." 그가 말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여전히 또박또박했다. "렌즈 가게는 잘되고?"

"그럭저럭요." 나는 침대 곁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곰팡이 슨 라이카 렌즈 하나 닦아드리고 왔습니다."

"곰팡이라." 그가 웃었다. "습기 먹은 유리처럼, 사람도 오래 방치되면 안에서부터 뿌예지는 법이지."

우리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병실 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그는 천천히,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말을 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나니, 이상하게도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들이 자꾸 떠오른다네. 스물다섯에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여기 남았던 일, 서른에 다른 대학에서 제안이 왔을 때 거절했던 일, 마흔에 사업하자던 친구의 손을 뿌리쳤던 일. 그런 갈림길들 말일세."

"후회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하게. "후회는 아닐세. 다만 궁금할 뿐이지. 그 길로 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하고.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젊었을 때 마음공부를 한다고 절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얻은 그림이 하나 있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방이 세 개 있다고 상상해보게. 첫 번째 방은 늘 배가 고프고, 춥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방일세. 두 번째 방은 배는 부르지만 여전히 물건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규칙을 지켜야 마음이 놓이는 방이고. 세 번째 방은 아무것도 없어도, 정돈할 것조차 없어도 고요한, 텅 빈 방이지. 나는 젊을 때 이 세 방이 아래층, 가운데층, 꼭대기층이라고 생각했네. 배고픈 방에서 시작해서, 정돈된 방을 거쳐, 언젠가는 텅 빈 방으로 이사를 가는 거라고. 계단을 오르듯 말일세."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세요?"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오래 침묵하다가 답했다.

"지금은, 그것이 층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일 뿐이라고 생각하네. 배고픈 방에 있다고 해서 정돈된 방보다 못한 것이 아니야. 자네 아버지가 바다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그 삶, 그것을 배고픈 방이라고 부른다면, 그 방 안에도 완전함이 있었네. 완전히 그 순간에 몰입한 완전함 말일세. 반대로 텅 빈 방, 순수한 사유의 방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진실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서로 다른 방일 뿐이야. 위, 아래가 아니라."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통증이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진통제 버튼을 누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후 그가 다시 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말일세, 요즘 이 몸이 나를 자꾸 배고픈 방으로 끌어당긴다는 걸세. 젊었을 때는 하루 종일 서재에 앉아 어려운 생각들을 논하던 내가, 요즘은 통증이 없는 한 시간, 물 한 모금을 편하게 삼킬 수 있는 순간, 그런 것들만을 갈망하고 있어. 텅 빈 방에서 다시 배고픈 방으로 굴러떨어진 셈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부끄럽지가 않네. 오히려 그 갈망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구나 하고. 숨 한 번, 물 한 모금, 그것을 향한 절실함이구나 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뼈만 남은 듯 앙상한 손이었지만, 여전히 온기가 있었다.

"절에서 지낼 때, 어느 노스님이 해준 이야기가 있네."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침 이슬 이야기였지.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은 해가 뜨면 사라진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아침마다 그 이슬을 들여다보는가, 하고 스님이 물었어. 나는 젊었을 때 그 말을 허무하게만 들었네. 어차피 사라질 텐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것은 오히려 정반대의 말이었네. 사라지기에, 지금 맺혀 있는 그 이슬 한 방울이 더욱 사무치게 소중하다는 뜻이었어. 자네가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도, 곧 사라질 걸세.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겠나."

6장.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침대 옆 협탁에서 물컵을 가리켰다. 내가 물을 건네자 조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에게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네. 자네가 학부생일 때, 광학 수업에서 만났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야. 인생을 하나의 걸음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방향이 있고, 그 방향으로 내딛는 발걸음의 크기가 있는 걸음 말일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어렴풋이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 말해본 적은 없었다.

"삶의 매 순간,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어떤 크기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나아가네."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 발걸음들 사이에는 몇 가지 셈법이 있어. 함께 걸을 때와, 헤어져 걸을 때와, 온 힘을 다해 걸을 때와, 나른하게 걸을 때. 그리고 두 사람의 걸음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걷는 것은 아마 쉽겠지요." 내가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면, 두 개의 걸음이 이어지는 거니까요."

"그렇지. 자네와 자네 남편, 정우였나. 자네들이 결혼했을 때, 두 사람의 방향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어도, 걸음은 이어져 하나의 더 긴 여정이 되었을 걸세. 헤어짐은 그 반대고.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 함께 걷던 구간 하나를 삶에서 통째로 떼어내는 일이야. 남은 걸음의 크기가 줄어들 수도 있고, 방향이 완전히 뒤틀릴 수도 있지."

"그럼 온 힘을 다해 걷는다는 건요."

"그것은 열정일세." 그가 미소 지었다. "같은 방향으로, 얼마나 큰 걸음을 내딛느냐. 자네 아버지가 바다에서 보낸 삶은, 방향은 단순했지만 걸음 하나하나가 아주 무거웠던 여정이었을 거야. 반대로 방향은 근사한데 발을 떼지 않는 삶도 있지. 그런 여정은 지도 위에서는 그럴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하네. 내 동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 젊었을 때는 나보다 훨씬 촉망받는 이론가였지. 그런데 그는 늘 다음 학기, 다음 해, 언젠가는 제대로 해보겠다는 말만 반복했네. 방향은 옳았지만 그 방향으로 내딛는 걸음이 너무 작았던 거야. 결국 그는 정년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논문 하나 남기지 못했네. 나는 가끔 생각하네. 방향을 못 찾아 헤매는 것보다, 방향은 알면서도 발을 떼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잠시 기침을 했다. 나는 손을 뻗어 등을 두드려주려 했지만 그가 손짓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도 있네." 그가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고 상상해보게. 같은 쪽을 보고 걸으면, 두 사람은 서로를 밀어주는 힘이 되지. 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나란히 붙어 걸어도 서로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해. 심지어 등을 돌리고 걷는다면, 오히려 서로를 갉아먹지. 나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울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네. 아무리 오래 함께 있어도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은, 겉으로는 붙어 있어도 서로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관계지. 반대로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았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울림은 아주 컸던 걸세."

"그럼, 두 사람이 만나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태어나는 건요." 나는 물었다.

"아, 그것은 조금 더 신비롭지." 그의 눈빛이 오랜만에 반짝였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다가 만나는 순간, 가끔은 그 두 방향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무언가가 생겨나네. 두 줄기 실을 엮으면 원래 어느 실에도 없던 새로운 결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지. 나는 그것이 자식이라고 생각하네. 어머니의 방향과도 다르고 아버지의 방향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존재. 하윤이라고 했던가, 자네 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조금 메어왔다.

그날 병실을 나서기 전, 나는 창가에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다. 세 개의 방 이야기와, 방금 들은 걸음의 셈법들이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그림을 서로 다른 언어로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향해 손을 뻗는가는, 걸음이 향할 수 있는 여러 목적지들의 목록이었다. 배를 채우는 일, 안전한 잠자리, 곁에 있어줄 사람, 인정받는 일, 스스로 완전해지는 일. 세 개의 방 이야기는, 그 목적지들이 놓인 방 자체의 공기였다. 늘 무언가 부족한 공기, 가지런히 정돈된 공기, 아무것도 필요 없는 고요한 공기. 그리고 걸음의 셈법은, 그 방 안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힘이 되고 짐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였다. 함께 걷고, 헤어지고, 힘주어 내딛고, 서로를 밀어주거나 갉아먹으며.

나는 이 세 가지 언어를 하나로 겹쳐볼 때, 비로소 삶이라는 것이 조금 덜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사다리의 어느 칸에 도달했는지를 재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어느 방에 머물러 있는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딛는 걸음의 방향과 크기, 그리고 그 걸음이 다른 이들의 걸음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그것만을 살피면 되었다. 그것으로도 삶은 충분히 복잡하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7장.
병실을 나와 밤길을 걸으며, 나는 남편 정우를 처음 만났던 스물아홉의 겨울을 떠올렸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광학기기 회사에 갓 취직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고, 저녁이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쏘다니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카메라 동호회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정우는 사진을 찍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즐겨 찍었다. 앞모습은 사람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만든 얼굴이지만, 뒷모습에는 그 사람의 진짜 하루가 고여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오래전 백교수님의 강의를 다시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선이라는 점에서, 그와 나는 이미 어딘가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달 모임이 끝나면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렌즈를 분해하는 손짓을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나는 그가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오래 응시하는 눈빛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걸어왔지만, 어느 순간 방향이 겹쳐지는 지점이 있었다. 백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아마 서로에 대한 울림이 가장 커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년을 만난 뒤 결혼했다. 결혼식은 소박했다.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접었지만, 빛과 유리를 다루는 일 자체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그것이 내 삶의 방향 중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은 부분이었다.

결혼한 이듬해 하윤이 태어났다. 진통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분만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숨을 짧게 나눠 쉬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이사이 백교수님의 강의가 떠올랐다. 빛이 가능한 모든 경로를 지나 하나의 길로 수렴한다는 이야기. 정우는 침대 곁에서 내 손을 잡고 있었고, 나는 통증이 잠시 물러날 때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시간이 이 아이에게로 모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윤이 첫 울음을 터뜨리고 간호사가 아이를 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을 때, 작은 손이 내 손가락을 붙잡았다. 내가 평생 만져본 어떤 렌즈보다 섬세하고, 어떤 유리보다 따뜻한 감촉이었다. 하윤은 나와도 다르고 정우와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가진 존재였다.

딸을 키우면서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고 곁을 받는다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절실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그것을 그저 막연한 감상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윤이 열이 나서 울던 밤, 정우와 내가 번갈아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을 오가던 새벽, 나는 알았다.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생존과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있는지를. 아버지가 그물을 손질하며 지켰던 것과, 내가 아이를 안고 지켰던 것이 사실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고 결혼 생활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하윤이 다섯 살이 되던 해, 내가 다니던 광학기기 회사가 문을 닫았다. 반년 가까이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셨고, 정우에게 날 선 말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시절이다. 나는 세상에 대한 화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풀었다. 정우도 지쳐갔다. 어느 밤, 그는 짐을 챙기다 말고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걷고 있는 거야? 나는 요즘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그 질문은 오래도록 내 안에 박혀 있었다. 우리는 그해 겨울 잠시 별거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정우는 하윤을 데리고 시댁에 머물렀고, 나는 텅 빈 집에서 매일 밤 낡은 렌즈들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함께 걷던 걸음에도 헤어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함께 걷던 화살표에서 상대의 방향이 빠져나가면, 남은 것은 훨씬 짧고 훨씬 흔들리는 화살표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 짧고 흔들리는 화살표를 붙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향해 걷고 싶은가.

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다시 렌즈를 만지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정우와 하윤이 있는 쪽으로, 다시 걸어가고 싶었다. 나는 작은 렌즈 수리점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벌이는 불안정했지만, 적어도 내가 매일 아침 향해야 할 방향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정우를 찾아가 그 결심을 말했다. 그는 오래 침묵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그 방향이라면, 나도 같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봄이 되어서야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해에 연 작은 가게가 지금의 이 렌즈 수리점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 겨울, 우리 두 사람의 화살표가 잠시 갈라졌던 것은 어쩌면 결코 불필요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갈라졌기에 나는 처음으로 내 방향을 스스로 골랐다. 그리고 다시 이어졌기에 그 방향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덧셈이 있으려면, 때로는 뺄셈을 통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8장.
가게를 오래 운영하다 보면, 렌즈를 맡기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들이 지금 삶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가 어렴풋이 읽힐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삼십 년 가까이 사람들의 손과 목소리와 렌즈를 함께 들여다보다 보면, 그런 착각도 하나의 감각처럼 몸에 붙는 법이다.

어떤 손님은 렌즈를 맡기며 가격부터 묻는다. 수리비가 새 렌즈 값보다 비싸면 버려야 하나요, 라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다. 카메라는 그들에게 취미가 아니라 생계의 도구인 경우가 많다. 결혼식장을 돌며 사진을 찍어 생활비를 버는 사람, 중고 장터에 되팔아 몇 만 원이라도 보태려는 사람. 나는 그런 손님들을 대할 때 평소보다 수리비를 낮게 부르곤 한다. 남편은 가끔 그러다 가게 문 닫는다고 핀잔을 주지만, 나는 안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렌즈의 완벽한 광학 성능이 아니라, 이번 달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몇 만 원이라는 것을.

어떤 손님은 도난이나 파손을 지나치게 염려한다. 렌즈 하나를 맡기면서도 보관함이 잠기는지, 화재보험은 들어 있는지, 몇 번이고 되묻는다. 나는 그런 손님들에게서 안전 욕구의 얼굴을 본다. 그들의 렌즈는 이미 충분히 좋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지금의 안정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별다른 말 없이, 보관함 열쇠를 그들 눈앞에서 직접 채워 보여준다. 말보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더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가르쳐주었다.

또 어떤 손님은 렌즈 자체보다 그 렌즈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렌즈, 첫사랑과 함께 여행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 이제는 연락이 끊긴 친구와 함께 만든 사진 동아리의 추억. 그들은 사실 렌즈를 고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나는 그런 손님들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준다. 그것이 소속과 애정의 욕구라는 것을,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배운다.

또 다른 부류의 손님들도 있다. 자신의 사진이 얼마나 정교한지, 어느 공모전에서 입상했는지를 굳이 설명하며 렌즈를 맡기는 사람들. 그들은 렌즈의 성능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줄 것이라 믿는 듯하다. 나는 그런 손님들을 야박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 역시 한때는 존경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애를 태우던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그들에게 렌즈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사진을 완성하는 것은 그것을 쥔 사람의 눈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은 스스로 깨달아야 진짜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렌즈의 성능이나 가격, 이야기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손님들이 있다. 그들은 그저 렌즈를 통과하는 빛 그 자체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어느 노화가는 몇 년째 내 가게에 들러 렌즈로 빛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왜곡이 어떻게 자신의 그림에 영감을 주는지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이제 여든이 넘었고, 유명한 화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렌즈를 들여다보며 짓는 표정에는, 세상의 인정과는 완전히 무관한 어떤 충만함이 있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결국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아주 가끔은, 어느 단계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손님도 있다. 지난겨울, 한 중년 남자가 렌즈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구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젊었을 때 사진작가를 꿈꾸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고, 이제는 병상에 누워 마지막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친구가 카메라를 다시 들 힘도 없을 거예요. 그래도 머리맡에 렌즈 하나 놓아두고 싶어서요." 나는 그 렌즈를 그 어느 때보다 정성껏 손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꿈의 형상, 그리고 그 꿈을 여전히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나는 가게에 앉아 사람들 마음속의 순서가 걸어 다니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순서는 결코 정해진 계단을 오르듯 걸어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날은 생존을 걱정하는 손님 다음에 자아실현에 몰두한 노화가가 들어왔고, 또 어떤 날은 존경을 갈구하는 젊은이 다음에 소속을 그리워하는 노인이 들어왔다. 그들은 단계를 오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좌표에 서서 저마다의 빛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온전히 아름답게만 말할 수는 없다. 작은 렌즈 수리점을 차린 뒤에도, 하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어떤 결핍감에 시달렸다. 대학 동기 중 하나는 미국 명문대 교수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벤처기업을 차려 신문에 이름이 실렸다. 나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웃으며 축하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잊히지 않는 날이 하나 있다. 하윤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 물리학과 졸업 이십 주년 동창회가 있었다. 나는 가지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옷장에서 가장 좋은 재킷을 꺼내 입고 나갔다. 호텔 연회장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동기들이 저마다의 명함을 주고받고 있었다. 누구는 대학 교수, 누구는 연구소 책임자, 누구는 해외 기업의 이사였다. 사회를 맡은 동기가 한 명씩 근황을 소개할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마이크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저는, 작은 카메라 렌즈 수리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연회장 어딘가에서 짧은 침묵이 스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누군가는 예의 바르게 박수를 쳤지만, 그 박수 소리에는 동정에 가까운 온기가 섞여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 얼굴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정말 실패한 것이냐고.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하윤이 현관까지 뛰어나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오늘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 보여줄게!" 나는 딸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며, 잠시나마 동창회에서의 침묵을 잊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내 안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그 허기를 채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세상에 내 이름 석 자를 남겼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란 남이 쓰던 낡은 렌즈의 곰팡이를 닦아내고, 흠집 난 코팅을 손보고, 헐거워진 조리개 링을 조여주는 일이었다.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일이었다.

어느 밤, 나는 백교수님을 찾아가 이런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이미 정년퇴임을 한 뒤였고, 우리는 그의 서재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물리학자도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사업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가게 하나를 운영하는 사람일 뿐이지요."

백교수님은 그때 한참을 말이 없다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그 계단 이야기가,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까. 아래 단계를 채우면 위 단계로 올라가는 거라고 배웠는데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오해하지."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계단 이야기를 처음 만든 사람도 말년에는 그 그림을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깔끔하게 층층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자네 아버지를 생각해보게. 그는 평생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언저리에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존경을 몰랐겠나. 그물을 가장 잘 다루는 어부로 마을에서 인정받는 것, 그것도 존경 욕구의 충족이었을 걸세. 자네 아버지는 아마 자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아실현에 가까운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 자기 손으로, 자기 배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매일을 살아냈으니까."

나는 그 말에 곧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그가 말을 이었다. "꼭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어야 할 이유가 있나. 자네는 렌즈를 다루는 일에 서투른가?"

"아닙니다." 나는 답했다. "그 일만큼은, 제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합니다."

"그럼 됐네." 그가 웃었다. "자네는 이미 자아실현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걸세. 다만 세상이 자네에게 박수를 쳐주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 박수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그 물음에 오래도록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9장.
그날 이후로도 나는 종종 그 질문을 되새기며 살았다. 박수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이제 쉰여덟이 되었고, 렌즈 수리점을 이십일 년째 운영하고 있다. 손님은 대개 나이 든 사람들이거나, 필름 사진에 매료된 젊은이들이다. 나는 그들이 가져오는 낡은 카메라와 렌즈를 통해, 이상하게도 그들 각자의 인생을 조금씩 엿보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들고 온 중년의 여자, 첫 월급으로 산 카메라를 다시 쓰고 싶다는 청년, 이혼한 전남편이 남기고 간 렌즈를 팔기 전에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는 사람. 그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걸어와, 내 작업대 위에 잠시 자신의 조각 하나를 내려놓고 간다.

병실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나는 백교수님이 말했던, 빛이 모든 길을 다 걸어본다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했다. 빛은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모든 가능한 길을 다 걸어본다고 했다. 대부분의 길은 서로 상쇄되어 사라지고, 오직 가장 자연스러운 길 근처의 진폭들만 살아남아 더해진다고 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만약 삶도 그렇다면, 나는 지금 가장 자연스러운 길 위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그저, 우주가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계산하기 위해 시도해본 수많은 경로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어떤 위안을 느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삶의 평범함이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만약 우주가, 혹은 어떤 거대한 서사가 존재를 향한 최선의 경로를 찾기 위해 무수한 삶들을 동시에 시험해보고 있는 것이라면, 내 삶 또한 그 계산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하나의 항이었다. 내가 대단한 발견을 하지 못했어도, 내가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어도, 내 삶이라는 화살표는 분명 어딘가에 진폭을 하나 남겼을 것이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길에 힘을 보탰는지, 상쇄되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 계산의 바깥에 있지 않았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주라는 거대한 서사시에서, 나는 어쩌면 몇 줄 스쳐 지나가는 조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사시라는 것은 주인공 혼자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배경에서 밭을 가는 농부 하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 하나, 이름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 하나까지, 그 모든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그 세계는 진짜가 된다. 나는 그런 존재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그로부터 사흘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백교수님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였고,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딸이 병실 밖에서 나를 맞으며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으세요. 그래도 선생님 오신다니까 계속 시계만 보고 계셨어요."

나는 침대 곁에 앉았다. 그는 마스크 안에서 옅게 웃어 보였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네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나는 몸을 숙여 귀를 가까이 댔다. "그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말일세, 어느 길이 정답이냐가 아니야. 모든 길이 그 셈에 참여한다는 그 사실 자체일세. 자네가 만약 어느 날, 자네 삶이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야. 잘못된 길이란 없네. 참여하지 않은 길만 있을 뿐이지. 그리고 자네는, 단 하루도 참여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손을 더 꽉 쥐었다.

"그리고 하나 더." 그가 이어 말했다. "죽음이라는 것도, 아마 경로 하나가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경로가 남긴 진폭이 다른 경로들 속으로 스며드는 일일 걸세.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야. 자네 안으로, 그리고 자네가 앞으로 만날 다른 사람들 안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것뿐이지.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게."

나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마른 손으로 내 손등을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마치 오래전 강의실에서, 어렵고 낯선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헤매던 학생을 다독이던 그 손짓 그대로였다.

그날 저녁, 나는 병실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교수님은, 지금 어느 방에 계신 것 같으세요? 첫 번째 방, 두 번째 방, 세 번째 방, 그중 어디요?" 그는 산소마스크 너머로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자네 손을 잡고 있는 이 감각 안에 있네. 그것이 몇 번째 방인지는, 이제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아."

10장.
백교수님은 그로부터 여드레 뒤에 돌아가셨다.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가 돌아가시던 새벽, 나는 작업대 앞에서 졸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딸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울고 있었다.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제자였던 사람들, 동료 교수들, 오래된 친구들이 드문드문 다녀갔다. 국화 향이 짙게 배어 있는 공기 속에서, 나는 향을 피우고 두 번 절을 올렸다. 무릎을 꿇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장례식 때와 똑같은 냄새, 똑같은 무게의 침묵을 느꼈다. 두 사람의 삶은 그토록 달랐는데,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영정 사진 속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인 듯했다. 지금보다 훨씬 형형한 눈빛이었다. 나는 문득 저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도, 빛은 렌즈를 통과하며 무수한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무수한 길 끝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빈소를 지키던 딸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마지막 며칠 동안, 선생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셨어요. 걸음이 어쩌고, 빛이 어쩌고, 저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는데." 그녀는 옅게 웃으며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실 때 아버지 얼굴이 제일 편안해 보였어요. 아프신 것도 잊으신 것처럼요."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의 손을 오래 맞잡고 있었다.

발인 날 아침, 나는 화장장으로 향하는 버스 대신 혼자 걸어서 근처 야산에 올랐다. 유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백교수님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산책로였다고 딸이 알려준 곳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고, 산 정상에 다다랐을 때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다시 생각했다. 바다에서 평생을 보낸 아버지의 삶과, 서재와 강의실에서 평생을 보낸 백교수님의 삶은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방향을 가진 걸음이었다. 한 사람은 늘 배고픈 방 한복판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다른 한 사람은 가지런한 방과 텅 빈 방의 경계 어디쯤에서, 사유와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두 사람의 걸음이 사실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가장 성실하게, 가장 온전하게 자신의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가 내딛은 걸음의 크기와 백교수님이 내딛은 걸음의 크기는, 방향은 달랐지만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그 세 개의 방이라는 것이 어쩌면 층층이 쌓인 계단이 아니라, 빛이 동시에 걸어본다는 그 무수한 길들처럼, 동시에 존재하는 여러 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방도, 두 번째 방도, 세 번째 방도, 어느 것이 더 높거나 낮은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라고. 그리고 한 사람의 삶 안에도 그 세 개의 방이 동시에 겹쳐 있을 수 있다고. 나는 렌즈를 만지는 손으로는 늘 배고픈 방에 머물러 있었지만, 백교수님과 나누던 대화 속에서는 잠시 가지런한 방과 텅 빈 방의 경계를 넘나들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백교수님이 오래전 들려주었던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일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그때는 그 말을 그저 아름다운 잠언 정도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산 정상에 서서, 나는 그것이 함께 걷는 셈법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아버지의 화살표가 없었다면 나의 화살표는 애초에 그려질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백교수님의 화살표가 내 삶과 교차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었을 것이다. 정우의 화살표가, 하윤의 화살표가, 심지어 오늘 아침 이 산에서 스쳐 지나간 이름 모를 등산객의 화살표까지, 그 모든 것들이 서로 기대어 지금 이 순간의 나라는 좌표를 만들어냈다. 그 기댐이란 결국, 우주 전체가 서로의 걸음을 더하고 빼며 함께 그려나가는 거대한 그림이 아니었을까.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안개가 걷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무수한 지붕들, 무수한 창문들, 그 아래 무수한 삶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저마다의 크기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것이었다.

11장.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나는 다시 가게 문을 열었다. 곰팡이를 닦아냈던 라이카 렌즈는 이미 주인에게 돌려준 뒤였다. 그 노인은 렌즈를 받아 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긴 물건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렌즈를 조금 더 정성껏 닦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우는 요즘 다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무릎 수술을 받은 뒤로 멀리 나가지는 못하지만, 대신 우리 동네 골목을 천천히 돌며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여전히 뒷모습이다. 나는 저녁이면 그가 찍어온 사진들을 함께 들여다보곤 한다. 시장에서 배추를 이고 가는 노파의 굽은 등, 학원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아이의 뒷목, 벤치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의 어깨. 그는 여전히 보이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뒷모습만 남은 나이인가." 어느 밤, 사진을 넘겨보다가 내가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정우는 웃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뒷모습이 나쁜 게 아니야. 뒷모습에는 그 사람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다 들어 있으니까. 나는 오히려 요즘 당신 뒷모습을 찍고 싶어. 작업대에 앉아 렌즈 들여다보는 뒷모습."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산 사람에게서, 여전히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우리는 젊었을 때처럼 뜨겁게 서로를 향해 걷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오래 함께 걸어온 두 사람의 울림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열띤 순간보다 오히려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방향이 완전히 겹쳐지기까지, 우리는 그 겨울의 뺄셈을 포함해 수많은 조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화살표는 예전보다 훨씬 조용하지만 훨씬 단단하게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

그해 초가을부터, 나는 가게에 견습생을 하나 두었다. 스물세 살의 청년으로, 사진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직이 여의치 않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를 받아들일 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이런 손기술을 오래 붙들고 앉아 있을 젊은이가 얼마나 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도 성실했다. 나사 하나, 유리알 하나를 다루는 손짓을 몇 달이고 지켜보며 흉내 냈다.

어느 날 그가 렌즈를 분해하다가 나사를 하나 흘려버리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다. 나도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개씩 나사를 흘렸어. 중요한 건 흘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다음에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거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문득 백교수님을 떠올렸다. 그가 나에게 해주었던 수많은 말들이, 이제는 내 입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도 뭉클했다. 스승에게서 받은 것을 그대로 되돌려줄 방법은 없지만, 대신 전혀 다른 사람에게로 흘려보낼 수는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것도 걸음의 어떤 셈법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되갚음이 아니라 전이. 한 사람에게서 받은 화살표의 방향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어 붙이는 일.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저녁, 하윤이 가게에 들렀다. 스물여섯이 된 딸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작은 독립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은 아니었다. 월급도 많지 않았고, 언제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다. 나는 가끔 딸이 조금 더 안전한 길을 택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딸에게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날 저녁, 하윤은 작업대 앞 의자에 앉아 내가 렌즈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래전 정우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 딸이 물었다. "후회한 적 없어? 물리학자가 못 된 거."

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예전엔 있었지."

"지금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백교수님과 나누었던 걸음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었다. 함께 걷기와 헤어짐, 힘주어 내딛기, 그리고 서로에게 미치는 울림과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 딸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럼 나는, 엄마랑 아빠가 만나 튀어나온 완전히 새로운 방향이겠네."

"그렇지."

"근데 나는 요즘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 사람들은 다 좋은 회사, 안정된 자리 찾아가는데, 나만 이상한 데서 헤매고 있는 것 같아."

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대학 동창 결혼식에 갔었거든. 다들 대기업 다니고, 집도 사고, 그러던데. 나는 여전히 월세방에 살면서 다음 달 월급과 마감 걱정이나 하고 있고.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좀 많이 울었어."

나는 렌즈를 내려놓고 딸을 바라보았다. 딸의 얼굴에서, 나는 오래전 대학원을 그만두던 겨울, 거울 속에서 마주했던 내 얼굴을 얼핏 보았다.

"예전에 은사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해줄까." 나는 말했다. "그는 빛이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 상식적으로 보이는 그 직선 길만 걷는 게 아니라고 했어. 빛은 온갖 우스꽝스러운 길, 멀리 돌아가는 길, 말도 안 되게 휘어지는 길까지 다 걸어본다고 했지. 그런데 결국 그 모든 시도들이 더해지고 지워지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길이 만들어지는 거야. 나는 그게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네가 지금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길도, 사실은 네가 가야 할 어느 지점에 닿기 위해 빛이 걸어보는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일지도 몰라. 지금 당장은 그게 어떤 길로 수렴할지 아무도 몰라. 심지어 너 자신도. 하지만 그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건 아니야."

딸은 한참 말이 없다가, 작게 웃었다. "엄마도 참, 렌즈나 닦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고 있어."

"렌즈나 닦는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나도 웃었다.

12장.
그날 밤, 딸을 배웅하고 혼자 가게에 남아 문을 닫기 전, 나는 작업대 위 스탠드를 끄지 않은 채 잠시 앉아 있었다. 스탠드 불빛이 작업대 위에 흩어진 렌즈 부품들을 비추고 있었다. 나사, 조리개 날, 유리알들. 저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이 정확히 제자리에 맞물려야 비로소 하나의 렌즈가 빛을 온전히 통과시킬 수 있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삶이 정말로 그 구조대원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면, 그리고 우주라는 거대한 서사시가 가능한 모든 삶의 형태를 동시에 시험해보며 어떤 이상적인 존재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나는 그 셈 속에서 결코 사소한 항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셈법에서는,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이라도, 단 하나도 셈에서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길이 더해진다. 모든 길이 참여한다. 심지어 서로를 상쇄시켜 결국 사라지는 길들조차, 그 상쇄라는 사건 자체를 통해 최종적인 결과에 기여한다.

아버지의 삶은, 바다 위에서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을 향했던 그 짧고 굵은 화살표는, 결코 나의 삶보다 덜 중요한 경로가 아니었다. 백교수님의 삶은, 강의실과 서재를 오가며 빛의 본질을 탐구했던 그 길고 섬세한 화살표는, 아버지의 삶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경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삶은, 물리학자도 사업가도 되지 못한 채 낡은 렌즈들을 닦으며 살아온 이 화살표는, 그들의 삶에 비해 부끄러워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어느 방에 있든, 배고픔의 자리든 스스로 완전해지는 자리든,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가능한 가장 성실한 크기로 화살표를 그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무수한 화살표들이 서로 더해지고, 빼지고, 곱해지고, 교차하면서, 이 세계라는 거대한 그림을 함께 그려나간다. 어떤 화살표는 다른 화살표와 겹쳐져 더 큰 힘을 만들어내고, 어떤 화살표는 서로 부딪혀 상쇄되고, 또 어떤 화살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새로운 존재를 밀어 올린다. 하윤처럼.

나는 이것이 이상적인 삶을 향한 여정의 한 경우의 수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이미 이상적인 삶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 죽는 날까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삶이 더 의미 있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빛은 자신이 최단 경로를 걷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로도 목적지에 닿는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가장 이상적인 길인지, 아니면 이상을 계산하기 위해 우주가 잠시 시험해보는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어도, 우리는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화살표를 그으며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13장.
가게 문을 닫고 골목으로 나서니, 밤하늘에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개는 또렷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것들을 올려다보았다.

저 별빛 하나가 내 눈에 닿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우주의 먼지들 사이를 지나왔을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빛은 아마 출발할 때부터 정확히 내 눈동자를 향해 겨냥하고 떠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사방으로 흩어졌을 무수한 빛들 중, 어느 한 줄기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 골목, 이 순간, 렌즈를 만지며 늙어가는 한 여자의 눈동자에 와 닿았을 뿐이다.

나는 그것이 조금도 하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별빛이 이곳에 닿기 위해 우주가 시도했을 무수한 다른 길들, 다른 어둠들, 다른 침묵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 눈에 들어온 이 작은 빛 한 줄기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대표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삶도, 백교수님의 삶도, 정우와 하윤의 삶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도시의 무수한 창문 너머에서 저마다의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을 이름 모를 사람들의 삶도, 모두 그렇게 우주가 시도해본 무수한 경로들 중 하나로서, 지금 이 순간 여기에 함께 겹쳐져 있는 것이다.

나는 렌즈를 닦는 사람이다. 물리학자가 되지 못했고, 유명해지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저녁, 누군가 평생 아껴온 빛의 통로 하나를 손에 쥐고, 그 안에 낀 먼지와 곰팡이를 걷어내는 일을 한다. 그렇게 해서 그 렌즈를 통과하는 빛이, 다시 한번 온전한 길을 찾아 누군가의 눈에, 누군가의 필름에, 누군가의 기억에 닿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이 내가 이 거대한 서사시 안에서 맡은 배역이다. 주인공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걸어온 골목이 가로등 불빛 아래 길게 뻗어 있었다. 그 길은 내가 걸어올 수 있었던 무수한 다른 길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무수한 가능성들 중에서, 결국 나는 이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일도 나는 작업대 앞에 앉아 숨을 반쯤 참고, 누군가의 렌즈를 닦을 것이다. 그리고 그 렌즈를 통과할 빛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알지 못한 채로, 다만 지금 내 손끝에 닿아 있는 그 투명함만을 믿으며, 다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14장.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났다. 하윤은 여전히 독립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는 문을 닫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하윤이 기획하고 편집한 책 한 권이 작은 문학상의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상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딸의 목소리는 내가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어떤 밝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나 이 일 계속해도 될 것 같아. 이제는 알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전 산 정상에서 떠오르던 해를 떠올렸다. 딸의 화살표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여전히 남들이 보기엔 헤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화살표는 이제 스스로의 방향을 조금씩 확신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견습생이었던 청년은 이제 어엿한 기술자가 되어, 나와 함께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지난가을에는 그가 직접 손본 렌즈 하나가 어느 사진전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그 소식을 전하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기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내가 백교수님의 강의실을 나서며 느꼈던 그 이상한 흥분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삶의 은유를 발견한 사람의 흥분.

정우와 나는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함께 동네를 걷는다.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든다. 나는 여전히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걷는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 속에서도, 우리 두 사람의 울림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안다.

백교수님의 기일이 되면, 나는 종종 그의 딸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지난봄에는 그녀가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며 낡은 노트 한 권을 보내왔다. 노트 안에는 그가 평생 끄적여온 메모들이 빼곡했다. 물리학 공식들 사이사이, 불교 경전에서 옮겨 적은 구절들, 그리고 군데군데 나에 대한 짧은 기록들도 있었다. "오늘 제자가 렌즈 가게를 차렸다고 알려왔다. 나는 기쁘다. 그 제자는 자신이 걷는 길을 곁길이라 여기는 듯하지만, 나는 바로 그 길이 그 제자의 본길임을 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가끔 나는 저녁 무렵 가게 문을 닫고, 작업대 위에 마지막으로 만졌던 렌즈를 하나 들어 창문 쪽으로 비춰본다. 노을빛이 렌즈를 통과해 벽 위에 작고 흔들리는 원을 그린다. 나는 그 원을 오래 바라본다. 그 빛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그것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나도 이제 예순을 넘겼다. 요즘 들어 부쩍 손끝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날은 렌즈를 갈다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알아채고, 잠시 작업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백교수님이 병상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음이라는 것도 경로 하나가 끝나는 게 아니라 진폭이 다른 경로들 속으로 스며드는 일이라던 그 말을. 나는 언젠가 나의 화살표도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 화살표가 남긴 진폭은, 아마 견습생의 손끝으로, 하윤의 문장들 속으로, 정우가 찍는 사진 속 낯선 뒷모습들 속으로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을이면 나는 종종 통영에 내려가 아버지의 산소에 들른다. 지난 추석에는 오빠와 언니도 함께였다. 우리 삼남매는 이제 모두 머리가 희끗해졌다. 오빠는 더 이상 아버지의 삶이 서러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산소 앞에 앉아 오래도록 말없이 바다 쪽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오빠의 화살표가 마침내 아버지의 화살표와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뺄셈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다시 덧셈이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어느 방에 있든, 생존의 자리든 사랑의 자리든 스스로 완전해지는 자리든, 가능한 모든 길을 다 걸어보듯 살아간다. 그리고 그 무수한 시도들이 서로 더해지고 지워지며, 결국 오늘, 이 저녁, 이 골목, 이 손끝의 빛으로 수렴한다. 나는 그 계산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항으로서, 내일도 이 작업대 앞에 앉을 것이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 조연이어도 좋다. 우주라는 거대한 서사시는,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의 화살표 하나하나가 모여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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