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 토템 나는 주머니에 늘 오래된 지포 라이터 하나를 넣고 다닌다. 기름은 벌써 십 년 전에 말라버렸고, 부싯돌도 닳아서 더 이상 불꽃이 튀지 않는다. 쓸모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릴 때마다, 뚜껑을 열고 닫을 때 나는 특유의 쇳소리와 그 무게를 확인한다. 무게가 맞고, 소리가 맞으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라는 걸 안다. 무게가 다르거나 소리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그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하나씩 지니고 다니는 '토템'이라는 개념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팽이든, 주사위든, 체스 말이든 — 오직 자신만이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