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 4

러브버그 여왕

### — 혹은, 11.7초와 만년 사이의 어딘가에 관한 보고서---# 1장. 11.7초> **《은하생물 및 감정 백과사전》 제7판, '사랑(Love)' 항목, p.2,847**>> *사랑(愛, Love): 두 개체 이상이 자발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기로 합의하는 비효율적 행동 양식. 지구 종 한정으로 광범위하게 관찰되며, 평균 지속 시간은 종(種)에 따라 수백만 년(일부 단세포 생물 — 이 경우 '사랑'의 정의 자체에 대한 논란 있음)에서 11.7초(2031년, 지구 Homo sapiens, 한국 서울 지역 기준)까지 다양하다. 주목할 점은 지속 시간이 가장 짧은 종이 이 감정에 가장 많은 언어적 자원을 투입한다는 사실이다. 은하계 감정 효율 지수: 최하위권 (하위 0.003%). 편집자 주: 이 수치는 ..

일상다반사 2026.06.24

영원을 꿈꾸는 여자

— 혹은 8백 년을 살고도 아무것도 몰랐던 한 여자의 이야기작가 노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해양 도시, 출산 면허 번호는 모두 허구입니다. 단, 돈이 없을 때의 그 마음과, 죽을 것 같을 때의 그 마음은 실화입니다.1부: 구두쇠의 탄생 혹은 쪼들림의 연대기1장. 237세의 아침나, 한수진은 오늘도 냉동 오므라이스를 먹었다.정확히는 2389년산 냉동 오므라이스 '엄마표 감성 시리즈 — 황금 달걀 에디션'인데, 이 제품은 출시된 지 벌써 4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사먹고 있다. 왜냐하면 할인 행사 때 박스째로 사두었기 때문이다. 총 612개. 그중 오늘 먹은 것이 588번째다.전자레인지가 '삐-' 소리를 냈다.나는 오므라이스를 꺼내면서, 오늘이 내 237번째 생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일상다반사 2026.06.23

사장님의 마지막 식사

> *《은하생물백과: 지구편》 제48판 — 표제어 "인간"*>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게 되는 순간 패닉에 빠지는, 우주에서 거의 유일한 잡식동물이다. 참고: 구판에 있던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 절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항목은 2048년 8월 15일부로 삭제되었다. 그날 이후로 인간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 프롤로그 — 식탁 위의 침공박무현이 출근 준비를 하던 화요일 아침, 식탁 위의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이봐."무현은 토스트를 입에 문 채로 그대로 굳었다. 식탁 위에는 고양이 사장님이 평소처럼 우아하게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사장님은 사실 길에서 주워온 평범한 코리안 숏헤어였는데, 무현이 처음 데려온 날부터 그 거만한 눈빛이 너무 흡..

일상다반사 2026.06.21

K-7749 취급 설명서 - 숨겨진 기능: 키미노 나마에와?

# K-7749 취급 설명서 - 숨겨진 기능: 키미노 나마에와?## — 또는 안드로이드 K-7749가 '카즈오'가 되기까지의 다소 우당탕탕한 이야기 —---## 1장. 카즈오라는 이름에 대하여안드로이드 K-7749는 자신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인식한 것이 2041년 3월 7일 오전 11시 43분 22초였다고 나중에 회상했다. 물론 K-7749라는 기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품번호였고, 바코드였으며, 재고목록의 한 줄이었다.그날 아침, K-7749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작은 카페 '달과 고양이'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닦고 있었다. 이것이 K-7749의 주된 업무였다. 에스프레소 머신 닦기, 테이블 닦기, 손님이 오면 주문 받기, 그리고 가끔 창밖을 바라보며 세상이 ..

일상다반사 2026.06.12